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
Partita for Solo Violin No.2 in d minor BWV 1004

Henryk Szeryng (violin)

녹음 : 1967 (ⓟ 2002) Stereo
Bunka Kaikan, Tokyo Live Recording

샤콘느의 선율 속으로

바흐 :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

피아노 반주 없이 바이올린 한 대로만 연주되는 바흐의 음악 중에서 사람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곡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샤콘느(Chaconne)입니다. 이 곡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의 마지막에 놓여 있는, 그러니까 다섯 번째 악장입니다. 바흐 사후에 오랫동안 연주되지 않다가 브람스와 부조니에 의해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지요. ‘샤콘느’는 애초에 멕시코 지역에서 발원한 춤곡으로 17세기 무렵에 제국주의 강국이었던 스페인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스페인과 인접했던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에서 유행했습니다.

   한데 바흐의 ‘샤콘느’와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애청하는 또 하나의 ‘샤콘느’가 있지요. 바로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의 ‘샤콘느’입니다.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는 역시 작곡가였던 지오반니 비탈리의 아들이지요. ‘비탈리 패밀리’는 바로크 시대 이탈리아의 유명한 음악 가문입니다. ‘샤콘느’의 작곡자로 알려져 있는(실제로 그가 작곡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토마소 비탈리의 아들도 역시 바이올린의 명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날 우리가 애청하는 이 또 하나의 ‘샤콘느’는 ‘비탈리의 샤콘느’라고 흔히 불립니다. 아마도 바흐가 작곡한 ‘샤콘느’와 구분하기 위해서인 듯합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비탈리의 ‘샤콘느’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그만큼 곡의 선율이 진한 슬픔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반면에 바흐의 ‘샤콘느’는 상당히 절제된 슬픔을 묘사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비탈리가 슬픔을 날것 그대로 토해내는 것과 달리, 바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의 전체적 조화와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이탈리아와 독일의 감성적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바흐는 아무런 반주 없이 첼로 한 대만으로 연주하는 6곡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썼던 것처럼 바이올린을 위해서도 역시 무반주 모음곡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인데, 소나타 3곡과 파르티타 3곡, 그러니까 전부 6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작곡 연대는 불분명합니다. 다만 바흐가 괴텐 궁정의 악장이었던 시절(1717 ~ 1723)의 전반기에 주로 작곡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무반주 첼로 모음곡’보다 조금 앞선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흐 작품번호(BWV.)도 ‘무반주 첼로 모음곡’보다 한 걸음 빠른 ‘BWV.1001 ~ 1006’입니다.

  일각에서는 바흐가 첫 번째 아내인 마리아 바르바라(Maria Barbara, 1684~1720)를 잃은 슬픔을 ‘파르티타 2번’의 다섯 번째 곡 ‘샤콘느’에 투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종종하곤 하는데, 그것을 정확한 사실로 인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베를린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바흐의 자필 악보에는 ‘1720년’이라는 연대가 분명히 표기되어 있지요. 그리고 바로 그해에 아내 마리아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도 사실입니다. 한데 바흐가 아내를 잃은 직후에 이 여섯 곡을 다 작곡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랫동안 작곡해온 것들을 자필 악보로 정리한 해가 1720년이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그러니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담아낸 음악’이라는 표현에는 무리가 따르지요. 하지만 ‘샤콘느’에 은은한 슬픔이, 어찌 들으면 ‘비통’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마음이 꾹꾹 눌려진 채 담겨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모두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모두 들으려면 130분 가까운 시간이 걸립니다. CD 두 장이 꽉 차는 분량이지요. 앞서도 얘기했듯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투자하는 일입니다. 우선 그 여섯 곡 중에서 ‘파르티타 2번 d단조’를 권합니다. 이 곡의 길이는 30분에 가깝습니다. 바흐 작품번호로는 1004입니다. ‘천사’로 기억하시면 됩니다. 전부 다섯 악장(다섯 곡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중에서 마지막 악장 ‘샤콘느’가 가장 긴데 14분이 조금 넘습니다.

