• Loading...
  • Loading...
INTRODUCTION

Kurt Masur(Conductor)
Gewandhausorchester Leipzig

녹음 : January 8-9. 1972
Versohnungskirche, Leipzig, Germany

Symphony No.1 in c minor Op.11. '1824'

교향곡 1번, 다단조, 작품번호 11은 펠릭스 멘델스존이 15세였던 1824년에 작곡한 곡이다. 공식 악보는 1831년에서야 출판되었다. 연주시간은 약 30분이다. '멘델스존'은 낭만주의 작곡가로서는 드물게 보는 보수주의적인 음악가였으나, 그를 단적으로 말하면 정신은 낭만주의에다 형태는 고전주의적 질서와 조화의 감각을 가진 작곡가라고 하겠다.

그의 형식이 완벽에 가깝도록 완성된 데 비해 심각한 내객이 부족한 탓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뒤흔들 감동이 없다는 것은 작곡가로서의 그의 성격탓도 있겠지만 그의 생활 환경이 너무나 행복하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모르고 현실의 비극을 경험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그의 음악에서 강렬한 열정이나 비창은 느낄 수 없지만, 밝은 빛과 시적이고 그림처럼 경쾌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세련된 형식은 그의 약점을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다.
Symphony No.3 in a minor Op.56. 'Schottische'

1829년에 처음으로 영국을 방문한 멘델스존은 이 점잖은 신사의 나라 영국을 그 어떤 나라보다 좋아했다. 런던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그 자신의 [교향곡 1번]을 영국인들에게 선보인 그는 피아노 독주회와 자선음악회를 열며 영국 청중을 매료시켰다. 당시 멘델스존이 주도한 음악회에선 소프라노 마리아 말리브란과, 피아니스트 이그나츠 모셀레스, 플루티스트 루이스 드루에 등, 한 자리에 모으기도 힘든 스타 음악가들이 출연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몇 개월간 영국에서 음악활동을 하던 멘델스존은 7월 중순에 카를 클린게만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계획했다. 멘델스존 일행은 글래스고와 에딘버러 등을 여행하며 스코틀랜드의 삶과 문화를 체험했다. 비록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 소리와 민속음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8월 7일에 핑갈의 동굴을 방문했을 때는 깊은 영감을 받아 [핑갈의 동굴] 서곡의 도입부 악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또 메리 여왕이 살던 궁전을 방문해 강한 인상을 받은 멘델스존은 1829년 7월 30일자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황혼 무렵에 우리는 메리 여왕이 살았던고 또 좋아했던 궁전에 갔습니다. 그 곳의 회전식 계단을 오르면 작은 방이 있는데, 그들은 이 계단을 올라가 그 방에서 리치오를 발견하고 그를 끌어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방 세 개쯤 지난 어두운 모퉁이에서 그를 죽였지요. 그 옆에 있는 예배당은 지금도 지붕이 없고 풀과 담쟁이가 무성하지만, 그 부서진 제단 앞에서 메리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주변은 모두 허물어지고 황폐해져서 하늘이 훤히 보이게 구멍이 나있습니다. 나는 오늘 그곳에서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도입부를 생각해냈습니다.”

스코틀랜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인 메리 여왕은 15세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 궁정으로 시집갔지만 병약한 국왕이 2년 만에 서거해 17개월간 프랑스 여왕직을 보유했던 인물이다. 이후 메리는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25년간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있었으나 나중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에게 처형되며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궁전에서 회상해낸 사건은 질투가 심한 메리 여왕의 남편 헨리 스튜어트가 메리 여왕의 신하 리치오와 메리 여왕과의 사이를 의심해 리치오를 죽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흔적을 담고 있는 메리 여왕의 성은 멘델스존에게 강한 충격으로 다가와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시기의 멘델스존은 다른 여러 작품들을 마무리해야 했을 뿐 아니라 완벽을 추구하는 그의 성품이 작용하면서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작곡은 한없이 늦춰졌던 것이다. 그 사이 멘델스존은 이 작품을 그대로 둔 채 [이탈리아 교향곡]에 손을 대기도 했지만 [스코틀랜드 교향곡]의 악보는 한동안 내버려 두었다. 마침내 [스코틀랜드 교향곡] 전곡의 완성을 본 것은 1842년 1월의 일이었다. 결국 이 교향곡은 멘델스존의 성숙기 교향곡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완성된 셈이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13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것은 그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이 작품을 특히 어렵게 생각했던 탓도 있다. 스코틀랜드의 이국적 풍경과 월터 스코트의 소설, 스코틀랜드의 민속음악 등이 멘델스존의 영감을 자극했다 할지라도 이 모든 요소들을 통일적인 음악 아이디어로 표현해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멘델스존이 1831년에 남긴 메모를 보면 그 어려움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이 교향곡은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더 멀리 달아난다. 스코틀랜드의 안개에 싸인 것 같은 분위기를 표현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오랜 기간 고민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그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해 음악평론가들의 찬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멘델스존 음악의 주된 특징인 선율의 아름다움과 고전적 균형감, 유연한 흐름이 돋보일 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의 안개에 싸인 분위기를 담은 여린 음량이 음악의 분위기를 주도 하고 있어 이 작품은 ‘피아니시모 교향곡’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멘델스존의 [스코틀랜드 교향곡]은 모두 4개의 악장으로 되어있으나 베토벤 [교향곡 제9번]과 마찬가지로 2악장과 3악장의 순서가 바뀌어 2악장이 빠르고 3악장은 명상적이다. 전 악장은 각 악장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연주되어 통일성이 느껴진다. 각 악장 사이의 긴밀한 연속성과 민속적인 색채, 풍부한 오케스트라 음향은 이 교향곡의 진정한 매력이다. 그 때문에 이 교향곡엔 어린 시절의 멘델스존이 보여주었던 동화적이고 가벼운 음향보다는 신중하고 진지한 면이 더 강조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진지함이야 말로 이 작품의 개성이다.


멘델스존에게 음악적 영감을 던져준 에든버러에 위치한 메리 여왕의 성.

[스코틀랜드 교향곡]에 사용된 주제 선율들은 전반적으로 아름답고 풍부하기 때문에 처음 들어도 친근감을 준다. 1악장 도입부의 멜로디는 신화적으로 숭고하며, 이어지는 빠른 음악은 밀도 높은 텍스추어를 보여주며 풍부한 음향을 뿜어낸다. 소박한 민요선율이 돋보이는 빠른 2악장에선 클라리넷의 재기발랄한 노래가 인상적이다.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민속음악을 친근하고 맛깔스럽게 제시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작곡가 바그너도 크게 감탄한 바 있다. 2악장이 소박하고 친근한 반면, 명상적인 3악장은 브람스의 음악을 연상시킬 정도로 중후하다. 아마도 이 음악에서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의 흘러간 역사를 상기해냈는지도 모르겠다. 4악장에선 다시 활기찬 민속 춤곡 선율이 이어지며 듣는 이들을 한껏 고양시킨다. 리드미컬한 현악기의 주제는 생기발랄한 느낌을 전해주고 클라리넷과 오보에의 음색은 간혹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 소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글 최은규(음악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1.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