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zart
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KV 466

Maria Joao Pires, piano

Claudio Abbado, condoctor
Orchestra Mozart

녹음 : September, 2011
Auditorium Teatro Manzoni, Bologna
& Auditorium Konzert

먹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수수께끼의 화음

모차르트 :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 1785년 2월 10일에 완성해 이튿날 모차르트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
  · 단조의 조성을 지닌 모차르트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으로
    어둡고 불길한 느낌이 감돈다.
  · 연주시간 약 34분

  모차르트가 남긴 협주곡은 모두 40여 곡입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비롯해 호른, 클라리넷, 바순 같은 관악기들을 위한 협주곡도 있습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피아노 협주곡이 가장 많습니다. 30곡에 가깝습니다.

  모차르트 본인이 피아노의 명인이었을 뿐 아니라. 당시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친근하게 여겼던 악기는 역시 피아노였던 까닭입니다. 물론 이 지점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지요.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는 당연하게도 피아노의 조상 악기인 쳄발로(하프시코드)를 연주했을 것이고, 그 악기를 염두에 두고 곡을 썼을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자면 모차르트가 피아노(클라비어)를 처음 본 것은 1777년, 그러니까 스물한 살 때였다고 하는데요, 당시의 모차르트는 매우 흥분해서 아버지에게 “이 악기는 대단합니다. 악기의 왕이 될 거예요.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답니다.”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지요.

   특히 모차르트는 1781년 빈으로 이주한 다음부터 피아노 협주곡의 걸작들을 숱하게 작곡하지요. 모두 17곡을 빈 시절에 썼습니다.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했던 1782년 8월 이후부터 이듬해 초까지 세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잇달아 작곡했는데요, 그것이 ‘11번 F장조(K.413)’, ‘12번 A장조(K.414)’, ‘13번 C장조(K.415)’입니다. 이 세 곡을 ‘1782년 세트’라고 부르지요.

   모차르트가 빈으로 이주해 처음 선보인 피아노 협주곡들인데, 음악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확연히 드러냈던 빈 시절 중·후반기의 걸작들과 비교하자면 특히 그렇지요. 아마 모차르트도 처음에는 좀 두려웠을 것입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적잖은 고생 끝에 빈으로 들어섰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그곳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모차르트도 빈의 유력자들이 어떤 취향과 기호를 가졌는지를 살펴야 했을 테고, 자신이 음악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맘껏 펼쳐놓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점차 자신만의 개성이 넘치는 피아노 협주곡들을 선보이기 시작하고 빈 시절의 중·후반기에는 이른바 걸작들을 속속 써냅니다. 마지만 피아노 협주곡은 세상을 떠나던 해에 썼던 27번 B플랫장조(K.595)입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특히 여성 피아니스트들에게 중요한 레퍼토리로 인식되곤 하지요. 물론 남성 연주자들 중에서도 빼어난 연주를 남긴 이들이 적지 않지만,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고 감성적으로 더 섬세한 여성 피아니스트에게 좀 더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특히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Maria Joao Pires, 1944 ~ )의 연주를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애호하는 서너 명의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짙은 그늘을 드리운 피아노 음색은 물론이거니와, 조금의 과장도 없이 음악 자체를 조근조근 풀어가는 차분한 연주도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적입니다. 포르투갈 태생의 그녀는 ‘세계적 피아니스트’라는 호칭에도 아랑곳없이 ‘파두(fado, 포르투갈의 민중음악) 가수의 반주자로 무대에 설 만큼 ’열린 음악가‘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주회를 찾아온 청중에게 자연과 인간은 하나임을 강조하는 유인물을 나눠주는 생태주의자이기도 하지요.

  그 피레스를 대표하는 레퍼토리가 바로 모차르트입니다. 일곱 살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그마치 60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그녀의 연주활동에서 모차르트는 언제나 중심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모차르트는 스물다섯 살이었던 1781년에 빈으로 이주했고 그 이듬해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바라 이 지점에서 ‘프리랜서 음악가’로서의 모차르트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얘기합니다. 교회와 귀족의 간섭에서 벗어나, 작곡이나 연주에 대한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자본주의형 음악가’의 출현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지요. 결국 당시의 모차르트는 음악의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커다란 지각변동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어릴 때부터 혹사당해온 이 천재에게 엄청난 중노동을 다시금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 빈으로 이주해 한 집안의 가장이 된 모차르트는 이전보다 한층 더 작곡과 연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바로 피아노였습니다. 모차르트는 날마다 피아노를 교습하면서 레슨비를 받았고 협주곡을 써서 작곡료를 받았습니다.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회를 수시로 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해 돈을 벌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당구를 치면서 해소하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한데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그 과로와 중노동의 결과물들이 하나같이 걸작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의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창작력이 가장 고조된 시기에 이르러 있었고, 말년의 걸작들은 바로 그 지점, 한 천재적 예술가의 빛나는 에너지가 마지막 불꽃처럼 산화하던 시기에 세상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귀족과 예술가들 앞에서 자신의 곡을 연주하고 있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K.466’부터 ‘29번 B 플랫장조(K.595);까지의 여덟 곡은 바로 ’빈에서 보낸 10년‘을 대표하는 걸작들입니다. 특히 20번은 단조의 조성을 지닌 최초의 피아노 협주곡으로서 어둡고 비극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깁니다.

