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과 첼로 협주곡
고금의 모든 첼로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곡은 단연코 드보르작의 작품이라 할 것이다.

드보르작이 작곡한 첼로 협주곡은 b단조 협주곡 말고 1865년 그의 나이 24세 때 작곡한 A장조 협주곡이 있으나, 오케스트레이션 부분이 완성되지 못하였고 작품 번호도 없어 현재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또 1891년 작곡한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작품인 <론도(Rondo)> g단조 Op.94, 1892년 작곡한 <고요한 숲(Silent Woods)> Op.68-5가 있는데 이 모두가 b단조 협주곡 작곡의 기초가 된 작품들이다.

곡은 1895년 그의 나이 54세 때인 미국 체류 기간(1892~1895) 중에 작곡되었다. 이 시기는 지네트 더버(Jeanette Thurber, 1852~1946)부인이 설립한 뉴욕의 국립 음악원에 원장으로 미국에 머무를 무렵으로, 이때 탄생한 곡이 유명한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와 현악 4중주 <아메리카>였다.

한편 체류 기간 중 나이아가라 폭포를 본 드보르작이 ‘장엄하도다! 이것은 b단조 교향곡이 되리라’라고 하였고, 훗날 이것은 협주곡의 장엄한 1악장 탄생이 밑거름이 된다. 한편 미국으로 가기 전 그는 동향의 첼리스트 위한(Hanus Wihan)과 보헤미아 지방을 순회 연주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첼로 협주곡에 대한 영감을 간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작곡된 작품은 낯선 땅의 풍경에 대한 구대륙 사람의 동경과 두고 온 조국 땅의 흙냄새를 그리워하는 감상(感傷)이 절모하게 어우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악장 망향의 노래는 전형적인 보헤미아의 감상(感想)이 넘치며, 노래하는 악기 첼로의 서정이 가슴 깊이 여미어 온다. 또한 1895년 세상을 떠난 그의 첫사랑인 조세피나 세르마코바(Josefina Cermakova)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그녀가 좋아하던 가곡 ‘나를 홀로 있게 해서(Lasst mich allein)' Op.82의 선율이 인용되기도 했다. 참고로 조세피나는 드보르작 아내 안나(Anna Cermakova)의 언니이다.

곡은 완성 후 1895년 위한의 충고로 3악장 솔로 부분을 약간 수정하기도 하였다. 초연은 1896년 3월 영국의 첼리스트 스턴(Leo Stern)과 자신의 지휘로 런던 필하모닉 협회의 음악회에서 이루어져 위한은 정작 초연을 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곡을 헌정 받았고 초연 3년 뒤 연주도 이루어졌다. 초연 뒤 드보르작은 다시 프라하에서 마지막 60마디를 손질하게 되는데, 이것은 1894년 뉴욕 필하모닉 음악회에서 빅터 허버트(Victor Herbert)의 첼로 협주곡 2번 Op.30을 듣고서 고역에서 화려한 효과를 주는 가능성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그리고 브람스 등이 첼로 협주곡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드보르작의 작품은 단연 돋보이는 걸작으로 이 곡을 접한 브람스가 “이런 첼로 협주곡을 사람의 손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왜 몰랐을까. 만약 알았더라면 내가 진작에 썼을 것이다”라고 말한 일화는 널리 알려진 것이다. 물론 드보르작 이전 시대에는 첼로라는 악기가 주법이나 연주 효과 면에서 다소 뒤쳐졌던 것도 고려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슬라브적인 정열과 미국 민요가 갖는 애수 띤 서정성을 겸비한 이 곡은 고난도 기교를 구사해서 비르투오조풍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고, 다이내믹한 오케스트라 반주의 절묘한 조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첼로 협주곡의 명곡 중 명곡이다. 드보르작 스스로도 <신세계로부터> 교향곡과 더불어 가장 사랑하는 곡이라고 하였고 1악장에 대해서 ‘나 자신이 지휘할 때마다 늘 감동한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결국 이 곡은 보헤미아의 향수, 신대륙에서 얻은 영감 그리고 첫사랑에 대한 애절한 인간미가 한데 합쳐진 한 편의 대서사시라 하겠다. 이런 곡인만큼 모든 첼리스트에게는 하나의 시금석과 같은 존재로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