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er Philharmoniker
명반이야기

에마뉴엘 포이어만이라는 첼리스트의 이름을 접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의 연주를 얘기할 때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는 것은 바로 포이어만의 것이다.

이런 포이어만의 연주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그가 1937년 스위스의 취리히에 머물 당시의 이야기다.

포이어만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감춘 채, 어느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의 카잘스(Pablo Casals, 스페인) 연주를 들어 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른 더 좋은 연주는 없느냐고 묻자 점원은 다른 음반을 보여주며 “이 연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어느 것도 당신 마음에 드는 연주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바로 그 음반은 다름 아닌 포이어만 자신의 연주였다고 한다. 당시 포이어만의 명성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레코드방 점원조차 연주의 훌륭함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포이어만은 40년의 짧은 생을 살면서 그의 재능을 널리 세상에 알리지도 못한 채 세월의 뒤안길 속으로 사라져 가버린 불운의 음악가이자 명첼리스트였다.

그는 1902년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속했던 갈리시아(우크라이나)에서 첼리스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 시절부터 천재로 칭송되며 스승으로부터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하였고, 대지휘자인 아르투르 니키쉬(Arthur Nikisch, 1855~1922, 헝가리)나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 1863~1942, 오스트리아)가 연주를 청할 정도로 재능이 출중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미 11세 때 바인가르트너와 빈에서 데뷔하였고 런던에서는 토스카니니와 <돈키호테(Don Quixote)>를 연주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실내악에도 관심이 많아 골드베르크, 힌데미트와 3중주단을 결성하였고, 카잘스 트리오에 버금가는 백만 불 트리오(하이페츠, 루빈스타인, 피아티고르스키)의 초기 멤버로 활동하였다.

2차 대전 중인 1935년에는 나치를 피해 미국에 와 발터(Bruno Walter)와 하이든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였다. 또한 1938년부터는 뉴욕에 거주하며 커티스 음악 학교에 재직하며 교수로서의 명성을 쌓으며 카잘스(Pablo Casals, 스페인)와 더불어 현대적 첼로 주법(articulation, phrasing)을 창시한 인물로도 알려진다. 그의 악기는 오랫동안 몬타냐나(Montagana)를 썼으나 나중에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를 애용하였다. 말년에 그는 미국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1942년 급서(急逝) 하였다. 그의 나이 불과 40대였다.

이렇게 요절한 불세출의 천재 첼리스트인 포이어만이 남긴 드보르작 협주곡 연주는 여타 훌륭한 연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독특한 멋을 발하는 숨겨진 연주로 알려진다.

연주는 1928년 미카엘 타우베(Michael Tauber)가 지휘하는 베를린 국립 가극장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녹음(PEARL/NAXOS)도 높은 기량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연주이지만, 그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죽기 2년 전인 1940년 뉴욕에서의 바르진(Leon Barzin, 벨기에)과의 실황 연주가 더욱 풍부한 음악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연주는 과연 천재 대가의 명성답게 큰 스케일과 당당하고 낭랑한 노래가 깊은 감명을 전해 준다. 요즘 각광받는 연주자의 기교적 연주에 비한다면 다소 초라하게 들릴지 모르나, 순박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음악적 감흥은 단연 돋보이는 면이다.

이렇게 과시적인 것이 아닌 금의 진지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기에 더욱 위대해 보이는 것이다. 특히 2악장 아다지오에서 들려주는 그 구슬픈 울림은 최고의 서정성으로 긴 여운을 남기며 가슴 저리게 다가선다. 마치 첫사랑의 여인을 떠올리듯이.

이렇듯 그가 보여주는 소리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의 아름다움, 선명히 떠오르는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음의 명료도), 유연한 프레이징(phrasing- 음악의 흐름을 유기적인 의미 내용을 갖는 자연스러운 악구(樂句)로 구분하는 것), 자연스러운 포르타멘토(portamento-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옮아갈 때, 아주 매끄럽게 부르거나 연주하는 방법) 그리고 풍부한 음악적 감성이 듣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케 하여 감히 최고라 할 것이다.

듣노라면 과연 왜 포이어만의 드보르작이 환상적 연주인가 하는 것에 족히 수긍이 갈 것이다. 자연스런 아름다움의 극치를 통해 보여준 그의 미감은 정말로 순박한 감동으로 남는다. 마치 드보르작이 생각했던 인간적이고 소박한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키면서.

다만 협연한 오케스트라 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화려한 면이 축소된 듯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세계의 많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이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로 대표되는 극소수의 것들을 제외하고는 사실 정상급의 기량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상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40년대 너무도 엉성한 기량의 뉴욕 필하모닉의 경우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참고로 음악은 포이어만 가족과 국립 오케스트라 협회(National Orchestral Association)의 허가를 얻어 발매한 것으로 CD는 필립스 레전더리 클래식(LEGENDARY CLASSICS)으로 발매된 바 있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