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이야기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북구적인 멋진 분위기와 정열적인 표현이 뛰어난 것이라 이런 곡상에 걸맞은 좋은 연주들이 많이 나와 있다.
먼저 야사 하이페츠의 강렬한 명연을 비롯하여 길 샤함, 아이작 스턴을 들 수 있고, 초고 악보에 의한 카바코스의 연주 역시 놓칠 수 없다. 그리고 작곡가의 일화에 기인하여 여류 주자의 연주도 주목할 만하다. 카밀라 윅스, 이다 헨델, 느뵈, 뮬로바, 정경화 그리고 장영주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이런 뛰어난 연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이스트라흐가 남긴 가슴 짜릿한 연주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오이스트라흐가 남긴 시벨리우스 협주곡 음반은 다양하다. 엘리아스베르크와 USSR 국립 교향악단과의 연주와, 포그스테트와 북구 악단과의 협연인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과의 연주, 식스텐 에를링 지휘 스톡홀름 축제 관현악단과의 연주가 있고, 스테레오 녹음인 어먼디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 여기 소개된 로제스트벤스키와이 1965년 연주, 또한 로제스트벤스키와는 1966년 모스크바 실황 연주(영상)와 1969년 실황 연주(REVELATION)가 있기도 하다.
이 중 1959년 12월에 행해진 오먼디와의 연주는 다소 강렬함이 덜하지만, 오이스트라흐 특유의 긴장감과 강한 보잉(bowing)의 서정미는 여전하여 통상적으로 거론되는 연주이다. 그러나 로제스트벤스키의 음산한 정열의 반주와 오이스트라흐의 기량이 최상의 빛을 발하는 1965년의 연주는 단연 최고라 할 것이다.
첫 악장 바이올린의 독주부터 오이스트라흐의 긴장감 넘치는 강렬한 보잉은 정말로 북구의 차가운 기운을 맛보게 한다. 특히 로제스트벤스키가 이끄는 러시아 악단의 반주가 음산하면서 폭발적으로 거친 것이 시벨리우스의 극적인 면을 더욱 극명하게 해 주고 있다. 마치 어둡고 깊은 저 밑바닥으로부터 치솟아 오르는 정열이 아주 감명적이기까지 하다.
오이스트라흐의 바이올린은 최고조의 기량으로 가장 강렬하면서도 긴장감에 넘쳐나는 비장미 어린 음색으로 곡의 본질에 육박하는 정열의 명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가슴이 찢어질 듯 후련하면서도 질감에 넘치는 긴박감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할 것이다. 이런 것은 타 연주의 여린 선에서 나타나는 가냘프고 어설픈 긴박감과는 비교조차 되지 못할 경지이다.
2악장 아다지오의 안정감 넘치는 질박한 서정미도 잊지 못할 것이며, 3악장 알레그로의 극적 박진감의 묘미는 실로 오이스트라흐의 위대함을 실감하게 된다.
이처럼 북구적인 차디찬 정열을 냉철하면서도 정열적으로 승화시킨 예는 결코 없으며, 아름다운 정서와 정열이 불꽃 튀듯이 연소되는 가슴 시린 감동은 쉽사리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