   1악장의 첫 주제를 현악기들이 제시하는데, 뭔가 불길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화음들이 먹구름처럼 몰려옵니다. 이 인상적인 주제부는 1악장에서 여러 번 반복됩니다. 피아노는 처음에는 아주 여리게, 마치 슬픔을 애써 억누르는 듯한 표정으로 등장했다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부터 점점 빠르고 화려한 기교를 펼쳐내기 시작합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매우 눈부신 카덴차(cadenza)가 펼쳐지지요.

   2악장은 아름다운 로망스 악장입니다. 피아노 독주가 부드럽고 따사로운 주제를 제시하면서 시작합니다. 이어서 오케스트라가 피아노를 감싸 안습니다. 그렇게 독주와 관현악이 서로 떨어졌다가 끌어안는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합니다. 1악장에서는 독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사이에 긴장감이 넘쳤다면, 2악장에서는 서로를 위무하는 듯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느낌으로만 일관한다면 음악이 별로 재미가 없겠지요. 그래서인지 중반부에 살짝 다툼이 등장했다가 다시 처음의 따뜻한 분위기로 돌아옵니다. 그 위무의 느낌을 잘 맛보면서 2악장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3악장에서는 템포가 빨라집니다. 빠르게 상승하는 악구들이 빈번히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슬픔을 살짝 머금은 피아노 솔로가 등장하고, 오케스트라가 그 뒤를 잔잔하게 받치는 동안 피아노는 점점 경쾌하고 빨라집니다. 이어서 오케스트라가 좀 더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피아노와 긴장감 넘치는 협연을 주고받는 장면들이 빠르게 펼쳐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장면, 피아노가 화려한 카덴차를 한차례 펼쳐낸 후, 오케스트라와 함께 어울려 당당한 분위기로 곡을 끝맺습니다.

    

추천음반

1. 마리아 주앙 피레스(Maria Joao Pires), 클라우디오 아바도, 모차르트 오케스트라, 2011, DG.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 피레스의 가장 최근 음반이다.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볼로냐의 만초니 극장에서 이뤄진 녹음이다. 피레스는 젊은 시절에 프랑스의 에라토 레이블에서 모차르트의 협주곡과 소나타를 녹음했고, 중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지휘자 아바도와 모차르트의 협주곡으로 동행하기 시작했다. 이번 음반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일흔을 바라보는 피레스의 ‘원숙한 모차르트’는 이제 어떤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피아니스트로서는 유난히 작은 그의 손이 건반 위를 자유자재로 유영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것처럼 선명하다. 온화하면서도 싱그러운 연주다. 오케스트라와의 앙상블도 빼어나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가 주고받는 신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내년(2013) 3월의 내한을 앞두고 베스트셀러를 예감케 하는 음반이다.
2. 클리포드 커즌(Clifford Curzon), 벤자민 브리튼,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1970, Decca.
피아니스트 커즌과 지휘자 브리튼이라는 조합은 한국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출렁거리는 느낌으로 충만한, 주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연주와는 거리가 먼 탓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자면, 그 점이야말로 이 음반의 미덕이다.

음악의 구조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객관적 균형감이라는 측면에서, 이 음반은 모차르트 협주곡 20번을 들으려는 이들에게 ‘충실한 가이드’로서 매우 적절하다. 아울러 20세기 영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두 명의 거장, 예민하고 무뚝뚝한 금욕주의자 커즌과 반전주의적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브리튼의 우정 어린 녹음이라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정확한 발음과 악센트를 중시하는 영국식 영어의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마치 교과서와도 같은 연주다.
3. 프리드리히 굴다(Friedrich Gulda), 클라우디오 아바도, 빈 필하모닉, 1974, DG
오랫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 온 명연이다. 피아니스트 굴다는 ‘모차르트적 아름다움’을 극단까지 끌어올린다. 물론 감정이 과잉된 연주는 아니다. 모차르트 특유의 절제된 슬픔을 청아한 음색으로 노래하고 있다. 햇살이 밝게 빛나는 데도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슬픔을, 이만큼 애틋한 서정으로 펼쳐내는 연주도 찾아보기 힘들다.

고전은 물론이거니와 현대의 재즈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굴다는, 페달 사용을 극히 자제한 채 명료하면서도 감각적인 음색을 구사하고 있다. 반면에 아바도는 ‘주인공’ 굴다를 돋보이게 하려는 태도가 여실하다. 오케스트라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반주의 역할에 충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