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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의 첫 곡 '서울역 이씨'. 1분 가까운 전주 뒤에 정태춘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10년만의 목소리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여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고, 여전히 듣는 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어느 겨울 서울역에서 죽은 노숙인을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서울역 이씨'의 "저 고속전철을 타고 천국으로 떠나간다 / 바코드도 없는 몸뚱이를 거기에다 두고 / …… / 통곡 같은 기적소리도 없이 다만 조용히 /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살에 눈처럼"이라는 아픈 노랫말은 정태춘만이 쓸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2003년 이후 더 이상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렇게 설득력 있는 노래를 들려주는 그가 10년 간 새로운 노래를 부르지 않은 데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었다. 그는 지금 마치 요순시대처럼 미화되고 있는 참여정부 시절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싸우고 있었다. 지금의 제주 강정마을과 같은 평택 대추리에서 노래가 아닌 몸으로 싸우다 플래카드에 목이 졸려 연행되곤 하던 그였다. '그 뒤'의 '어떻게'를 말하지 않고 그저 '반MB'만을 외치는 지금이 그에겐 여전히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그는 1993년 발표했던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다시 부르며 "지금 이 땅의 순정한 진보 활동가들과 젊은 이상주의자들에게 헌정하는 마음으로 다시 녹음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반MB'라는 구호에만 함몰되지 않고 그 이상의 것을 얘기하고 있는 진보 활동가와 이상주의자는 정태춘 자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앨범이 정치적인 메시지로 가득 차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태춘은 이 앨범을 현장을 떠나 만든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예의 치열함보다는 좀 더 관조적이고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노래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땅의 작은 존재들에게 조용히 위로를 전하고('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점차 우경화되어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지구를 떠돌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노래하고 있다('날자, 오리배...'). 풍경 하나, 사진 한 장, 시 구절 하나, 소설 하나, 이 모두를 그는 허투로 지나치지 않는다.

음악적인 노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크게 보면 [정동진/건너간다](1998)까지, 좁혀서는 전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2002)와 함께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편곡에 도움을 준 이름도 같고, 연주자들 역시 겹치는 이름이 많다. 얼후와 같은 이국 악기나 아코디언의 활용 역시 마찬가지다. 이 동일한 음악적 노선에서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건, 역시 정태춘과 박은옥의 목소리이다. 그가 '시인의 마을'을 부르며 처음 등장했던 35년 전부터 그래왔다. 듣는 이를 엄숙하게 만들고 때로는 상념에 젖게 하는 그의 노래는 10년 만의 새 앨범에서도 여전하다. 동반자 박은옥은 또 어떤가. '독보적인' 음색을 갖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이번 앨범에서 유난히 귀에 와 박힌다. '강이 그리워',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에서 들려주는 그의 노래는 조력자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이 앨범을 대하는 감정이 온전히 음악 하나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고백한다. '1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 그리고 '다시' 노래를 한다는 사실이 주는 감동이 복합적으로 엉켜있다. 언제나 그래왔다. 이 부부를 둘러싼 상황이 언제나 온전히 음악만을 얘기할 수 없게 만들어왔다. 이제 그 모든 상황이 걷히기를, 그가 더 이상 새로운 노래를 내놓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부부의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해온 애호가로서.

글 출처 : 김학선(웹진 [보다] 편집장)
정태춘 박은옥 제11집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네 먼 바다는 아직 일렁이고 있겠지......”
정태춘 박은옥, 저 10년의 독백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는 정태춘 박은옥의 정규 앨범 제 11집이다. 이 앨범은 지난 2002년의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이후 10년 만의 신보이다. 그 사이에 이들은 거의 칩거에 가깝게 드러나지 않게 활동해 왔으며, 정태춘은 사실상 절필하고 언론과의 접촉도 끊었다. 특별히, 2009년에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기념 콘서트>와 중견 미술인들이 마련한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기념 헌정 전시회>가 있었고 이 때,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정태춘은 2010년 하반기에 다시 집중적으로 새 노래들을 썼고, 2011년 여름과 가을에 녹음 작업을 끝냈다.
그는 앨범 가사집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난 30여 년을 함께 해 준 아내 박은옥을 위해 다시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새 앨범을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 준 감사한 벗들을 생각하며 녹음 작업을 했다.”
이 앨범은, 이들이 다시 적극적인 발언과 활동을 도모하기 위해 대중들에게 던지는 새로운 화두의 <노래 모음>이라기보다 이들 부부가 거의 사적으로 주고 받는 다소 우울하지만 담담한 대화로서의 시집의 분위기를 띈다.

가사들은 주로“물”과 관련하고 있다. 인적없는 “바다”, “강”의 풍경이 거의 수록곡 전편에 등장하며, 시적인 서사법이나 운율들은 저 칩거 기간 초기에 발표한 시집 <노독일처(2004년 실천문학>>의 연장선에 있어 보인다. 단지, 그 분노와 직설을 버리고 다시 관조와 서정, 새로운 그리움의 어법으로. 가사로서만 보자면 정태춘은 지금 여기 우리들의 현실 안이 있지 않고 벌써 어느 먼 <물 가>로 떠나 있다.

“여기 다시 돌아오시지는 마세요...”(수록곡 <꿈꾸는 여행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저녁 숲 속...에서... 나의 하얀 고래...”를 만나고자(<저녁 숲 고래여>) 하며, “아무도 손짓하지 않는 등대 아래... 하얀 돛배 닻을 올리고 있을까”(<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꿈꾼다.

가사 안에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앨범에는 5명의, 이들 부부의 지인들이 등장한다. 시인 박남준과 이원규와 백무산 그리고, 소설가 박민규와 사진가 김홍희. 이들은 지난 10년 사이에 그와 더욱 가까워진 사람들이고 그에게 새로운 노래들의 주인공이 되어주거나 새 노래들을 만들라고 그의 창작 충동을 흔들어 주었던 사람들이다.

수록곡들의 멜로디 라인은 기존의 서정성에서 조금 더 차가워지고 더 가라앉았다. 편곡은 정태춘이 직접 로직 프로그램을 통해 더 청량하고 여백 많은 소리들을 찾아 구성하고 변주했으며 그 중심에는 여전히 어쿠스틱 기타 핑거링이 자리함으로서 그 자신 또는, 한국 포크 가요의 전통적인 맥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린다.

글 출처 : 다음기획 컨텐츠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