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와 교향곡 제2번
  아르투로 토스카니니하면 떠오르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그의 음악적 카리스마를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콧수염이고, 다른 하나는 신즉물주의(新卽物主義, Neue Sachlichkeit)로 대표되는 그의 음악관이다.

  지휘에 있어 20세기 초 낭만적인 연주가들의 해석의 과장과 곡해에 대해 싫증을 느낀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가 “그저 악보대로 연주하면 된다. 아무것도 첨가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한 것을 토스카니니의 태도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영국의 음악 평론가 케른즈(David Cairns. 1926 ~ )는 지적하고 있다.

  이런 좋은 지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토스카니니의 연주 경향은 그가 태어난 이탈리아의 겉만 번지르르하고 내용이 없는 연주예술 전통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이렇게 토스카니니의 해석은 작곡가의 의도를 존중한다는 근대적 정신을 형성한 것이나, 굳이 라이벌 격인 푸르트벵글러와 토스카니니를 애써 대비시켜 전자는 주관적 해석이고 후자는 악보에 충실한 객관적 해석이라는 신화(神話)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릇된 선입감은 신즉물주의에 대한 좁고 극단적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즉물주의는 원래 미술 용어로 제1차 세계 대전 후 주로 독일에서 표현주의(表現主義)에 대한 반발로 대두된 것이다. 이것이 특히 연주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코스카니니 같은 인물이 바로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되는 것이다. 즉 19세기 낭만주의를 바탕으로 한 주관적, 자의적 해석에 대한 반동으로 작품에 충실한 연주 양식이 확립되었던 것이다. 토스카니니를 비롯하여 크라이슬러, 엘만, 시케티, 기제킹, 박하우스, 하이페츠, 피셔, 슈나벨, 카잘스, 포이어만 등 거의 모든 거장 연주가들에게 신즉물주의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이런 해석을 악보에 없는 것을 일체 배격한다는 것으로 좁게 인식, 지나치게 작품 자체에만 매달려 경직된 해석을 보인 것도 사실 있어 왔다. 따라서 악보에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토스카니니보다는 푸르트벵글러의 해석에 더 많은 호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해서 토스카니니를 낮게 평가하는 경우는 없을 뿐 아니라 그의 신즉물주의적 연주예술사상은 오히려 카라얀이나 므라빈스키의 예풍(藝風) 속에서 더욱 발전하게 되는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

  1954년 토스카니니가 은퇴하자 NBC 교향악단은 지휘자 없이 1955년 세계 일주연주 여행을 끝으로 자진 해산하였다. 이때 우리나라도 방문하여 마지막 연주를 들려준 바 있다. 이들의 해산은 더 이상의 위대한 지휘가가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지휘자였는가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이다. 이런 위대한 지휘자인 토스카니니를 가장 잘못 이해한 경우가 앞서 말한 선입감에 사로잡혀 그는 늘 같은 방식으로만 지휘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소개하고자 하는 그의 브람스 교향곡 연주를 접한다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음악성을 추구한 연주가였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먼저 토스카니니가 남긴 브람스 교향곡 녹음 자료를 살펴보자. 교향곡 1번은 7회, 2번 교향곡은 5회, 3번 교향곡은 6회, 4번 교향곡은 5회로 실로 많은 수이다. 말하자면 교향곡 전곡 연주로도 무려 5번에 걸친 놀라운 것이다. 이것은 토스카니니가 브람스 교향곡에 남다른 집착을 보였다기보다는 그가 평소 추구하던 많은 연주를 통한 다양한 해석의 추이일 것이다.

  이런 많은 연주 기록 중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 유명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1952년 실황 전 4곡 녹음이다. 이것은 카라얀이 맡아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높게 평가한 토스카니니가 영국을 방문 연주한 것인데 천재 호른 주자인 브레인(Denis Brain)이 이 악단의 수석주자였다. 특히 1번 교향곡의 연주가 높게 평가되는 연주인데, 질풍노도만을 생각했던 이들을 자못 놀라움에 빠뜨리는 유연한 곡상의 전개가 인상적인 유명한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보편적인 연주로는 1951년, 52년의 NBC 교향악단의 전곡 연주(RCA)이다.

