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er Philharmoniker
명반이야기

브람스 교향곡 제4반의 연주에서는 정감의 표출이란 것이 주를 이루면 이런 면을 강조한 연주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브루노 발터(Bruno Walter)의 것으로 향수와 애수에 넘치는 억제된 슬픔을 구구절절이 노래하고 있는 또한 푸르트벵글러 역시 절실한 동경의 슬픔을 로맨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반면 스위트너(Otmar Suitner, 1922~ , 오스트리아) 같은 이는 구성적인 아름다움을 통한 적적(寂寂)한 고독을 그리고 있다.

이런 낭만주의적인 정감과 구성적 균형감의 미를 완벽하게 조화시켜 이것을 극명하고도 완벽한 비극적 감정의 절정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연주이다.

녹음이 극히 드문 카를로스의 연주는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것이나, 1980년 녹음된 이 브람스 4번의 연주는 이전의 명연을 능가하는 결정적 연주로 당당히 자리하게 된다.

그는 이른바 정감의 감정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닌, 완급과 기복을 크게 잡고 강약의 철저한 대비를 통한 리듬의 절묘한 처리로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완벽성을 추구하고 있다. 감정이입을 억제한 채 호쾌한 양감과 유려한 진행, 세밀한 표정의 변화, 세련된 흐름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출하고 있다. (註 : 가능하다면 2009년에 올려진 ‘카라얀’의 연주 또는 [클래식을 좋아하세요?] 게시판에 올려진 ‘오먼디’의 연주와 비교 해보기 바랍니다.)

여유 있는 템포로 시작하는 1악장의 흐느끼는 듯한 서늘한 감흥이 전편에 가득히 피어오른다. 또한 악장을 한 번에 조망하며 꿰뚫고 있어 마치 끝나는 시점을 보고 시작한 연주처럼 처음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가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균형미가 실로 놀랄 만하다. 이런 것은 악장의 마지막 부분의 예측된 음악적 정밀함에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이렇게 클라이버는 이 곡이 갖는 단점이라 할 텅텅 빈 사닥다리와 같은 곡상을 완벽한 조형미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편 2악장의 풍부한 정감은 감칠맛을 더하며, 3악장의 견고하고 정치한 구성을 통한 극적인 면도 일품이다. 또한 4악장과 파사칼리아의 처리 솜씨 역시 대단히 절묘하여 곡을 극한의 희열감으로 이끌고 있다. 그러면서도 곡이 가지고 있는 고뇌의 뉘앙스도 결코 놓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연주를 맡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소박한 면도 오히려 곡상의 수수한 적적함을 더욱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이런 클라이버의 연주 기법은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 작위가 없는 자연스런 고독의 체온을 드러내고 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럼없는 음악적 감동을 만끽하게 해 주는 것이다. 니이만(Walter Niemann, 독일)이 지적한 ‘비탄적인 것’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클라이버는 자신만의 신선하고 탁월한 감각으로 곡을 새롭게 분석하여 곡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유감없이 내보이며 완벽에 가까운 음악을 만들어 브람스 만년(晩年)의 심경에 한층 더 다가서고 있다. 또한 앞서 뷜로가 말한 철(鐵)과 같은 개성 그러나 고요함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한한 생명력을 느끼는 연주가 바로 클라이버의 연주가 아닌가 한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