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이야기

이 곡의 초연은 생전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작곡된 지 10년, 작곡가 사후 4년 뒤에 슈만의 50회 생일을 기념하는 1860년 6월 9일 라이프치히 음악원 연주회에서 첼리스트 에베르트(Ludwig Ebert, 1834~1908)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관현악 반주가 아닌 피아노 반주였다.

이런 협주곡의 우수성을 처음 널리 알린 이는 바로 거장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였다.

그는 스스로 말하길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작품보다도 위대한 것이며, 첫 음표부터 마지막 음표까지 완벽한 탁월함이 돋보인다”라고 하였다.

이런 카잘스의 연주는 프라드(Prades) 페스티벌 기간 중의 오먼디(Eugene Omandy, 1899~1985, 헝가리)와의 녹음인데, 70세가 넘는 노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임과 정열미 넘쳐나는 실로 웅장한 모노 시대의 기념비적인 연주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연주 이후 곡의 진가를 인식한 여러 첼리스트들이 앞 다투어 녹음을 내놓았던 계기를 마련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카잘스 연주보다 앞서서 1934년 피아티고르스키(Gregor Piatigorsky, 1903~1976, 우크라이나), 1942년 푸르니에(Pierre Fournier, 1906~1986), 1950년 카사도(Gaspard Cassado, 1897~1966, 스페인)의 연주가 있기는 하다.

카잘스는 녹음의 첫 리허설 당시 첼리스트가 지휘를 해야 된다는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 그 자신이 지휘를 하였다 한다. 그러나 등 뒤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통제하여 곡이 가지고 있는 악상과 템포와 리듬감을 살린다는 것이 그리 수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의 제2 바이올린 수석인 동생 엔리케(Enrique Casals)를 지휘자로 써보았지만 만족스럽게 못했다.

이때 이스토민(Eugene Istomin, 1925~2003)이 스위스에 와 있던 오먼디를 추천했고 급히 불러 녹음을 진행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녹음 진행상 예기치 않은 지휘자가 참가한 것이라 사전에 녹음 계약상의 양해를 구하지 못해 초기 발매된 LP 표지에는 오먼디 이름이 한동안 오르지 못했다.

녹음은 카잘스가 은거하던 프라드에서 이루어진 이 곡의 유일한 연주 기록이며 모노 음질로 정규 악단이 아닌 축제를 위한 오케스트라여서 기량과 연주상의 호흡이 다소 고르지 못하다. 더욱이 카잘스의 첼로 연주도 흥분에 찬 과한 실수가 간혹 보이기도 하나, 그 거장다운 정신적 강렬함의 위엄은 비할 데 없이 출중한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곡의 내용적인 면에 지극히 충실하면서도 카잘스 특유의 거대한 스케일과 당당한 다부짐으로 슈만 음악의 본질을 파고드는 깊은 음악적 감명을 전해 주고 있다. 낭만적 감성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심오함과 강한 정신력으로 그려내는 팽팽한 활력의 긴장감은 대단한 경지를 보여준다. 과연 카잘스다운 위대함을 실감케 하는 열연이자 기념비적인 연주로 기록되는 소중한 유산이기도 하다.

명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angler, 1886~1954)는 말한다. “카잘스의 음악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현악기라는 것이 어떻게 울리는지를 알지 못한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