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er Philharmoniker
명반이야기

네덜란드 출신의 지휘자인 켐펜(Paul von Kempen)은 17세 때 멩겔베르크(Willem Mengelberg, 1871~1951, 네덜란드)가 지휘하는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Royal Concertgebouw Orchestra)의 악장을 지낸 후, 1933년부터 바이올리니스트에서 지휘자로 전향하였다.

1934년부터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resden Philharmoni -c Orchestra)를 맡아 8년간 이끌면서 이 악단을 최고 수준에 올려놓음으로써 ‘오케스트라의 나폴레옹’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한편 1940년부터는 베를린 국립 가극장 관현악단 지휘자를 겸하였고, 1952년부터는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의 후임으로 아헨 가극장의 감독을 지냈다.

만년(晩年)인 1949년에는 힐버슘 방송 교향악단을 맡았고, 1953년 부레멘 관현악단을 맡는 등 다시 활동을 재개하였고, 1955년 암스테르담에서 62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2차 대전 후 나치에 협력한 전력으로 인하여 네덜란드에서 활동을 금지 당하였다.

이것이 그의 명성을 퇴색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한낱 잊혀진 지휘자로 자리하는 것이 되고 만다. 전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많은 활동을 펼친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angler, 1886~1954, 독일)의 경우와는 대조적인 것이라 할 것이다.

그는 나치 협력의 전력과 연주에 강한 개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의 망각되는 지휘자로 남게 되어 음반 역시 드문 편이다. 그러나 연주를 접한다면 그가 얼마나 훌륭한 지휘자였던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주요 녹음으로는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3, 7, 8번 연주와 피아니스트 켐프(Wilhelm Kempff)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 그가 장기로 삼았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 5, 6번과 <1812년 서곡>, <이탈리아 기상곡> 등 관현악 작품들의 녹음이다. 이중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이 개성적 표현의 특출한 연주로, 자연스럽고 멋진 감흥으로 이끈 잊혀진 거장의 소중한 기록이다.

한편 교향곡 5번 연주에서 켐펜은 예민한 감수성과 치밀한 조형력으로 상쾌하고도 일체의 허식을 배제한 순수한 음악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획의 구분이 시원하면서도 구성의 허술함이 없는 것으로 음악적 내음과 감정을 자발적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1악장 연주 시작부터 스케일이 광활하여 활짝 열린 듯한 개방감의 호쾌함을 주고 있다. 또한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악단의 풍부하고 충실한 울림은 듣는 이를 열광시키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어, 악장 끝에는 관악의 시원스런 포효가 아주 감격적으로 끝을 맺는다.

더욱이 마지막 4악장의 끝 부분에서 원곡에는 없는 심벌즈를 삽입시키고 있으며, 심벌즈가 장쾌하게 울릴 때면 극적 짜릿함을 느끼게 되어 클라이맥스의 흥분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또 긴 휴지부 전의 호른의 연주에는 불협음을 첨가 곡이 끝이 아님을 알려주어 더욱 극적이다. 이런 예는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 멩겔베르크(Willem Mengelbert),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의 연주에서도 본 바 있는 것이다.

이렇게 켐펜은 차이코프스키가 말한 운명이라는 비애의 숙명을 극복하며 승리의 순간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