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와 피아노 3중주곡
러시아 작곡가들 중 자신이 존경하던 음악가가 타계하자 그를 추모하는 3중주곡을 작곡한 예가 유난히 많다. 특히 곡의 형태가 다름 아닌 실내악의 피아노 3중주인 것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세 악기가 어우러지는 앙상블이 슬픔의 감정을 가장 잘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목할 만한 것은 러시아의 실내악 명작이 이런 3중주에 몰려 있는데 사실 러시아의 음악 중에서 실내악의 장르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평소 존경하던 모스크바 음악원 원장을 지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Nikolay Rubinstein, 1835~1881)이 작고한 것을 아쉬워하며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을 작곡한다.

이런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하자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가 차이코프스키를 추모하여 역시 <슬픔의 3중주(Elegiac Trio)> Op.9를 작곡하였다. 또한 작곡가 아렌스키는 러시아의 첼리스트 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장을 지낸 카를 다비도프(Karl Davidov, 1838~1889)를 추모하는 피아노 3중주 제1번 d단조 Op.32를 작곡한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이 피아논 3중주곡 Op.67은 평론가이자 음악학자인 솔레르틴스키(Iva Ivanovich Sollertinsky)를 추모하는 곡이다.

이런 네 곡의 작품 중에서 가장 슬픔이 돋보인 곡은 단연 차이코프스키의 것이라 할 것이다. 또한 부제로 붙은 ‘어느 예술가의 추억을 기리며’ 역시 이런 분위기를 더욱 진하게 하며 슬픔의 3중주 음악 중 단연 백미를 장식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남긴 실내악은 현악 4중주 3곡, 현악 6중주 1곡 그리고 피아노 3중주 1곡으로 모두 5곡이다. 이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바로 피아노 3중주라 하겠다. 하지만 피아노 3중주란 장르가 러시아 실내악의 전통상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또 차이코프스키 자신도 이런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었다. 특히 1880년 겨울에 폰 메크(Nadezhda Filaretovna von Mekk, 1831~1894) 부인의 피아노 3중주 작곡 의뢰를 거절하였는데 편지에서도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이 세 악가를 위한 3중주를 쓰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는 대단히 큰 괴로움입니다.”할 정도였다.

그런데 1881년 3월 파리에서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객사를 하게 된다. 니콜라이는 차이코프스키의 스승이었던 안톤(Anton Rubinstein)의 동생이자 피아니스트, 지휘자 그리고 모스크바 음악원의 창립자이기도 했다. 차이코프스키는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를 지내며 니콜라이와 친구처럼 지냈고, 니콜라이는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을 다수 초연하며 남다른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1875년 작곡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두고 생긴 둘 간의 불화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하지만 1878년 니콜라이는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파리에서 연주하여 둘은 우정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니콜라이가 1881년 파리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리콜라이의 별세로 공석이 된 모스크바 음악원 원장으로 차이코프스키가 선출되었는데 그는 고사하고 그해 11월 로마로 여행을 떠나 니콜라이를 애도하는 피아노 3중주를 이듬해 1882년 완성하고 악보에 ‘어느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을 기리며(a la memoire d’un grand srtiste)’라고 적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피아노 3중주 작곡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이었던 그가 불과 1년 만에 피아노 3중주를 작곡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인데 그만큼 니콜라이에 대한 남다른 감정과 우정을 가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1882년 2월 곡을 완성하여 초연은 3월 23일 고인의 1주기를 기념하여 차이코프스키의 제자이자 동시에 니콜라이의 제자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타네예프(Sergey Taneyev, 1856~1915)가 피아노를 맡고, 바이올린에 그리말리(Ivan Grimaly), 첼로에 피첸하겐(Wilhelm Fitzenhagen)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곡은 모두 2악장의 구성인데, 2악장 주제와 변주곡(Theme and variations)이 크게는 11개의 변주(variation)와 종변주와 코다(variation finale and coda)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실은 3악장으로 볼 수 있다. 1악장은 ‘비가적 악장’으로 추모의 정을 담고 있는데 이 주제는 2악장 코다에 다시 등장시켜 곡을 마무리하고 있다. 2악장은 회고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주제는 차이코프스키와 니콜라이가 모스크바 근교 스페를링산에 갔을 때 들은 민요를 근거로 하고 있다. 특히 변주가 매우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어 추모의 정이 극치를 이루고 있다. 수법적으로는 피아노의 역할을 강조 명피아니스트였던 니콜라이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