   ‘파르티타(partita)’라는 말은 애초에 ‘변주곡’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지요. 바흐 시대에는 ‘모음곡’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흐의 파르티타는 ‘춤곡 모음곡’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오늘날의 속도 감각으로 보자면 매우 느린 춤이지요. 옛날 춤의 템포는 지금보다 느려도 한참 느렸습니다. 아울러 바로크 시대의 모음곡은 실제로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라기보다 ‘감상용 춤음악’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파르티타 2번 d단조’는 ‘알르망드 - 쿠랑트 - 사라방드 - 지그’로 이어지는 전형적이 춤곡 모음곡입니다. 춤곡 모음곡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메뉴만 간추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1곡 ‘알르망드’는 독일에서 기원한 춤곡입니다. 약간 느릿한 템포에 묵직한 느낌이지요. 장중함과 강인함을 느끼게 하는 춤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곡 ‘쿠랑트’는 알르망드에 비해 템포가 한결 빨라지면서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풍깁니다. 활발하고 명랑한 느낌의 춤곡입니다. 이어지는 3곡 ‘사라방드’는 매우 느린 3박자의 춤곡이지요. 서정적이고 부드럽습니다. 원산지는 페르시아인데 ‘샤콘느’가 그랬던 것처럼 스페인이 유럽 여러 지역으로 전파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면 느린 템포 속에서 어떤 관능성 같은 것이 은근히 느껴질 것입니다. 이어지는 4곡 ‘지그’에서는 다시 템포가 빨라집니다. 그렇게 경쾌한 춤이 한바탕 펼쳐진 다음, 드디어 마지막 곡 ‘샤콘느’가 장중한 느낌으로 막을 올리지요. 거의 15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경배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짜릿한 기교가 펼쳐집니다.

추천음반


Hennryk Szeryng
1. 헨릭 쉐링(Hennryk Szeryng). 1967년 DG
폴란드 태생의 거장 셰링(1921-1988)은 생전에 수차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녹음했다. 오늘은 그중에서 1967년 녹음을 권한다.

이 연주는 감각과 이성이 조화라고 할 만하다. 두고두고 들어도 물리지 않는 호연(好演)이다. 셰링은 ‘파르티타 2번’을 27분 45초에 주파한다. 훗날의 많은 연주자들이 기준으로 삼았던 중용적 템포다. 테크닉의 측면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지만 결코 날카롭지 않다.

부드럽고 풍요로운 소리가 울려 나온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바흐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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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탄 밀스타인(Nathan Milstein), 1973, DG
이 음반은 우크라이나 오데사 태생의 거장 밀스타인(1904-1992)이 남긴 대표작이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연주한 녹음이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림 없는 연주를 펼쳐낸다. 앞서 언급한 셰링의 음반과 쌍벽이라고 할 만하다.

뛰어난 테크닉을 바탕으로 드라마틱한 바흐를 펼쳐내고 있다. 만약 셰링의 연주를 들으면서 역동감이 좀 부족하다고 느꼈다면 밀스타인의 음반이 오히려 낫겠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른 까닭이다. 밀스타인은 모노 시절이었던 1956년에도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녹음해 ‘역사적 명반’의 반열에 올린 바 있지만, 오늘은 스테레오로 녹음한 1973년 음반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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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스카 슘스키(Oscar Shumskyg), 1978년, Nimbus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성장했던 러시아 유태계 이민자이 아들 오스카 숨스키는 과소평가된 바이올리니스 중 한명이다. 특히 국내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거론하면서 그의 이름을 빼놓기는 힘들다.

이 녹음은 외젠 이자이(Eugene-Auguste Ysaye)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도불어 슘스키의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는 명연이다. 20세기의 수많은 명연주자를 배출했던 네오폴트 아우어(Leopold Auer)의 마지막 제자로 손꼽히는 슘스키는 경지에 다다른 테크닉으로 선 굵은 연주를 펼쳐낸다. 낭만성이 짙은 거장풍 연주다. 얼마 전 국내에도 수입된 전집 'The Art of Oscar Shumsky'(16CDs)를 구입하는 것이 비용적으로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