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이야기
이 곡의 연주는 먼저 요아힘의 조카딸인 다라니가 런던에서 하려고 하였고, 메뉴인(Yehudi Menuhin, 1916~1999) 역시 미국에서 초연을 하려 했으나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알력과 나치의 반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물론 다라니와 메뉴인 모두는 유태인이었다.
결국 1937년 11월 26일 베를린에서 쿨렌캄프(Georg Kulenkampf -f) 의 바이올린과 칼 뵘(Karl Bohm)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정식적인 초연을 하여 이를 방송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녹음은 한 달 후인 12월 20일 지휘자만 슈미트-이세르슈테트(Hans Schmidt-Isserstedt)로 교체하여 남기게 된 것이다.
이렇게 초연은 모두 독일인의 손에 의해 행해짐으로써 나치의 선전용으로도 이용되었다. 또한 이런 배경에는 나치가 금지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대신하려는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다라니는 독일에서의 초연 1년 후인 1938년 2월 16일 영국에서 볼트(Adrian Boult, 1889~1983)가 지휘하는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메뉴인은 1937년 11월 6일 미국 카네기 홀에서 웨스터(Ferguson Webster)의 피아노 반주로 연주하고 다시 12월 23일 골슈만(Vladimir Golschmann)이 지휘하는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가졌다. 그리고는 다음 해인 1938년 2월 바비롤리(John Barbirolli)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녹음을 남기게 된다.
앞서 쿨렌캄프나 다라니가 개정판 악보로 연주한 것과는 달리 메뉴인은 원본 악보를 사용한 최초의 연주이자 녹음의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기회가 허락하는 대로 메뉴인의 연주곡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메뉴인의 연주는 이런 의미 있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쿨렌캄프가 초연한 기념비적인 연주에는 그만 그 빛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이런 쿨렌캄프의 개정반에 의한 연주는 작곡가 슈만의 본뜻을 왜곡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원본 악보 연주를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될 만큼 출중한 연주였던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음반은 이런 초연의 주인공인 쿨렌캄프의 역사적인 최초 녹음이다. 결국 초연자의 권위를 가짐과 동시에 곡의 진가를 최초로 알린 기념비적인 것이다. 또한 가장 완성도 높은 연주로 이 곡 최상의 연주로 당당히 군림하는 위대한 업적이라 할 것이다.
쿨렌캄프는 부쉬(Adolf Busch, 1891~1952)와 더불어 독일 전통 주법을 계승하였는데 부쉬는 나치에 반대해 미국으로 갔고 그는 독일에 남아 활동을 계속하였던 인물이다. 그의 연주는 당대 유행하던 포르타멘토(portamento) 주법의 절제된 멋을 살려 곡의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이런 그의 연주는 먼저 풍부한 바이올린 음색을 바탕으로 한 유려한 선율미가 단연 돋보이는데 슈만 특유의 환상이 복잡한 움직임으로 색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원초적인 분위기에 휩싸인 묘한 어두움과 절망감은 듣는 이에게 심란한 감흥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특히 2악장(langsam) 연주가 뛰어난데 그윽한 정취를 가득 담은 바이올린의 두취적인 아름다움에는 가슴 아린 슬픔과 형언키 어려운 고독이 서려 있어 감동적인 여운을 남긴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3악장 역시 지휘자 슈미트-이세르슈테트의 공감에 넘치는 반주와 더불어 바이올린의 비장미 넘치는 표현에는 광기 어린 슈만의 절망적 고뇌가 슬프도록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다만 원래 악장 지시어인 ‘생기 있게 그리나 빠르지 않게’란 상반된 두 개의 지시어 중에서 ‘바르지 않게’를 지키기보다는 다소 빠른 템포로 종악장다운 활력과 생기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하마터면 잊혀질 뻔한 슈만의 숨겨진 명곡의 진가를 드높인 쿨렌캄프의 연주는 역사적인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자 잊지 못할 귀중한 연주인 것이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