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와 독일 진혼곡
우리는 브람스의 음악을 말할 때 ‘정열의 속 태움’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것은 그의 음악의 특징을 대변하는 것으로 터질 듯 말 듯 하는 갑갑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언가 밖으로 분출되는 듯 보이지만 결코 만개할 수 없는 브람스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고독의 그림자인 것이다. 물론 정열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전체적인 분위기에 있어서 매우 내성적이란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 곡으로 그의 <독일 진혼곡>을 들곤 한다. 이 곡은 죽은 자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브람스 자신의 삶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 성찰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제목이 독일 진혼곡인 것은 통상적인 레퀴엠의 라틴어 가사가 아닌 독일어를 가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사는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독일어로 번역한 1537년판의 신약과 구약의 두 성서에서 취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라틴어 가사의 성경보다 약 30년 이상이 앞서는 것인데 1570년 교황 피우스 5세가 제정한 라틴어 가사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독일인인 브람스는 여기서 독일적 신앙의 원천을 찾아서 자신의 의도에 맞는 레퀴엠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브람스의 레퀴엠은 가사에서도 일반적인 레퀴엠과 다르지만 교회에서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음악회용인 것이다.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그 형식이나 내용상으로 일반 레퀴엠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 모두 7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죽음에의 운명과 시 ㅁ판의 공포 그리고 위안과 슬픔, 부활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또한 보통 라틴어 레퀴엠의 마지막 악구와 <독일 레퀴엠>의 마지막 악구인 ‘주 안에서 죽은 자는 행복하도다! 와 뜻이 비슷하다. 결국 모차르트나 브루크너의 레퀴엠과 같은 성격의 작품인 것이다. 가사와 연주회용이라는 것만 빼고는.

작곡 동기에는 여러 가지의 설이 있다. 먼저 일반적인 설은 슈만의 죽음이다. 1856년 은사이자 후원자인 슈만이 정신병원에서 비극적인 최ㄹ후를 맞이하였는데 이것이 작곡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브람스 전기 작가인 칼베크(Max Kallbeck. 1850~1921)도 “슈만의 유품을 정리하던 브람스가 선배의 작곡 계획서에서 <독일 진혼곡> 제목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것이 마치 자신에게 남겨진 유언처럼 여기고 작곡하기 시작했다”라고 하고 있다. 또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전쟁의 희생자를 위한 것이다라는 설도 있는데 작곡의 착수는 이미 전쟁 발발 이전이었다.

한편 브람스 어머니의 죽음과 연관설도 있다. 그의 노모(Johanna Henrika Christiane Brahms, 1789~1865)는 17년 연하 남편(Johann Jakob Brahms, 1806~1872)과 늙어서 별거를 하다가 쓸쓸히 생을 마쳤는데, 브람스도 14년 연상의 여인 클라라(Clara Schumann. 1819~1896)를 사모했던 것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죽음이 남달랐을 것이다.

결국 슈만의 죽음으로 작곡의 착상을 얻고 어머니의 죽음으로 그 작곡에 박차를 가해 곡을 작곡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 중간에 일어난 전쟁에서도 그 어떤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이렇게 곡은 착수에서 완성까지 무려 12년이 걸린 것으로 누구에게나 일생에 단 한 번의 작곡 기회가 주어지는 레퀴엠이었던 만큼 신중하기로 소문난 브람스로는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전 7곡 중 제2곡이 제일 먼저 작곡되었는데, 친구 디트리히(Allbert Dietrich)에 의하면 피아노 협주곡 1번 Op.15의 2악장 스케르초 악장으로 만든 것을 협주곡에 쓰지 않고 레퀴엠에 쓴 것이라고 한다.

1866년 봄에는 칼스루에에서 제3곡을, 1866년 여름 스위스 툰(Thun)에서 제1곡과 제4곡을, 그리고 8월에 바덴 바덴에서 제6곡과 제7곡을 완성하였다. 1868년에는 함부르크에서 제5곡을 작곡 드디어 전곡을 완성시키게 된다.

초연은 1867년 빈에서 첫 3곡만, 1868년 브레멘에서는 5곡을 제외한 전 6곡을 그리고 전 7곡의 초연은 1869년 라이프치히에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초연도 상당한 기간을 두고 한 것은 청중의 반응을 살피면서 진가를 알리고자 하는 작곡가의 신중함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