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belius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47
Ginette Neveu (violin)
Walter Susskind (Conductor)
Philharmonia Orchestra
1945/11/21 Mono
Abbey Road Studios, London
작품의 개요 및 배경
바이올리니스트 지망생이기도 했던 시벨리우스는 단 한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만을 남기고 있다. 한때 조금 난해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자신의 말대로 자신만만한 협주곡이라 하겠다. 특히 20세기 근대의 타 바이올린 협주곡들이 자주 애청되지 않은 것에 비하면 이 협주곡은 단연 최고의 위치에 올릴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시벨리우스는 36세인 1901년부터 4년간 귓병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그간 비교적 평탄한 삶을 지속했던 그에게 이런 귓병은 음악가로서 매우 치명적인 것이었고 또한 성격마저 내성적으로 변해갔다. 이런 사정은 바로 작품에도 반영되었고 음악의 내용이 점점 심원해지고 독창적인 것으로 되어 갔다. 이 시기에 나온 교향곡 2번 Op.43이나 <슬픈 왈츠(Valse triste)> Op.44-1은 이런 것을 잘 알 수 있는데 1903년 작곡된 바이올린 협주곡 역시 같은 맥락에서의 작품이라 하겠다.
시벨리우스는 5세부터 피아노를 그리고 10세 무렵부터는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장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20세에는 헬싱키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고 그 실력은 유명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의 그는 많은 대중들 앞에 서야만 되는 연주가의 길을 단념하고 만다.
이런 그가 평생을 통해 한 하나의 협주곡을 남긴 것은 바로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는데 이것은 그 스스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만큼 이 악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곡은 악기의 기능을 한껏 발휘하고 있으며 화려한 연주 효과도 결코 다른 것에 뒤지지 않는 높은 기교를 요하는 작품으로 탄생된다. 특히 관현악이 충실하면서도 어둠이 감도는 교향악적 색채가 강하다. 이것은 그레이(Cecil Gray, 1895~1951)가 지적한 대로 그가 교향곡 작곡가로서 명성이 높은 것과 깊은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다.
곡의 구성은 전 3악장인데 특히 1악장이 전곡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것은 평소 존경하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나머지 2, 3악장과 다소 동떨어진 것인데 이곳저곳에서 전조의 부자연스러움, 그리고 독주부의 유형적 어법이 어색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실로 개성적인 표현의 논리적 어법이 뛰어나다.
전체적으로 폭발하는 듯한 관현악과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주법이 북구의 강렬한 인상을 주며 핀란드 민요를 인용한 깊은 민족혼의 소재는 타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요소이다. 따라서 극히 아름다운 북구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여러 선배 작곡가들의 영향도 받고 있는데 1악장의 구성이나 카덴차 그리고 관현악과 독주의 균형감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인상 깊은 주제로 시작하는 것과 유려한 음악적 흐름은 멘델스존의 것을 생각나게 한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작곡 구상은 교향곡 2번을 완성한 해인 1902년 9월에 아내 아이노(Aino Jamefelt, 1871~1969)에게 편지를 보내 바이올린 협주곡의 악상을 떠올렸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완성하지 못하고 1903년에 완성하여 요아힘의 제자이자 나중에 헬싱키 필하모닉의 악장이 된 바이올리니스트 브루메스터(Willy Burmester, 1869~1933, 독일)에게 헌정하여 초연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그 래서 곡의 1악장과 2악장을 부르메스터에게 보내 그의 절찬을 받았지만 초연은 1904년 2월 헬싱키에서 평범한 바이올린 교사인 노바체크(Victor Novadek)와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비교적 평은 좋았지만 시벨리우스 자신은 만족하지 못하고 개정에 착수하게 되고 개정판을 1905년 10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지휘와 요아힘 현악 4중주단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할릴(Karel Halir, 체코)에 의해 베를린에서 초연하였다.
이런 개정은 1905년에 들은 브람스의 협주곡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하는데 초고에 비해 개정반은 한층 더 교향악적인 색채가 짙다. 이렇게 개작된 작품은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당시 비이올린계의 거목 요아힘은 지루하고 따분한 작품이라고 통렬할 비판을 했다. 하지만 시벨리우스는 70이 넘은 늙은 요아힘이 이미 시대감각을 상실한 것 같다고 하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듣는 것은 1905년 개정판의 연주이다. 한편 초고는 초연 직후 작곡가가 연주를 금지시켰는데, 1991년 유족의 허가 하에 헬싱키 대학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악보를 가지고 세계 최초로 카바코스(Leonidas Kavakos, 1967~ , 그리스)가 벤스캐(Osmo Vanska, 핀란드) 지휘 라히티 교향악단과 녹음한 바 있다.
제1악장
환상적인 악장이다. 어두운 북구의 우울함을 진하게 느낄 수 있으며 옛날 핀란드의 풍물과 원시적인 토속미가 아주 일품이다. 또한 독주와 관현악의 격렬한 대결도 멋지다.
제2악장
부드러운 암울함이 서정적이면서도 색채가 빛나는 시정과 정적의 노래를 보여준다.
제3악장
교향악적인 풍부함의 매력을 한껏 드높이고 있는데 작곡가 자신은 ‘죽음의 무도’라고 불렀고 그래서 그만의 은근한 열정에 빛난다.
글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