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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jpg 샤갈, 마을에 내리는 눈

유독 샤갈이란 이름 뒤에 눈 내리는 마을이나 그런 이름들의 카페가 많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샤갈의 작품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데, 한국의 김춘수님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샤갈'하면 그 마을에 내리는 눈을 연상하게 되지만, 더 큰 이유는 샤갈이야말로 본인의 고향인 러시아의 고향마을을 그리워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고, 겨울에 내릴 듯 한 눈도 그의 따뜻한 색채 안에서는 다 녹아버릴 듯한 따뜻함이 있습니다.

'가난과 전쟁', '살생과 수용소생활' 등등의 시대적 끔직한 학살도 그의 작품 안에서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데, 그만의 뜨거운 빨강색 안에서 나오는 훈훈함과 그의 작품 안에는 그가 30년간 사랑했던 아내 '벨라'와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느 예술가와 달리 샤갈은 여성편력도 없었고, 숱한 염문을 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스물두 살 때 만난 여인, '벨라'와 30년동안 한 여인을 그의 첫사랑으로, 아내로, 인생의반려자로, 또 그의 작품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샤갈과 벨라. 그 두사람은 서로의 만남을 인생의 만남으로 여기며 평생을 아름다운 동화처럼 사랑한 것이지요.
우리가 샤갈을 좋아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지만, 아마도 한 여인을 이토록 사랑한 그를 우리는 그의 작품과 함께 사랑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샤갈의 생애와 사랑, 그리고 작품에 대해서 알아 봅니다.

Marc Chagall. 그는 1887년 러시아의 가난한 유태인 집안의 9남매 중 장남입니다.
청어 도매업을 하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도움으로 어려서부터 미술공부를 하게 됩니다. 샤갈은 러시아에서 그가 자라난 마을, 비테브스크에서 보아 온 모습을 그만의 동화와 같은 모습으로 강하고 밝은 색상으로 꿈같은 배경으로 즐겁게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주로 동물, 일하는남자, 연인, 악사들을 그렸습니다. 비테브스크는 그에게 모든 영감의 원천이되었고, 그곳은 러시아 정신과유태인의 전통이 함께 섞인 곳이었습니다. 형제가 많았던 캄캄한 집, 빈곤한 살림, 저녁기도에 모이는 수염 긴 노인들, 젖소, 말, 양 등등 어린 샤갈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새겨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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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마을 Oil on canvas 193 cm x 152 cm / 1911

샤갈의 작품 세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마을의 모습 .
사람과 소가 마주보고 있다 . 삶의 얼굴은 녹색으로 칠했으며 , 말의 얼굴 속에는 젖짜는 여인이 있다 .
젖을 짤 수 있는 것은 농경 생활에 대한 어린 시절의 향수이며 , 비옥한 대지를 의미한다 . 그리고 , 사랑하는 여인과 어머니의 이미지도 함께 나타내고 있다 . 전체적으로 원과 삼각형 , 기본 형태로 원근법을 나타내었고 , 화면을 나누었다 . 집을 거꾸로 그리고 , 만화와 같은 상상력을 볼 수 있다 .


그가 화가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 당시 유행하던 러시아 스타일이나 큐비즘, 초현실주의 야수파 등등 많은 화가와 스타일을 접하게 되지만, 샤갈은 어느 화풍과 융화되지 않고, 그만의 자유로운 세계를 추구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자유가 느껴지고, 사랑을 느끼며, 신비로움과 추억,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간과 중력을 초월한 풍부한 상상력에서 우리는 동심에 빠져듭니다.

샤갈이 스물두 살 때, 고향 마을의 여자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마침 그 집을 방문한 벨라와 만납니다. 벨라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가장 먼저 그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벨라는 그보다 아홉살 어린 열세살의 소녀였지요. 그 둘은 처음 만난 그 순간, 서로에게 끌리고 운명의 사랑을 하게 됩니다. 벨라는 보석상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고, 가난한 화가 샤갈과의 결혼을 물론 찬성할 수 없었습니다. 몇년간의 연애와 외국에서의 활동과 개인전등으로 세월이 흘러, 그녀가 스물 한살이 됐을때,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둘은 결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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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배경으로 역시 그의 고향이 보이고 , 그가 벨라에게 청혼을 하는 모습이다 .


