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ading...
  • Loading...
피리산조

촌스런듯 하면서도 싱싱한 음색을 갖는 피리는 본래 서역 지방에서 전래된 악기로 고구려 떄부터 썼다고 하는데 중국으로부터 당피리가 들어온 뒤로는 이 당피리와 구별하기 위해 전래의 피리를 향피리라 불렀다.

그런데 이 향피리는 다시 가늘게 만들어 줄 풍류(일명, 현악영산회상)라는 음악을 연주하기에 알맞는 세피리와 굵게 만들어 대풍류(일명, 관악영산회상)라는 음악을 연주하는데 쓰는 대피리로 구별하는데 피리 산조는 이들 향피리 가운데서도 대피리로 연주하는 음악이다.

피리산조는 조선 말기의 피리 명인 최응래가 처음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다. 최응래는 피리산조나 피리 시나위 뿐만 아니라 피리로 판소리 선율을 잘 불어 심청가 한 마당을 피리로 연주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김창조가 가야금 산조를 지어 이름을 떨쳤고 백낙준이 거문고 산조를 짜서 이름을 날렸던 것 처럼 최응래도 피리 산조를 지었지만 최응래의 피리산조가 그 전승이 끊긴 것은 이것을 배울 제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후 피리 산조는 오진석이라는 뛰어난 명인에 의해 다시 새로 지어진다. 오진석은 조선 말기 1895년 전라남도 화순 동복에서 태어났고 정학기와 박판석에게 피리를 배웠는데 당시 유행하던 가야금 산조에 자극을 받아 피리 산조를 만든 것이다. 오진석의 피리 산조는 이생강이 듣고 채보하여 두었는데 정재국이 이를 발표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정재국은 1942년 충청북도 진천에서 태어났다. 1962년에 지금의 국악고등학교 전신인 국립 국악원 국악사양성소에 들어간 정재국은 당대 최고의 명인인 김준현 김태섭에게 피리 정악을 배웠고 1960년대 말에는 이충선에게 피리 시나위를 배웠으며 1972년에는 이생강이 정리한 오진석의 피리 산조를 익혀 두번에 걸친 그의 독주 발표회에서 연주하였다.

정재국은 현재 국립국악원 지도위원으로 봉직하고 있으면서 각 대학의 국악과에 피리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정재국이 연주하는 오진석류 피리 산조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장단으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진양 장단은 웅장한 느낌을 주는 우조와 화평한 느낌을 주는 평조 그리고 슬픈 느낌을 주는 계면조로 구성되며 중모리 또한 우조와 계면조로 되었으며 중중모리도 계면조로 되어있고 자진모리 또한 계면조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