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ading...
  • Loading...
My Foolish Heart / Eddie Higgins Quartet
정통재즈의 부흥을 기대하는 재즈팬들의 마음속에 몇 년 전부터 설레이는 기대감을 선사해주는 레이블 중 하나는 단연 일본의 비너스 레코드사이다.

얼마 전부터 강앤뮤직을 통해 라이센스화되고 있는데 롤랜드 한나 경(Sir Roland Hanna) 의 유작앨범을 비롯하여 양적으로도 방대한 하나의 라이브러리를 형성하고 있는 에디 히긴스(Eddie Higgins)의 경우가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비너스 레코드에서 발매되는 재즈 앨범들의 예술적이고 흥미로운 쟈켓들을 살펴보자. 60년대 식의 양복을 입고 마치 고다르의 영화 한장면처럼 앉아 있는 두 연인을 담은 Eddie Higgins Trio 의 [Dear Old Stockholm] 을 비롯하여 퐁네프의 연인들을 연상시키는 스테파노 볼라니 트리오 (Stefano Bollani Trio) 의 [Falando De Amor], 느와르의 팜므파탈을 연상시키는 스윙저널 만점의 명작인 필 우즈 (Phil Woods) 의 [Thrill is gone] 까지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각의 예술성까지 모두 극대화시킨 미학의 한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발매되는 Eddie Higgins 의 [My Foolish Heart] 역시 예외가 아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한 여성을 위에서 내려다 본 구도는 연민의 감정과 함께 낭만적인 요소도 담고 있어 전체 앨범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얼마전 Eddie Higgins Trio 의 [My Old Stockholm] 을 들었을 때 물론 Trio 의 형태도 좋지만 Quartet 의 구성으로 연주하면 보다 멋진 연주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열심히 뒤져본 끝에 드디어 감상할 수 있었던 [Smoke Gets in your Eyes] 은 내 기대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 적이 있다. 물론 Trio 구성의 Eddie Higgins 가 대표적인 에디 히긴스가 지향하는 연주 형태임에는 분명하지만 쿼텟형태에서 혼을 맡게 되는 스콧 해밀턴 (Scott Hamilton) 으로 인해 기존의 에디 히긴스 트리오가 들려주는 청명함의 이미지에 정통적인 요소가 부각되어 들려주는 중후하고 멋드러진 연주는 더더욱 일품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발매되는 [My Foolish Heart] 역시 Scott Hamilton 이 참여한 쿼텟의 연주를 담은 앨범이었기에 더욱 큰 기대감을 갖게 되었고 곡이 흐르는 순간 그것은 역시나 한단계 고품격의 연주를 지향하는 에디 히긴스의 세계에 더없이 부합되는 것이었다. 또한 스탠더드 넘버로 구성된 이 앨범은 그 연주 방법이 현대의 모더니즘을 구현하기 보다는 정통적인 재즈 어법을 왜곡이나 흐트러짐없이 따르고 있는 것이라 정통 재즈팬들에게는 또 다른 향수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

특히 빌에반스의 [Waltz for Debby] 앨범에 삽입되어 가장 유명한 버전으로 각광받는 곡이자 이 앨범의 타이틀 곡인 ‘My Foolish Heart’ 는 빌 에반스 트리오와 에디 히긴스 쿼텟의 연주를 비교 감상해 보면 더욱 재미있다. 특히 Scott Hamilton 의 사운드는 마치 깊은 밤의 고독과 정취를 담고 있어 여유있는 음색이 일품이다.

에디 히긴스의 피아노와 스콧 해밀턴의 연주는 마치 대화하듯이 이어지고 있어 더욱 정겹고 따사롭다. 특히 어빙 벌린(Irving Berlin)의 곡으로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연주했던 ‘Russian Rullaby’ 에서의 정통 발라드에 강점을 보이는 스콧 해밀턴의 연주는 어느 부분에서도 오버하지 않고 여유있게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흥겨움을 선사한다.

이 앨범의 백미라면 단연 콜포터의 명곡인 ‘Night and Day’ 가 아닐까 싶다.
다른 모든 연주자들이 한번쯤 연주해보았을 법한 이 곡은 기존의 연주들과 차별성을 보이기 위해 다른 요소를 특별하게 부각시키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재즈 명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여유와 절제의 미학, 그리고 그들만의 조화로움이 어느 곡에서보다도 잘 살아 있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또한 Steve Gilmore (스티브 길모어), Bill Goodwin (빌 굿윈) 을 포함한 네 연주자들 모두 고도로 마음을 더한 음악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더욱 흥겹고 진실된 연주를 들려주는 듯 하다. 가볍게 스치듯 살랑이는 ‘Am I Blue’ 까지 이 앨범에는 어느 곡하나 빼놓을 것이 없다.

현대인들은 바쁘다. 현대인들은 위로받고 싶다. 피로한 어느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출구에서, 위로받기 위해, 혹은 휴식하기 위해 느긋하게 걷다가도 위에서 밀려오는 인파로 걸음은 바빠지고 괜스레 짜증이 섞인다.

이러한 빠름의 시대에 에디 히긴스처럼 여유롭게 웃고, 여유롭게 연주하고 스콧 해밀턴처럼 느긋하게 연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때로 너무나 위대해 보인다.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보통 사람에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여유롭게 스윙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러한 시대에 스콧 해밀턴은 여유롭다. 에디 히긴스는 여유롭게 스윙한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을 통해 나는 쉴 수 있고 편안하게 스윙하는 모습을 듣는 것만으로도 여유로울 수 있음을 믿게 된다. 그것이 그들 음악의 힘이다.

글 출처 : 이양희의 예술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