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가와 바이올린 협주곡
이 협주곡의 첫 착상은 작곡자 스스로가 바이올리니스트였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는 어렸을 적 독학으로 바이올린을 배웠고, 20세 때에는 다시 런던에 가서 배웠으나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접고 고향 우스터(Worcester)로 돌아와 지방 악단에 적을 두고 주로 작곡에 전념하였다.

이런 엘가는 33세 때인 1890년 협주곡을 작곡하려고 마음먹는데, 이것은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오스트리아)가 연주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04년 크라이슬러를 직접 만나게 되는데, 1년 뒤 한 신문(Hereford Times)과의 인터뷰에서 크라이슬러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엘가를 들었고, 또 엘가가 자신을 위해 바이올린 협주곡을 하나를 써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엘가는 1905년 협주곡의 첫 악장의 스케치를 남기게 된다. 그리고 1909년에는 2악장의 구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무렵 크라이슬러는 “엘가가 1906년 자기에게 협주곡을 하나 써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나는 곡의 첫 소절도 아직 받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어 작곡이 순조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10년 엘가가 가장 왕성하게 작곡을 하던 때인 53세 때 로열 필하모닉 협회로부터 작곡 의뢰받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이 협주곡을 모두 완성하게 된다. 그래서 같은 해 11월 곡의 헌정자인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과 작곡가 자신이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 협회 관현악단에 의해 초연을 하게 된다. 크라이슬러는 이 곡을 베토벤 협주곡 이래 가장 훌륭한 곡으로 평가하였고, ‘나는 퀸즈홀(Queen’s Hall)을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라며 환호하였다고 하는데 크라이슬러의 말대로 초연에서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곡은 베토벤의 것을 의식했는지 몰라도 50여 분에 이르는 대규모의 협주곡으로 어려운 기교가 구사되며 그가 창안한 피치카토(pizzicato)이 트레몰로(tremolo) 주법을 3악장에 도입하기도 하였다. 곡상은 엘가의 타 작품과 마찬가지로 화려하지는 않으나 풍부한 선율과 차분한 아름다움이 숨 쉬고 있으며 영국적인 견실함에 빛나고 있다. 그러나 악상 구성 등이 약간은 과장되게 표현되어 공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악보에는 작곡가 자신이 스페인어로 ‘여기에의 정신을 동봉한다(Aquiest’s encerrada el alma de…)’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이 말은 엘가가 생각한 것이 아니고 프랑스의 작가 르사지(Alain Rene Lesage)의 작품 『L’Histoire de Gil Blas de Santillane』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랫동안 무엇을 말하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1909년 엘가가 플로렌스의 별장에서 머물었던 것이 2악장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이곳은 그의 미국 친구인 줄리아(Julia Worthington)의 별장이어서 한때 이 수수께끼의 주인공이란 설이 있었고, 1912년에는 엘가 자신은 이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하여 교향곡 2번, 합창곡 <The Music Makes>를 두고 ‘나의 영혼으로 쓴 것이다’란 말을 하는 등, 마치 그의 작품 <수수께끼 변주곡(Enigma Variations)>에서처럼 의문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엘가 연구가인 케네디(Michael Kennedy, 영국)는 그의 저서 『Portrait of Elgar』(1968년)에서 이 수수께끼를 풀게 된다. 그는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엘가가 20여 년 동안 ‘아네모네(windflower)’란 애칭으로 불렸던 친구(Charles Stuart-Wortley)의 부인 스튜어트-와트리(Alice Stuart-Wortley)라고 한다. 그녀는 유명한 영국 화가인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딸이기도 했다.

이렇게 엘가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특별한 감성적인 자극이 필요하였고 그래서 스튜어트 와트리와의 순수한 플라톤적인 사랑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 스튜어트-와트리를 위해 피아노 협주곡을 구상하지만 미완성의 단편으로 남게 된다(이 단편을 가지고 영국의 작곡가 발커(Robert Walker)가 완성시켜 내놓은 바 있다).

말하자면 엘가는 자신의 숨겨진 사랑을 피아노 협주곡에 담으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다시 바이올린 협주곡에 그 속내를 수수께끼 같은 말과 더불어 남기게 된 것이다. 이런 탓에 크라이슬러 말대로 작곡이 다소 늦어지는 일도 생겼던 것이다.

이런 숨겨진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이 곡은 가장 고고한 형식으로 이루어진 엘가의 가장 정성 어린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크라이슬러도 가장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감정이 집약된 음악으로 높게 평가하였다. 바이올린 협주곡치고는 다소 긴 곡상이지만 그 따스한 정감으로 이루어진 노래와 안단테의 짙은 정서가 감상자를 훈훈한 마음으로 채워줄 명작으로 기록되고 있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