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Kurt Masur(Conductor) Gewandhaus Orchester Leipzig Recording : 1974, Gewandhaus, Leipzig, Germany Total timing 01:08:32
작품의 배경 및 개요 이 곡은 1806년 그의 나이 36세때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의 일생중 가장 조용한 시기의 작품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의 작품번호중 홀수를 투쟁적인 작품이라 하고 짝수를 평화로운 작품이라 말하는 이도 있는데 그럴 듯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은 3번과 5번에 비하면 아주 대조적이다. 그러기에 슈만은 말하기를 이것은 북부 유럽의 신화에 나타나는 2인의 거인 사이에 끼인 그리이스의 미녀라고 했다. 이 곡을 작곡할 즈음 베토벤은 슐레지아의 틀로파우 근교 글렌츠의 리히노프스키 후작의 관사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베토벤은 이 곳에 머물면서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요제피네 폰 다임 백작 미망인과 사랑에 빠져있었다. 결국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이 시기가 베토벤에게 있어서는 가장 평온하고 행복했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토벤은 교향곡 5번의 작곡을 일시 중단하고 4번을 단시일에 작곡하였으며, 곡 자체가 간결하고 명랑하게 된 것이다. 완벽한 고전적 형식미가 넘치는 명작으로, 전편에 흐르는 상쾌한 행복감과 우아한 표정, 평온한 훈기가 아주 매력적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아홉 곡을 살펴보면, 묘하게도 홀수 교향곡은 대체로 장대하고, 격정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말할 수 있고, 짝수 교향곡은 홀수 교향곡에 비해서, 작은 규모이면서 조금은 밝게 작곡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정열을 불태우고, 조금 쉬고, 불태우고, 쉬고 하듯이. 제4번 교향곡도 제3번 교향곡 <영웅>과, 제5번 교향곡 <운명>, 이 두곡의 장대함과 웅장함에 끼어 있는 교향곡이다. 슈만이 왜 그리스의 미녀로 표현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리스미녀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3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쓰여진 곡으로 보기에는, 오히려 1, 2번 교향곡과 4번 교향곡이 형식상 더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형식미를 그리스 미녀라고 표현 했으리란 상상도 할 수 있겠다. 이 곡의 편성은 플룻이 한 대라는 것 이외에는 1번 교향곡과 같다. 제4번 교향곡은, 음악적 내용이 우미하고, 풍부한 시상이 즉흥적으로 흘러나와, <낭만적 교향곡>이라 불리기도 하며, 베토벤의 교향곡 중 가장 아름다운 교향곡으로 손꼽히고 있다. 교향곡 제3번 "영웅"을 1803∼1804년에 완성한 베토벤은 그 후 한동안 오페라 창작에 모든 관심을 기울였다. 그 무렵인 1806년에 교향곡 제4번은 아주 짧은 시일 동안에 완성했다. 초연은 1807년 3월 로프코비츠 공작의 저택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거행되었다. 곡은 오페루스도르흐(Franz von Oppersdorff)백작에게 헌정되었다. 악기 편성은 플루트,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그리고 현악 5부 구성이다. 플루트가 1관이고 호른이 2관으로 구성되는 등 악기 편성이 전작인 "영웅"보다 축소되어 이 작품을 고 전적인 구조로의 회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제1악장에 38마디에 걸친 서주부 등을 살펴보면 "영웅"과도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제1악장에는 나중에 작곡되는 교향곡 제6번 " 전원(Pastorale)"에서 중요한 몫을 하는 음형과 비슷한 소재가 많이 보인다. 특히 제1악장 주부가 시작되는 9번째 마디에는 목관으로 연주하는 하강 음형이 나오는데, 이것은 베토벤이 뭔가 연주하는 하강 음형이 나오는데, 이것은 베토벤이 뭔가 신성한 기운이 다가옴을 표현하는 경우에 즐겨 쓰는 방법이며 "전원"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작품의 구성 약한 Bb음으로 시작하는 서주는 곧 Bb단조를 불러서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주제를 제시한다. 이에 대응하는 주제가 속단조로 하행하는 변질음을 따라 침체된 감정으로 계속 진행된다. 그 뒤에 주제가 다시 나타나고 응답 주제는 반음 높인 f단조로 진행된다. 이 부분에서는 교묘한 엔하모니크(이명 동음) 전환이 있어 베토벤의 화성법과 전조법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다. 아다지오의 느린 서주를 지나 바이올린이 몇 차례 솟구치려는 시도를 반복하고 드디어 격렬하게 솟구치면 제시부의 제1주제를 바이올린이 활발하게 수놓는다. 긴장감을 지닌 경과부가 있은 후 목관악기들의 제2주제가 경쾌하고 부드럽게 이어진다. 전개(발전)부는 제1주제를 중심으로 처리하고 있으나 새로운 재료도 사용하고 있다. 악기의 용법에는 특히 팀파니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힘을 더해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 재현부가 시작된다. 재현부는 제시부의 재료를 재현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다가 나오며 악장을 마무리한다. 음계 진행에 의한 주제의 가능성 추구가 멋진 결론을 끌어낸 좋은 예이다. 주음에서 도중에 하나의 악센트가 되는 장식을 놓고 순차적으로 하강하여 이번에는 단 2도음 아래의 도입음을 보조음적으로 도입하여 상행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비올라의 반행에 대한 멜로디와 첼로의 5도 하강 동기의 배경이다. 클라리넷이 주도하는 제2주제도 음계적 성격이 강하다. 이 악장은 빠르기와 곡상에서 볼 때 , 미뉴엣이라기 보다는 확실한 스케르쪼의 성격이 강하다. 트리오 부분은 운포코 메노 알레그로(Un poco meno allegro)로 약간 박자를 늦추고 있다. 트리오 부분 다음에 5마디의 접속구를 두어 주부에서는 다 카포(Da capo) 하지만, 반복 때는 이 접속구를 생략하여 축소된 제3주부를 진행하는 변칙적인 형식을 갖는다. 