벨라는 배우가 되고자 모스크바에서 배우수업을 받고 있었으나 결혼하면서 그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샤갈의 반려자, 모델로서 평생을 같이 합니다. 벨라와 결혼한 샤갈은 너무나 행복해 그의 그림에 신부가 된 벨라를 꼭 끌어안고 도시를 날라 다니는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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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나는연인들 1914-1918 Oil on canvas 139 cm x 197 cm
샤갈이 벨라와 결혼 후 , 신혼의 행 복을 전하기 위해서 그린 작품 .
혁명의 소요 한복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샤갈의 연인들은 마치 주변 상황에 무관심해보이고 사랑에 가득차 있다 . 배경으로는 그가 자란 비텐프스크 마을을 사랑하는 연인이 꼭 끌어안고 날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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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1917-1918 Oil on canvas


그의 작품 “탄생일”에는 그녀의 생일에 그는 꽃을 들고 와 그녀에게 주고, 날아 올라 그녀에게 키스 합니다. 그의 품안에서는 사랑하면 연인은 하늘도 날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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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일1915
벨라의 생일에 그가 꽃을 사 들고 , 음식을 준비하던 그녀에게 날라서 키스해주는 그림 .
본인의 생일에 음식 준비하며 샤갈을 기다리던 벨라의 뒤로 샤갈이 무중력으로 날라가서 꽃을 전해주며키스해주는 장면. 소리 없이 날라온 샤갈의 키스를 받으며 놀라면서 행복해하는 벨라의 모습이 재미있다.


내성적이고 말을 가끔 더듬으며 종종 간질 발작까지 보이기도 했던 샤걀에게 벨라는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반려자였습니다. 그녀는 적절한 판단려과 직관을 갖었고, 나이는 어리지만 어머니와 같은 포용력을 갖었습니다. 그녀는 샤갈의 작품 완성을 확인하는 판정자였고, 제목을 정하는 일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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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과 벨라
샤갈과 벨라가 서로 마주보며 손을 잡고 있는 눈빛이 사랑하는 연인 그 자체이다. 마치 동화와 같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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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병 안에 연인이 안고 있는 모습. 물론 샤갈과 벨라의 모습이며, 사랑하는 두사람은 마치 세상과 무관하고 꽃병속에서 평화롭게 사랑한다는 모습을 담고 있다.



샤갈과 벨라는 딸 '아이다'를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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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은 벨라를 모델로 잘 그렸는데, 샤걀옆에는 마치 샤갈과 벨라를 합성해놓은 듯한 딸 아이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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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러시아에는 혁명이 일어나고 러시아 정치와 맞지 않아 가족과 함께 1923년, 프랑스 파리로 영주 이주합니다. 혈연으로는 유태인, 태어난 곳은 러시아, 국적으로는 프랑스인이 되는 것이지요. 아마도 그의 작품이 어느 화풍에도 관여되지 않고 나그네와 같은 느낌으로, 사랑의 전령사로 보여지는 이유가 그의 배경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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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테브스크 - 슬프고도 즐거운나의 도시여 1915-20
Oil on canvas, 67 cm x 93 cm
샤갈의 영원한 고향 , 러시아의 비테브스크에 전쟁이 일어나고 , 혁명이 지난 후 예전의 평화롭던 농경사회의 고향이 없어지고 , 벌판이 되어 버린 곳에 대한 슬픔과 향수를 나타냈다 . 그렇게 사랑했던 자신의 마을을 떠나는 샤갈의 모습이 슬프다. 슬픈 자신을 검은 색으로 표현했고, 지팡이를 든 것은 힘들게 떠나는 본인의 마음을 표현했다.


