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er Philharmoniker
명반이야기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적인 명곡인 <비창> 교향곡의 연주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지휘자는 단연코 러시아 출신의 거장 예프게니 므라빈스키(Evgeny Mravinsky)이다.

그는 불과 35세의 나이인 1938년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상임지휘자에 올랐고 그 후 1988년 타계할 때까지 무려 50년간 이 악단을 이끈 전설적인 명장이었다.

냉전 시대에 이런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의 음악은 철의 장막에 갇혀 있는 그야말로 상상 속의 환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1956년 모차르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빈에서의 음악제에 말로만 듣는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이 처음 서방 세계에 그 신비스런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일은 한참 동안 서방 세계를 흥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DG사에서는 이 환상이 지휘자의 녹음을 계획하게 되고,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 5번은 런던에서 그리고 6번 <비창> 교향곡은 빈에서 녹음을 하여 드디어 필하모닉-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은 그야말로 선풍적인 화제를 일으키게 되고, 결국 최고 연주라는 찬사를 얻게 되었고, 내로라하는 거장급 지휘자들은 모두 숨을 죽여야만 했던 것이다.

녹음 후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연주는 그 찬란한 빛을 잃지 않고 있으며 어느 지휘자의 도전에도 끄떡없이 아성을 지키고 있다. 이런 므라빈스키의 아성에 도전장을 낸 이들 중에는 카라얀이 있다. 그는 모두 7차례나 녹음을 내놓았고 나름대로 좋은 평가임에도 불구하고 므라빈스키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 외에도 번스타인, 플레트네프, 시노폴리, 아벤트로트, 토스카니니가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여타 지휘자들의 도전이 무수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발아래 있음은 므라빈스키의 자취가 너무도 위대하고 크기 때문일 것이다.

므라빈스키가 토해 내는 거대한 활화산과 같은 러시아적 깊은 정서는, 감히 서방 거장 지휘자들이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것으로, 듣는 이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다. 결코 유연하다고 볼 수 없는 현악의 질감과 거칠고 광활한 금관의 포효하는 듯한 울림은 러시아 음악의 본령이 차이코프스키의 진한 체취를 접하게 된다.

템포도 극단적으로 변하지만 울부짖는 러시아의 깊은 정서는 본고장의 연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탁월한 것이다. 더욱이 가공할 만한 다이내믹한 필치는 놀라운 감동으로 이어지고야 만다. 그가 표출하는 그 서늘하고 처절하면서도 냉철한 비애의 연주는 작곡가 차이코프스키가 추구한 구극의 심경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비평가 스타소프가 말한 “낙담과 절망의 무서운 통곡, 나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던가?”라는 구절이 생각하는 연주가 바로 므라빈스키의 연주가 아닐까 한다. 이런 므라빈스키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연주는 영원한 고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