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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Cosmo's Factory(1970)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 이하 CCR) 만큼 한국에서 곡해 받은 밴드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중장년층에게 CCR은 야유회에서 즐겨 들었던 댄스음악 그룹이었다. 심지어 CCR의 최대 히트송인 「Proud Mary」는 우리말로는 외설적인 가사로 탈바꿈하여(요즘 말로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즉 ‘노가바’인 셈이다) 새로운 유행을 낳기도 했다. 모두들 CCR의 흥겨운 레퍼토리와 리듬에 몸을 내맡긴 채 율동을 즐겼고, 그 열기는 1970년대 말까지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이른바 고고장의 대부 격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CCR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이 앨범만 들어봐도 그 속내는 전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사실 CCR의 경쾌한 곡들은 상당수가 정치·사회적인 저항과 질타의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영어라는 언어의 장애물 때문에 오로지 멜로디와 리듬만을 소비했던 당시의 한국적 상황이 그들을 댄스 록 밴드로 오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수록곡들 중 「Run Through The Jungle」과 「Who’ll Stop Rain」의 가사만 해석 해봐도 CCR이 얼마나 뼛속 깊이 반골 기질을 가진 그룹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 1960년대에 걸쳐 계속된 전쟁의 포화를 각각 ‘정글’과 ‘비’로 은유한 두 곡은 이른바 전복적 록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용지에 다름 아니었다. 친형제인 존 포거티와 톰 포거티, 그 중에서도 그룹의 핵을 담당했던 동생 존 포거티가 당시 미국 사회에 대한 회의적 시선을 바탕으로 본 작의 밑그림을 그린 결과였다.

차트 2위를 기록한 「Travelin’ Band」, 「Lookin’ Out My Back Door」, 「Long As I Can See The Light」의 세 곡을 비롯해 「Ramble Tamble」, 「Up Around The Bend」 등의 다른 곡에서도 존 포거티의 비탄적인 어조가 세밀하게 스케치되어 있었다.

결국 이 세상을 구할 해결책은 순수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그는 ‘반드시 순수한 결정체를 부활시키겠다’는 의지와 확신을 담아 팀명을 지은 뒤, 대중음악의 뿌리인 블루스로 거슬러 올라가 CCR의 음악적인 뼈대를 완성해냈다. 실제로 존 포거티의 음악적인 우상은 시카고 블루스의 양대 거목인 머디 워터스와 하울린 울프(Howlin’ Wolf)였고 척 베리, 보 디들리(Bo Diddley), 리틀 리처드, 엘비스 프레슬리, 칼 퍼킨스 등의 록큰롤 가수들로부터도 영감을 받았다.

이를 통해 존 포거티는 컨트리풍의 초기 로큰롤인 로커빌리(rockabilly)에 시카고 블루스를 화학적으로 결합, 매우 독특한 사운드를 일궈냈다. 그는 그것을 미국 남부지방의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토속음악이라 하여 스왐프 블루스(swamp blues)라고 이름을 붙였다. 경쾌한 비트음악이었지만, 음반 전체에서 진득한 블루스의 향취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포거티 자신도 이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해 “모든 면에서 정점(頂點)이다”라고 서슴없이 말하곤 했다.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음악적 완성도를 이루고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등 전방위 성공을 쾌척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이처럼 CCR의 이 명반은 한국에서 댄스 록으로 가볍게 치부되었던 것과는 달리, 리더인 존 포거티의 눈으로 바라본 ‘당대 현실에 대한 환멸의 블루스 서사시’였던 것이다.

글 : 배순탁

60-70년대 많은 록 밴드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대한민국에선 이 팀 인기 정말 '짱'이었다. 
상당히 사회성 짙은 노래들을 발표했지만 우리는 이 음악에 맞춰 마냥 몸을 흔들었네.
야전(야외전축의 줄임말. 그러고 보니 요즘 아이들에게 단어를 너무 축약해 
국어를 손상시킨다고 야단칠 자격도 없군!)이 있는 곳엔 이 앨범이 꼭 함께했지.
그런데 이 음악에 맞춰 어떻게 춤을 추었나 모르겠다.

연주도 그리 어렵지 않아 많은 스쿨 밴드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됨.
나 자신도 이들의 「Who'll Stop The Rain」이 첫 카피곡이었음.
글 : 배철수
글 출처 : Legend(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그리고 100장의 음반, 배철수. 배순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