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창 <심청가>

창 : 김소희, 조상현, 장영찬, 안향년, 성우향, 성창순, 박옥진, 김경희
북 : 김동준(추정)

이 음반은 1970년대 초에 녹음되어 현대음반에 의해 5장의 LP음반과 4장의 카세트 테이프로 출반 된 적은 있으나, CD음반으로 출반 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30여 년 만에 CD음반으로 빛을 보게되어 더욱 기대 되는 창극음반이다.

판소리에서 소리꾼은 一人多役으로 혼자서 여러 역할을 해내지만 '심청가'는 창극 형식으로 녹음된 음반이다.

이 음반의 처음은 대금 반주 하에 조상현 명창이 해설하고 있으며, 안향년 명창의 최고의 소리를 만끽할 수 있고, 성우향 명창의 소리는 대차게 성창순 명창의 소리는 아기자기하게 들린다.

김소희 명창은 후배들에게 양보한 듯하여, 많은 소리를 하지 않은 것 같으며, 조상현 명창의 소리는 우렁차게 들린다. 장영찬 명창은 전성기 소리에 비해 쇠퇴한 느낌이 있는데, 이는 당뇨의 증세가 나타난 시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소희, 장영찬, 안향년 명창의 생생한 소리를 감상 할 수 있는 귀중한 음반이고, 30대 중반의 조상현 명창의 소리와 40대 초반의 성우향, 성창순 명창의 소리를 확인 할 수 있는 중요한 음반이다.

이 음반을 듣자면 걸죽한 재담에 빠져들게 된다. 신이 나다가도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의 판국으로 몰아가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신바람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이 진하게 배어들어 마음 깊은 바닥에 이르러서야 청중들을 놓아주는 판소리의 진정한 멋을 느끼게 한다.

▶ 연주자

김소희(1917 - 1995 : 전북 고창 출생)

유랑 가극단의 가설포장 안에서 들리는, 이화중선 명창의 심청가 중 "추월(秋月)은 만정(滿庭)허여......"로 시작하는 느린 진양조에 간장을 녹이는 진계면조의 구슬픈 소리를 듣고, 소리의 길로 들어선 김소희 명창.

1930년에 송만갑 문하에 들어가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김소희 명창은 국창이라는 수식어로도 부족한 판소리의 대가였다. 뛰어난 무대 매너와 맑은 소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으며, 1936년 조선성악연구회 회원을 비롯해, 민속예술원 설립원장, 국립창극단 부단장,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여 후진 양성에 정열을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 국을 다니면서 우리 소리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었다.

김소희 명창은 판소리 뿐 만 아니라 다방면의 예술에 뛰어나, 그의 서예 실력은 국전에 입상할 정도로 명필이었다.

1934년 콜롬비아 레코드에 춘향가를 취입한 것을 시작으로 1995년 타계하기 전까지 많은 레코드 취입을 하였으며, 또한 그의 문하에서 많은 명창들을 길러냈는데 그 중에서도 안향연, 김동애, 안숙선 등이 손꼽힌다.

조상현(1939 - : 전남 목포 출생)

12살 때부터 정응민에게 소리를 배웠고, 후에 서울로 상경하여 박녹주에게 소리를 배우며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완벽하게 조화된 연기력과 타고난 성량을 발휘하여 무대 주연을 도맡아 왔다.

조상현 명창은 창극무대는 물론 라디오방송, TV출연으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서편제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박유전제의 소리를 정재근 - 정응민으로 이어받은 소리꾼으로 강산제(보성소리)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명창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2년 제2회 국악 대상을 수상했으며, 91년에 판소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현재 전남도립 남도대학 국악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후학양성에 몰두하고 있다.

장영찬1930 -1981 : 전북 순창 출생)

명창 장판개의 차남으로 13세에 조상선 명창으로부터 단가를 배우고, 60년대 중반까지 박록주 명창으로부터 흥보가를, 임방울 명창으로부터 적벽가와 수궁가를 이수하였다.

또 정응민 명창으로부터 심청가 전 바탕을 이수하였다. 빼어난 목 구성과 정교한 부침새로 판소리계의 큰 재목으로 꼽히다가 지병인 당뇨로 52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

안향년(1945 - 1981 : 전남 광산 출생)

부친인 소리선생 안기선, 정응민, 김소희 명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970년대 초반에는 소리판을 휩쓸었고, 창극 무대의 춘향, 심청, 황진이와 같은 주역은 거의 모두 안향년 명창이 독차지하였다. 안 명창의 소리는 정말 미려하였다. 소리가 기름지면서도 반듯반듯하게 가락을 이어가는 품새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상성과 하성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소리가 겁날 정도로 서슬이 깃들여 있다. 그러나, 안향년 명창은 1981년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요절한 천재명창이라는 수식어가 그녀 앞에 붙어 있다.

성우향(1933(호적:1935) - : 전남 화순 출생)

10살 때 안향년 명창의 부친인 안기선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정응민 명창으로부터 흥보가를 제외한 네바탕을 배웠다.

1977년에 전주대사습 판소리 장원 대통령상상 수상(당시 2위 성창순, 3위 안향년), 1988년에 KBS국악대상을 수상하였다.

성우향 명창은 보성소리의 모범을 가지고 있으며, 보성소리를 가르키는 명창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자를 두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후보로 지정되어 있다.

성창순(1934 - : 전남 광주 출생)

16세에 김연수 창극단에 입단하여 연극활동을 하였으며, 공기남 선생으로부터 심청가를, 정응민 선생으로부터 강산제 판소리 심청가, 춘향가, 수궁가를 배웠으며, 박록주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978년에 전주대사습 판소리 장원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1991년에 강산제 판소리 심청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박옥진(1934 - : 전남 진도 출생)

12세 무렵에 아성창극단에 입단하여 국악활동을 시작하였다.

14-5세때 김연수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으며, 전황 선생으로부터 춤을 배웠다. 젊을 때에는 뛰어난 미모와 미성으로 여성 국극단에서 공주 등의 역할로 장안에서 인기를 누렸던 적이 있었다.

해금 연주자 김성아의 모친으로 70년대 후반에 국악계를 떠났다.


김경희(1920 - 1989(?) : 전북 고창 출생)

김소희 명창의 동생으로, 김여란, 정권진, 김소희 명창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동생 김정희와 함께 창극, 국극 활동을 많이 하였다.






북 : 김동준(1925 - 1990 : 전남 화순 출생)

1938년에 박동실 선생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박봉술과 김연수 선생으로부터도 판소리를 배웠다.

1970년 무렵에 아예 판소리를 그만두고 고수로 나섰으며, 결국 판소리 고법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박진감 넘치는 북 반주로 1980년대에는 완창 판소리 공연에서 각광을 받았다.(* 북 가락으로 판단하여 김동준 고수로 추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