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와 사계
우리는 음악사를 논할 때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작곡가로는 바흐, 헨델을 첫째로 손꼽는데 주저함이 결코 없을 것이며, 또한 고전파 시대에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을 당연히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초에는 이탈리아 음악인들이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며 음악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독일인들은 소나타 형식을 확립한 하이든과 이를 이어받은 베토벤을 중심으로 독일 낭만파 음악가들을 높이 평가하며 음악의 본고장을 독일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결국 음악사(音樂史)는 독일인 중심의 역사가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낭만파 시대의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그리고 후기 낭만파의 바그너, 날러, R 슈트라우스 모두가 독일인으로 음악사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음악가는 바흐, 헨델의 독일인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비발디가 그 중심에 서야 마땅할 것이다. 헨델도 젊은 시절 이탈리아로 유학한 후 오페라 작곡가로 두각을 나타냈고 바흐도 이탈리아 유학을 꿈꾸지만 이루지 못하고 만다.
바흐의 <이탈리아 협주곡> BWV 971도 배경에서 탄생한 곡이며 특히 비발디의 음악(Op.3 등)을 편곡하여 작품을 만들 정도였다. 대작곡가 바흐가 이탈리아 작곡가인 비발디의 작품을 격찬하여 많은 작품을 베끼거나 편곡하여 내놓았다는 것은 당시는 이탈리아의 비발디가 독일의 바흐보다도 더 유명한 음악가였던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발디가 음악사에서 가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것은 20세기인 1945년경에 이르러서이다.
비발디는 작품은 무려 약 770여 곡에 달하고 있고 특히 협주곡만도 450여 곡에 이른다. 소나타, 종교 음악, 오페라 등 모든 장르를 걸쳐 작품을 남겼고 음악사상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였던 것이다. 그는 코렐리의 합주 협주곡을 벗어나 토렐리가 이룩한 빠르고-느리고-빠르고의 Ritomello(회귀) 형식의 바로크 협주곡의 기초를 정립하였다. 이것은 고전파 협주곡의 길을 열었고 바이올린 기법을 크게 발전시킨 큰 음악적 공로를 남기고 있다.
참고로 하이든 역시 베네치아 음악가들의 작품을 배운 오스트리아 젊은 음악가들 중 하나였고 특히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음악장서 속에서 <사계>를 찾아내기도 하였던 인물이었다.
이런 비발디의 곡 중에서 단연 손꼽힐 만한 곡은 뭐니 뭐니 해도 협주곡 <사계>라 하겠는데, 이 작품은 원래 협주곡집 Op.8의 <화성과 창의의 시도(Il Cimento, dell'Amonia e Dell'Invenzione)> 12곡 중 제1번에서 4번까지를 말하는 것이다. 12개의 협주곡에는 1번 <봄>, 2번 <여름>, 3번 <가을>, 4번 <겨울>, 5번 <바다의 폭풍우>, 6번 <즐거움>, 7번 <피젠델을 위하여>, 10번 <사냥>의 표제들의 붙어 있는데, 이 중에서 1~4번까지의 4곡만을 묶어 편의상 <사계(Le Quattro Stagioni)>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곡은 사계의 변화하는 풍물을 노래한 작자 불명의 소네트(sonnet: 14행 정형시)에 의하여 음악적으로 묘사하려고 한 완전한 표제음악이다. ‘사계’를 제재로 한 것은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9)가 1661년에 작곡한 발레 <사계>의 선례가 있으나 비발디 이전에 협주곡으로 표제음악을 작곡한 예가 없어 이런 것의 선구자가 되고 있다.
형식은 바이올린 독주와 통주저음을 포함하는 현악 5부의 3악장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단 9번과 12번에는 바이올린 대신에 오보를 사용해도 좋다고 되어 있다. 특히 계절의 서정미를 부각한 각 협주곡의 느린 2악장의 아름다운 선율이 듣는 이의 가슴에 깊게 각인되는 명곡이다. 소네트의 내용은 단조로움을 바탕으로 한 자연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작곡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악보가 1725년경 암스테르담에서 발표되었다. 물론 초연도 불명이다.
비발디는 음악사에서도 그 음악적 가치가 나중에서야 알려졌고 <사계>는 그의 이런 명성을 드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대표 작품으로 자리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역할이 너무 커서 비발디란 작곡가가 한낱 대중적인 작곡가로 전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흔히 비발디 하면 비슷비슷한 많은 양의 작품을 작곡한 인물로 치부하며 특히 같은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인 달라피콜라(Luigi Dallapiccola, 1904~1975)는
‘비발디는 450곡의 협주곡을 쓴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협주곡을 450번 고쳐 썼다’라는 악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비발디 음악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온 것인데, 비슷한 곡이란 것은 비발디만의 음악적 색깔이며 자세히 듣노라면 미묘한 차이에서 오는 음악적 차별성은 언제나 신선한 감흥으로 다가선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 음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