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이야기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에 대한 일화를 가장 실감나게 그리고 있는 연주는 뭐니 뭐니 해도 오이스트라흐가 남긴 연주이다. 또한 오이스트라흐가 미국 뉴욕에 데뷔할 때 이 <악마의 트릴>을 뜨겁게 타오르는 감성으로 연주하여 많은 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이 연주는 오이스트라흐 나이 62세인 만년 연주로서 그가 남긴 불후의 걸작에 속하는 절대적인 연주이다. 그는 이 연주 말고도 1956년 피아니스트인 암폴스키(Vladimir Yampolsky, 1938~ )와의 녹음(EMI/TESTAMENT)도 남기고 있다.
이 녹음은 오이스트라흐 특유의 걸쭉한 울림이 돋보이기는 하나, 곡의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차분한 것이라 여기 만년의 연주에는 결코 미치지 못한다. 또한 오이스트라흐 자신도 그의 많은 연주 중에서 만년의 연주가 나이를 더함에 따라 음악적으로 더욱 성숙해짐을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여류 피아니스트인 바우어(Frida Bower)와 남긴 이 연주는 그가 젊은 날 남긴 구녹음에서는 볼 수 없는 거장의 정열적 불길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곡의 시작부터 청명하고 질감이 가득 차 울리는 그의 바이올린은 마치 밤의 적막을 가르는 듯한 신비감을 전해 준다. 이후 전개되는 강렬하면서도 완벽한 보잉(bowing)으로 보여주는 음의 흐름은 참으로 대단한 경지를 보인다. 마치 고요한 밤하늘의 수많은 별빛을 찬란히 가로지르는 한 줄기 혜성과 같은 싸늘한 공기감의 황홀한 울림이라 할 것이다. 피아노의 바우어도 한 치 뒤로 양보한 듯 한 반주로 바이올린을 더욱 찬란하게 떠받들고 있다.
특히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은 3악장 트릴 연주에서 제목에서 말하는 악마적인 트릴로 전율을 느끼게 하여 주고 있다. 더욱이 마지막 부분의 격렬한 절정은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매우 격정적인 연주를 들려준다. 격정으로 울부짖는 바이올린의 선율 그것은 바로 악마에게 판 영혼을 말해 주고 있다. 가슴을 휘젓는 전율이 뜨거운 눈시울로 이어지는 감동의 연주이다. 우리는 연주 후에 악마의 기운과 자신이 맞닥뜨렸음을 섬뜩하게 느낄 것이다.
오이스트라흐의 연주를 듣노라면 정말로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타르티니가 꿈속에서 들었던 곡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는 대단한 쾌감을 경험한다. 동시에 그의 연주 역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연주했음직한 악마 자신의 연주 바로 그 자체일 것이다.
‘오이스트라흐(Oistrakh)’라는 이름의 뜻도 바로 악마였음을 상기하면서…….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