파리로 이주하여 그의 그림은 색채가 더욱 밝아지고 생생해집니다.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입니다. 그는 그 이유를 러시아에서는 모든게 우울하고 갈색과 회색 뿐이었는데, 프랑스에 오고 나서 색채 변화에 흠뻑 빠지고 광선의 작용에 감동을 해서라고합니다. 마치 성장기의 소년에게 우유를 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는 프랑스에서 고갱의 빨간색에서 영향을 받긴 하지만, 그가 맹목적으로 탐색하고 있었던 것을 찾고 독특한 그만의 색채를 마음껏 즐깁니다. 프랑스에서 살게 되면서 외국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어린시절부터 종교심이 깊었던 그는, 교회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도 많이 남깁니다.

샤갈가족은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전쟁보다 더 슬픈 일이 샤갈에게 일어나고 맙니다. 첫사랑이자 사랑하는 부인 벨라가 그만 낯선 타향땅에서 적응 못하고 전염병으로 숨을 거둡니다. 그녀의 나이 48세였지요.

전쟁중이라 대부분의 약이 최전선용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제대로 치료를 못받아서 안타깝게 벨라는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의 작품세계의 여신이며 인생의 동반자인 벨라를 갑자기 잃게된 샤갈이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는 아홉 달 동안이나 붓을 들지 못할 정도로 깊은 절망에 빠졌고, 심한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녀를 잃은 후, 한동안 그의 색채는 깊은 푸른색과 회색이 지배합니다. 그 이후에 이 푸른색은 정제되고 단련되어서 그만의 환상적인 색채로 발전하게 되지요.
벨라가 그렇게 죽고, 아무 것도 못할 만큼 슬퍼하는 그를 보고, 오죽하면 그의 딸 아이다가 아빠에게 새로운 여자를 소개시켜 줍니다.

샤갈은 딸의 주선으로 만나게된 '버지니아 해거드'와 두 번째 결혼하고, 우울증에서 벗어나 다시 자유롭고 인생의 즐거움과 사랑을 주제로 그립니다.
그는 아마도 현재의 한 여인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벨라와 함께 있을 때는그녀만을 사랑했고, 버지니아와 부부가 되서도 그녀 또한 사랑했습니다.
벨라와 함께일 때는 주로 행복한 연인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그림을 자주 그렸으나, 버지니아와의 시절에는 서커스를 많이 보고 그렸습니다. 서커스 안에는 그가 원하는 상상력, 동심의 세계가 있기 때문이었는지, 그의 말기 작품에는 서커스와 성서 이야기를 결합시키기도 했고, 악사, 줄타는 곡예사,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샤갈은 더욱 동심의 세계에 젖습니다. 스스로 서커스 복장을 입고 꽃을 입에 물고 사진을 찍는가 하면, 그의 표정은 세월이 갈수록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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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샤갈은 그의 생애 말년에 서커스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그렸다 . 서커스 안에는 곡예사의 줄타는 모습과 광대의 모습 등 그의 천진난만한 상상력을 볼 수 있다 .



샤갈은 97세되던 해, 프랑스에서 이 생애를 마감합니다. 전쟁과 학살이 많았던 시절이었던 점을 감안해 그는 장수한 셈이죠. 그의어 린아이와 같은 마음과 사랑이 꽉 차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의 작품을 보며 모처럼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고, 화려한 색채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그의 그림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한번 손을 잡고 날라 보세요. 어느 덧 사랑으로 몸이 붕붕 뜨는 마술을 경험하게 되실 것 입니다. 그는 사랑의 마술사입니다.

요즘같이 추운 겨울에 "샤갈"의 인생과 사랑 그리고 작품 감상으로 따뜻하게 녹으셨으리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샤갈의 "일곱개의 손가락을 가진 자화상" 이란 작품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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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개의 손가락을 가진 자화상
샤갈 자신이 자신을 관찰하며 그린 작품 . 손가락을 일곱개로 그린 것이 재미있고 , 화가는 어떤 상황에 있는가 라는 의문을 표현하는 작품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이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출처 다음카페 '살며사랑하고배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