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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es Un Reve(꿈꾸고 난 후) / Roland Hanna Trio
요즘 재즈계의 뉴스를 뒤지다 보면 부쩍 거장 등의 사망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대부분 ''40-''5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했기에 오늘날 대부분 고희를 넘은 노인들이라 거장 역시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는 듯하다.

작년 11월에도 한 명의 재즈 거장이 우리 곁을 떠났다. 롤랜드 한나! ''Sir''란 칭호로 종종 얘기되던 그가 심장 질환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리고 죽기 2개월 전에 녹음된 그의 라스트 레코딩이 소개되었다.

솔직히 롤랜드 한나는 국내에 그리 널리 알려진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타드 존스-멜 루이스 오케스트라 그리고 프랭크 웨스, 론 카터, 벤 라일리와 결성한 뉴욕 재즈 쿼텟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긴 했지만 인지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동향의 토미 플래나간처럼 깨끗하고 명쾌한 터치 그리고 정교한 손놀림으로 뉴욕의 퀸즈 대학, 시립 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지도한 뛰어난 교육자로 유명하다.

2000년대 들면서 일본의 비너스 레이블에서 앨범을 발표하기 시작한 롤랜드 한나는 본작 이전에 [Dream], [Milano, Paris, New York]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여 일본 내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가 세 번째 작품으로 선택한 레퍼토리는 뜻밖에도 친숙한 클래식 작품들이다. 최근 일본 재즈계는 피아노 재즈 트리오가 유행을 하고 있다.

널리 알려져 있는 재즈 스탠더드는 물론 비틀즈를 위시한 팝 송에서 친숙한 클래식까지 대중적인 음악들을 소재로 재즈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붐이 일고 있는 셈이다. 특히 클래식의 재즈화는 이미 국내에 출시된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의 [Adagio]나 [Classics]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롤랜드 한나의 [Apres Un Reve]는 단언컨대 최근에 접해본 가장 고급스러운 재즈 연주중의 하나라고 할 만 하다.

그가 클래식을 연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황혼기에 들어서(비록 유작앨범이 됐지만) 특별히 사랑하는 클래식 작품들을 선곡한 대목은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마일즈 데이비스, 존 루이스 등과 같은 거장들도 젊었을 때 클래식과의 조화를 시도하였지만 이는 끊임없는 창작욕에서 비롯된 일종의 도전과제였다. 하지만 황혼기에 연주하는 클래식은 도전 과제라기보다는 그 동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신만의 스타일로의 재해석이라 할 수 있다.

롤랜드 한나의 연주를 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친숙한 클래식 작품들의 대중적인 멜로디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클래식 특유의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 또한 위에서 지적했듯이 악보를 읽는 클래식적인 터치가 아니라 통통 튀는 명쾌하면서 간결한 그의 재지한 터치라고 할 수 있다.

롤랜드 한나가 사랑했던 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재즈 안으로 흡수되면서 원곡들이 멜로디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주되는가 하면 원곡에 충실하게 재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가 선보이는 가벼운 스윙감보다는 흑인 특유의 좀 더 그루비한 스윙감이 돋보이며 클래식에 일가견이 있는 론 카터의 베이스 솔로는 물론 롤랜드 한나의 피아노의 솔로에 있어서도 절제된 듯 하면서도 서정미가 극에 달하는 거장의 놀라운 터치가 느껴질 따름이다. 지금까지 롤랜드 한나의 이름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새롭게 재조명을 받으리라 예상된다.

글 출처 : oimusic 2003년 04월호 김충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