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이야기
클라라 하스킬이 남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9, 13, 17, 19, 20, 23, 24, 27번 등으로 어느 것이나 할 것 없이 만족할 만한 높은 연주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모차르트 특유의 빛과 그늘을 보여준 걸출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 9번과 23번을 담은 모노 연주는 하스킬의 모차르트 협주곡 중에서도 단연코 백미라 할 만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것이다. 물론 9번의 <죈옴>도 훌륭한 연주이지만 특히 23번의 경우는 그녀의 연주 중에서 최고라 할 만한 것이다.
앞서 말한 20번과 24번이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중 단 두 곡뿐인 단조 협주곡으로 하스킬의 어두운 면과 잘 일치되기는 하나, 이 23번의 연주를 듣노라면 이들 단조 협주곡보다 오히려 더 어둡고 한없는 슬픔이 깃들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리라 확신한다.
첫 악장 알레그로부터 밀려오는 비통한 감정은 정말로 각별한 감동이 서려 있다. 그리고 2악장 아다지오에서 슬픔에 가득 찬 피아노의 음색은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의 애틋한 아픔을 전해 주기라도 하듯 곳곳에 눈물의 그림자가 고여 있다. 고요함을 헤치는 하스킬의 비감 어린 피아노는 너무도 구슬픈 노래로 이어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시울이 젖고야 말 것이다. 깊은 심연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녀의 고독의 비가가 덧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리고 지휘를 맡은 파울 자허(Paul Sacher, 1906~1999, 스위스)는 명지휘자 펠릭스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 1863~1942)의 제자로 현대 작품 소개의 공이 커서 바르토크, 힌데미트, 오네게르, 스트라빈스키 등이 곡을 헌정하기도 하였다. 이런 그의 녹음은 드문 편이나 첼리스트인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와 협연한 보케르니(Luigi Boccherini)와 비발디 협주곡에서 견실한 연주를 보여준 바 있다.
한편 여기의 연주에서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아닌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연주인데 다소 기량이 처짐에도 불구하고 화사하면서도 여리게 흔들리는 관현악의 반주가 오히려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연주를 빛나게 하고 있다. 마르케비치(Igor Markevich, 1912~1983) 반주의 우악스런 것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음산한 깊은 음영은 정말로 값진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단순한 오케스트라의 기량의 문제는 정말로 부질없다 하겠다.
참고로 하스킬은 죽기 1년 전인 1959년 뮌쉬(Charles Munch, 1891~1968)와도 이 23번 협주곡의 실황 연주를 남긴 바 있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