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del : Water Music HWV 348 - 350

George Szell (Conductor)
London Symphony Orchestra

녹음 : 1961/08 (ⓟ 1961) Stereo Kingsway Hall, London


왕의 뱃전을 수놓은 리듬과 화성

헨델 : 수상(水上) 음악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바로크 시대를 수놓았던 세 명의 거장이 동갑내기입니다. 바로 바흐와 헨델, 그리고 또 한 명은 이탈리아 태생의 음악가, 특히 하프시코드(이탈리아어로는 쳄발로 - 피아노가 나오기 전인 16~18세기에 인기를 누린 건반악기) 연주로 명성이 자자했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1685~1757, 이탈리아)입니다. 세 명은 모두 1685년에 태어났습니다. 바흐는 평생 독일을 떠나지 않았지만, 알려져 있다시피 헨델은 20대 중반에 런던에 정착해 40대 초반이었던 1727년에 아예 영국인으로 귀화했지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태어난 스카를라티는 로마에서 활약하다가 포르투갈 리스본의 궁정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공주의 음악선생으로 살았습니다. 훗날 그 공주가 스페인의 페르디난드 4세와 결혼해 왕비가 되자 자신도 스페인 궁정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결국 마드리드에서 타계하지요.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1759)의 삶은 여러 측면에서 동시대의 음악가 바흐와 대비됩니다. 간단히 말해 바흐가 정주민적인 삶을 살았던 것에 비해, 헨델의 생애는 매우 유목민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헨델은 독일 작센 지방의 할레에서 태어났지요. 바흐의 출생지인 튀링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입니다.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조바비롤리(John Barbirolli)가 지휘했던 할레 오케스트라의 거점으로 잘 알려져 있는, 독일 중부의 공업도시입니다. 헨델의 아버지는 외과 의사이자 이발사였던 것을 보더라도, 당시에는 이 두 가지 직업을 병행하는 일이 흔했던 모양입니다.

   헨델의 삶을 들여다볼라치면 ‘고향을 떠나다’라는 것이 ‘아버지를 벗어나다’와 거의 동의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헨델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아버지는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하지요. 그는 자신의 아들이 법관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으로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헨델의 속마음은 음악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지요. 그는 열여덟 살에 고향에 있는 할레 대성당의 오르간 주자를 제안 받지만 그 자리를 뿌리치고 북부 독일의 음악 중심지인 함부르크로 갑니다.

  법률가가 되기를 학수고대했던 아버지의 그늘에서 그렇게 한 발씩 벗어났던 것이지요. 물론 그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하지만 헨델은 그렇게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워나갑니다. 스무 살이던 1705년에 함부르크에서 자신의 첫 번째 오페라 《알미라》가 큰 성공을 거두자 이번에는 아예 시선을 이탈리아 쪽으로 돌립니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한마디로 유럽 음악의 종주국이었습니다. 특히 극음악(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의 본향(本鄕)이었습니다. 이탈이아에서 발원한 이 두 개의 장르가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곳곳으로 퍼져가면서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 헨델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많은 것은 보고 배우면서 자신의 음악적 스타일을 구축했을 겁니다. 같은 독일 태생인 바흐와 확연히 구분되는, 오히려 이탈이아풍에 가까운 헨델의 음악이 이 시기에 잉태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많은 음악가들과 교류를 시작했을 무렵에 헨델은 20대 초반의 청년이었습니다. 1706년부터 1709년까지였지요. 헨델은 바로 그 시기에, 화려하게 약동하는 리듬과 화성을 자신의 음악 스타일로 구축합니다.

   한데 이 리듬과 화성이라는 측면에서도 헨델은 바흐와 매우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바흐의 화성은 무겁고 어두운 편입니다. 독일적이지요. 반면에 헨델의 화성은 밝고 환합니다. 게다가 이탈리아풍의 출렁거리는 리듬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화려하게 약동하는 분위기를 풍깁니다. 특히 현악 파트가 간결하면서도 힘찬 화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헨델 음악의 특징으로 손꼽힙니다. 왕과 귀족들의 흥취를 고조시키기에 이만한 음악도 별로 없었을 것입니다. 헨델은 그렇게, 자신의 뿌리(아버지)인 독일풍의 음악과 상당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헨델은 기본적으로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에 주력했던 음악가였지요. ‘극음악’이라는 범주로 묶이는 그 두 개의 장르가 당대 음악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헨델이 작곡한 오페라는 모두 46곡, 오라토리오는 32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장르에서 헨델이 써낸 아리아들의 서정성과 성악적인 기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물론 그의 오페라는 오늘날 국내에서 전막(全幕)으로 공개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지요. 하지만 오페라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라는 아리아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라토리오로는 그 유명한 《메시아》가 대표적입니다.