  토스카니니의 수많은 브람스 교향곡 녹음은 어느 것이나 훌륭한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2번의 경우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의 모든 연주가 ㅈ ㅗ금씩 다른 내용을 추구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여러 해석의 시도를 통해 브람스 교향곡 2번의 최고 연주를 탄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교향곡 2번의 연주 기록은 1938년 BBC 심포니 연주를 필두로 하여 43년 NBC 심포니, 51년 NBC 심포니의 카네기 홀 실황, 전곡 녹음 중의 52년 NBC 심포니, 그리고 52년 필하모니아와의 실황이 그것이다. 그의 2번 연주는 그만의 시원스런 다이내믹과 완벽한 앙상블 그리고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선율미가 일품이다. 템포는 만년으로 갈수록 대부분의 연주가 빠른 경향이나 반드시 모든 경우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르는 토스카니니의 놀라운 심미안이기도 하다. 복잡할 정도로 상이한.

  2번의 경우 1952년 9월 필하모이아의 연주보다 오히려 7개월 앞선 52년 2월 NBC 심포니아와의 연주가 좀 더 빠른 템포의 격정을 보여준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빠른 것이란 실제 연주 시간에 있어서는 근소한 차이라서 연주 느낌상의 미묘한 변화를 말한다.

  한편 여기 소개한 것은 NBC 심포니와의 51년 연주인데 1년 후인 52년의 연주(RCA)와는 다른 꽉 짜여진 구성과 넉넉한 여유를 추구한 이 곡 최고의 연주로도 손색없는 놀라운 연주를 들려준다.

  브람스의 교향곡 중 다소 소외된 듯 보이는 이 2번 교향곡에서 토스카니니는 이 곡이 가지는 밝고 쾌활한 그러면서도 브람스 특유의 어두운 감상의 흔적을 놀랍게 조화시키고 있다. 1악장 풍부하고 유연한 울림을 통한 정열과 서정의 적적한 풍경, 2악장 브람스 자신의 평화롭고 깊은 내성의 표출, 3악장의 우아하고 세밀한 감정을 통한 회상 그리고 4악장 영웅적인 투쟁을 통한 최후의 해방과 광명을 극도의 치열함으로 보여준다.

  특히 피날레의 팀파니와 현악의 눈부신 진행은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속도는 과연 토스카니니만의 솜씨라 할 것이다. 또한 이에 대응하는 NBC 교향악단의 놀라운 민첩성도 같이 한다. 이런 강렬한 선율과 리듬감으로 무장한 격정은 가히 ‘불의 전차’라 할 것이며, 저 유명한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의 빠른 연주(1940년 녹음)나 푸르트벵글러의 연주(1944년 녹음)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다만 발터(Bruno Walter)의 뉴욕 필하모닉과의 모노 연주(1953년)만이 비견될 뿐이다. 이런 4악장 연주 후 관객의 환호도 대단한 것이라, 참으로 전율적인 감격을 선사하는 충격적 연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빠름과 느림 그리고 원숙한 부드러운 울림을 조화시킨 연주는 토스카니니가 얼마나 음악적으로 높은 경지를 이룩한 이였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브람스를 ‘정열의 속 태움’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브람스의 숨겨진 폭발적 열정을 만천하에 처음으로 드러낸 토스카니니의 연주를 그 누가 악보에만 충실한 연주라 말하겠는가?

  흔히 푸르트벵글러는 후기 낭만주의 유물로 비난하고, 토스카니니를 단순한 인 템포(in tempo)의 객관주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연주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 좀 더 완벽한 음악을 추구하였던 토스카니니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음반은 헌트 레이블과 아르카디아(ARKADIA 7062)에서 전집으로 발매되었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