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After The Gold Rush(1970) 닐 영은 언제나 일반의 예측을 보기 좋게 개버리는 인물이었다. 「The New York Times」지의 묘사대로 닐 영은 '예측불허인 점만을 예측할 수 있는' 뮤지션으로서 시대별로 다른 스타일의 명작을 빚어 왔다. 평론가 테그 그린월드(Ted Greenwald)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그의 자유로운 스타일을 다음과 같이 재미있게 묘사했다.
"닐 영이 장르를 워낙 순식간에 뒤집는 통에 그의 베스트 앨범을 편집하는 데 단단히 골탕을 먹었던 레코드사 입장에서는 소송을 걸고 싶을 수준이었다." 1970년 발표한 본 작 「After The Gold Rusk」는 그러한 닐 영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복의 첫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반드시 거론되어야 할 닐 영학(學)의 필수 교과로 남아 있다. 주지하다시피, 이 음바나의 바로 전 작품은 1969년의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였다. 하드 록 성향이 강하게 묻어나는 이 앨범에서 닐 영은 록커로서의 본령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자연스레 더욱 볼트 높은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한 시점에 닐 영은 도리어 거꾸로 나아 갔다. 수록곡 모두를 톤 다운된 어쿠스틱 미학으로 채워 넣으며 아예 전원을 뽑아버린 것이다. 강성의 드라이브감을 기다려온 팬들에게 음반은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못지않은 광대한 흡수력을 지니고 있었다. 타이틀곡 'After The Gold Rush'를 비롯해 'Tell Me Why', 'Only Love Can Break Your Heart', 'Don't Let It Bring You Down' 등 전 곡이 고루 우수했다. 여기에 빅 히트를 기록한 'Southem Man'은 남부 출신을 비하하는 가사 때문에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로부터 'Sweet Home Alabama'라는 곡으로 반격을 받는 등 의도치 않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물론 국내 팬들은 가사에 상관없이 무한한 지지를 보냈지만. 아마 닐 영 음악의 톱 시크릿을 분석해 거칠게 양분한다면, '록커와 포키(folkie) 간의 대립'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음반은 후자의 경우를 가장 훌륭하게 모색한 걸작으로, 그와 언제나 비교되는 밥 딜런의 어떤 레코드와도 맞장 뜰 만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난 그저 내가 연주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러나 때때로 깨어나 딴것을 연주하고 싶어진다." 그의 이러한 언급처럼 닐 영에게 룰이 있다면 그것은 '룰이 없다는 것' 한 가지였다. 버진 이어북(Virgin Yearbook)은 이런 닐 영을 두고 "그는 정말 희귀한 상품이다. 나이 먹은 록 스타로서 그에 대한 불멸의 존경심은 점점 늘어만 간다. 그는 결토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컴백이란 것도 있을 수 없다. 닐 영은 항상 변화하면서 거기에, 어디엔가 있다"라며 존경을 표했다. 그리고 이러한 찬사에 걸맞게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닐 영은 계속적으로 상이한 음악세계를 헤쳐나가며 거장의 풍모를 이어갔다. 글 : 배순탁 이분께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의 대표작. 솔로 활동과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앤 영(Crosby, Stills Nash & Young)의 일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이런 좋은 앨범을 발표하시다니글 출처 : Legend(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그리고 100장의 음반, 배철수. 배순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