  《수상음악(Water Music)》은 《왕궁의 불꽃놀이》와 더불어 헨델의 관현악 모음곡을 대표합니다. 이탈리아에 머물렀던 헨델은 1719년 6월에 독일로 돌아와 독일 하노버 궁정의 악장으로 일하게 되는데, 같은 해에 1년간의 휴가를 얻어 영국으로 건너가지요. 이때 영국에서 공연했던 오페라 《리날도》가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물론 헨델은 휴가 기간을 어기지 않고 자신의 고용주였던 하노버의 게오르그 선제후(選帝侯) 곁으로 일단 돌아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성공과 환대가 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나 봅니다. 자신이 예속돼 있는 하노버 궁정은 영국에 비한다면 오페라에 대한 인기가 시들했기 때문입니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헨델은 1712년에 다시 한 번 레오르그 선제후에게 허락을 받아 영국으로 건너가지요. 그러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앤(Anne) 여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음악가로 승승장구합니다.

   그런데 앤 여왕이 1714년에 사망합니다. 그 자리를 이은 사람이 하필이면 헨델의 고용주였던 하노버의 게오르그 선제후였지요. 영국 왕 조지 1세(George I)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거의 200년 가까이 유지되었던 영국 하노버 왕가의 시조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부터 《수상음악》을 둘러싼 하나의 ‘설(說)’이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똥줄이 탄 헨델이 1717년 여름에 템즈 강에서 국왕이 뱃놀이 연회를 벌인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서둘러 작곡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 취임한 국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수상음악》을 작곡해 템즈 강에서 초연했다는 설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그저 ‘떠도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어쨌든 《수상음악》은 1717년 여름, 조지 1세의 템즈 강 연회에서 초연됐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야외 음악회였습니다. 헨델과 약 50명의 악사들이 배에 오른 채, 왕과 귀족들이 탄 배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연주했다고 전해집니다. 강에서 연주했던 까닭에 호른이나 트럼펫 같은 관악기들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집니다. 그래야 음악 소리가 재대로 들렸겠지요. 기록에 따르자면 그날 국왕은 음악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면서 모두 세 차례나 연주를 지시했다고 전해집니다.



  《수상음악》은 크게 보자면 모두 3곡으로 이뤄진 모음곡입니다. 왕과 귀족의 야외 연회에서 연주된 행사용 음악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헨델 음악의 특징인 밝고 화려한 화성과 출렁이는 리듬에 귀를 기울여 보기바랍니다. 전체 3곡 중에서 ‘모음곡 F장조 HWV.348’은 11곡(악장)으로 돼 있습니다. 각각의 악장은 ‘서곡 / 아다지오와 스타카토 / 알레그로-안단테-알레그로 / 알레그로 / 알라 혼 파이프로 이뤄져 있습니다.

   서곡은 장중하게 시작했다가 중반부에서 템포가 확연히 빨라지면서 경쾌해집니다. 이탈리아풍의 현악 합주가 힘차고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두 번째 악장 ‘아다지오와 스타카토’에서 느리고 애달픈 느낌을 잠시 표현하다가 세 번째 악장으로 넘어가면서 다시 밝고 힘찬 분위기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느림과 빠름을 반복하면서 음악이 흘러갑니다. 그러다가 11번째로 등장하는 ‘알라 혼파이프’로 사람들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아마도 이 곡이 《수상음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곡일 듯합니다. ‘alla’는 ‘~풍으로’라는 뜻이지요. 혼파이프는 악기(쇠뿔로 만든 나팔)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르네상스 시절부터 이어져온 춤곡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깐 ‘알라 혼파이프’란 ‘혼파이프 춤곡 풍으로’라는 뜻이지요.

   두 번째 곡인 ‘모음곡 D장조 HWV.349’는 ‘서곡 / 알라 혼파이프 / 미뉴에트 / 렌토 / 부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마지막 곡인 ‘모음곡 G장조 HWV.350’은 ‘알레그로 / 리고동 / 알레그로 / 미뉴에트 / 알레그로’로 이뤄져 있지요. 하지만 헨델의 《수상음악》은 여러 판본이 존재합니다. 오늘날의 실연(實演), 혹은 음반에서는 앞서 언급한 순서를 고스란히 따르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