스케르초풍의 미뉴엣인 3악장은 몸을 가눌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감정이 깃들어 있는데, 그렇지만 클라이버는 견고한 구조감각으로 건강한 흥겨움을 그려가고 있다. 베토벤은 8번 교향곡을 제외한다면, 이후 미뉴에트를 다시 쓰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가벼운 미뉴에트를 거부한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을 비비꼬게 하는 듯한 16분음표 동기가 바이올린으로 제시되는데, 마치 자연적인 연결의 조합을 바꾼 것 같은 기지와 장난끼가 들어있다. 이들이 차례차례 현악부의 움직임을 바꿔 일으키며 흐르다가, 진행 방향을 돌연 바꾸며 나와 약동감을 자아낸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악장이다. 들판에 돌아 다니는 모든 정령들을 모두 휩쓸어가는 회오리바람처럼 세차게 휘몰치는 피날레는 너무 색체적이어서 눈이 부실지경이다. 글 출처 : 클래식 명곡 대사전(이성삼, 세광음악출판사) 흔히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쉰들러(Anton Felix Shindler, 1795~1864, 독일)가 1악장 1주제 운명의 동기 4음에 대해 베토벤에게 묻자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드린다”라고 한 것에서 연유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운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 세계적으로는 그냥 베토벤의 교향곡 5번 c단조라고 한다. 다만 독일 쪽에서 가끔 운명 교향곡(Schicksal Symphonie)이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적절한 표현의 부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유명한 운명의 동기 ‘따따따딴~’은 베토벤이 빈의 숲을 산책하다가 새의 소리를 듣고 착안한 것이라고 하는데, 특별한 것이 아니고 이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교향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4개 음표의 움직임은 아무 변화가 없는 그저 평범한 것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런 평범한 것을 전곡의 중심 동기로 부각시키며 완벽한 구성의 곡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것이 극적인 장대한 울림으로 변화시켜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으니 하나의 경이와도 같은 위대함이라 하겠다. 작곡에 착수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개 교향곡 3번 <영웅>을 완성한 직후인 1804년부터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그 스케치는 1803년이나 일설에는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완성은 1808년인데 이렇게 본다면 단기간에 쓰여진 속필이 아니라 매우 신중을 기한 많은 노력과 영감이 이루어 낸 산실이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작품에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견고하고 정밀한 구성의 완벽성이 살아 숨쉬는 것이다. 초연은 1808년 12월 22일 빈에서 베토벤 지휘로 이루어졌고, 당시는 오늘날과 달리 교향곡 5번 F장조 <전원>, 6번 c단조로 되어 있었다. 이 초연은 대실패였는데 작곡가 라이하르트(Johann Friedrich Reichardt, 1752~1814)는 ‘너무 크고 빈틈이 없이 꽉 찬, 그리고 지나치게 긴 교향곡’이라 평하였다. 당시로는 이런 작품은 파격적인 것이었고 30분 남짓 되는 곡도 무척 긴 곡에 속하여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던 것이다. 명작이란 늘 시대를 초월하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곡이 파리에서 연주되었을 때는 한 노병이 ‘황제다’라고 외쳐 황제 교향곡으로 불리기도 하여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베를리오즈의 스승이자 베토벤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가졌던 르 쉬외르(Jean-Francois Le Sueru, 1760~1837)는 “연주가 끝난 후 모자를 쓰려했는데 머리가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네. 이런 음악은 다시는 작곡되어서는 안 될 것이야”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베를리오즈는 “선생님 그런 염려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이런 작품을 다시는 쓰지 못할 테니까요!”라고 답하였다. 또한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역시 ‘그저 경탄할 수밖에 없는 위대한 음악이다.’, ‘하늘이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다’라는 말을 남기는 등 많은 찬사가 이어졌다. 1악장은 마치 운명의 목을 비트는 듯한 강력한 힘을 보여주며, 이는 내적 사상으로 억압된 분노이자 베토벤 자신의 남모를 실의와 고뇌이다. 2악장은 코끼리가 좋아서 춤추는 듯한 평화로운 것으로 명상적이며 아름다운 안단테(andante)이다. 특히 3악장에서 끊이지 않고 4악장으로 들어가는 부분은 모든 고난과 공포의 비극을 극복하여 마침내 승리의 개가를 구가하는 멋진 표현으로 인간적 자유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암흑에서 광염으로의 팡파르라 하겠다. 베토벤 스스로가 말한 ‘괴로움을 넘어 기쁨으로!(Durch Leiden Freude)'. 이 곡은 베토벤의 불굴의 의지가 음악적으로 투영된 새로운 시대의 정신과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고 있고 세상이라는 무대에 올려진 운ㅂ명적 비극인 것이다. 자기의 불행을 통해 환희를 만들어 낸……. 슈만도 이 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언제나 우리들에게 변함없이 힘을 준다. 마치 자연 현상들이 아무리 빈번히 일어날지라도 그것은 항상 우리들의 마음을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채워 주는 것처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