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와 교향곡 제5번
1936년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pravda)'는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키의 맥베드 부인(Lady Macheth von Mzensk)>에 대해 ’서구 냄새를 풍기는 형식주의적 작품이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따르지 않았다‘고 혹평을 했다. 나아기 부르주아적이며 인민의 적이라는 혹독한 비판을 하였다.

쇼스타코비치는 1930년대 스탈린 정권의 사회주의 리얼리즘(realism, 현실주의)에 따라야만 했고 결국 1년의 침묵 끝에 탄생시킨 이 곡은 당국이 요구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따른 간결하고 명확하고 진실한 것, 형식상 고전적이면 민족적이며 내용은 사회주의일 것’을 수용하였다.

결국 ‘러시아 음악의 전통적인 비극성과 극적인 전개를 가진 작품’이란 평가를 받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발전되었다.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곡의 부제에서 ‘타당한 비판(Andrey Aleksandrovich Zhdanov 1896~1948, 주다노프 비판)에 대한 소련 예술가의 실제적이고 창조적인 응답’이라고 적고 있다.

그래서 스탈린의 공포에 굴복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현실에 타협한 작품이라고도 하나 베토벤 교향곡 5번과 일맥상통하는 고뇌를 극복하여 환희에 이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슈바르츠(Boris Schwarz, 1906~1983)는 그의 저서 [1917~1970년 소련 음악과 음악적 생애](1972년)에서 “이 교향곡은 사회를 정화하는 힘을 가진 것으로 이런 힘은 위대한 교향곡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말러의 교향곡과도 배견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밝음과 무거움의 조화인.

이런 배경 탓에 쇼스타코비치가 추구한 진정한 의도는 무엇이었겠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그의 정체성은 러시아 지성의 한 유형인 유로지비(yurodivy, holy fool, 바보상자)에 속했던 만큼, 말하자면 체제의 불의에 항거하는 한 예술가의 자기고백적인 순수한 예술 의지인 것이다.

결국 이 교향곡의 직접적인 이념은 톨스토이의 사상과 같은 ‘인간성의 설정’으로 쇼스타코비치 자신도 이 교향곡의 주제는 ‘인간성의 확립’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시종 서정적인 분위기로 일관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는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체험을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 악장에는 모든 비극을 극복하고 밝은 인생관과 삶의 기쁨을 표현하였다’라고 하고 있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같은 인생의 긍정인 셈이다.

종래에는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부응한 것이라고 했으나 이런 사실이 전면적으로 부정되었다. 3악장의 라르고(largo)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영웅적 예찬이 아니라 암울한 비가(悲歌)이며 환희의 피날레라고 하던 끝악장도 사실은 인간의 비극이 주제였던 것이다.

결국 이런 것은 음악 자체의 내용에서 찾은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인데, 더 나아가 연주가에 의한 해석으로 그 답을 찾게 된다. 이제는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극복한 것에 대부분 그 초점을 맞추고 있어 이런 해석이 일반화된 지 이미 오래이다.

특히 히이팅크(Bemard Haitink, 1929~ )의 연주는 서구 음악의 시선을 대변하는 명연이라고 하나 필자는 그리 훌륭한 연주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면 공산주의 체제에 있던 당시 러시아 지휘자들의 연주가 과연 어떠했겠는가 하는 것에는 매우 큰 의문이 남게 된다.

출처 : Goclas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