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와 교향곡

벨기에 태생인 프랑크는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와 마찬가지로 시류를 거부한 중취독성(衆醉獨醒)의 예술가였다.

그는 신앙이 아주 두터운 성자와 같은 근엄하고 조용한 사람이었고, 세속적인 영화도 원하지 않아 성 클로틸드(Saint Clotilde) 성당의 오르가니스트 지위로 평생을 만족해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좀처럼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했고, 비로소 그가 유명해졌을 때는 그의 영생이 얼마 남지 않은 말년이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유일한 교향곡이라 할 수 있는 d단조 교향곡은 1888년 그러니까 그의 나이 66세 때 작곡되어 다음 해 2월 파리 음악원 연주회에 가르상(Jules Garcin, 1830 ~ 1896)의 지휘로 초연되어 친구이자 작곡가 뒤파르크(Henri Duparc, 프랑스)에게 헌정되었다.

여타 작곡가들이 빠르게는 10대 보통 20대 나이에 첫 교향곡을 작곡한 것과 비교한다면 늦어도 한참이 늦은 시기인 것이다.

한편 이런 초연에 대한 평은 좋지 못했다. 청중들은 하품을 할 정도였고, 한 평론가는 “하이든이나 베토벤의 교향곡에 있어서 잉글리시 혼을 쓰는 것과 같은 바보짓을 하지 않았다”고 혹평했다.

특히 작곡가 구노(Chales Gounod, 1818~1893, 프랑스)는 “이 곡은 작곡가가 무능함을 긍정하고 또 그것을 신조처럼 받들고 있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프랑크 자신은 가족들에게 말하길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곡이었어…”라고 하였다 한다.

이렇게 진지하고 자신만의 순수한 어법을 고수했던 프랑크의 주위에는 그를 인정하고 따르는 무리 즉 악파가 생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프랑키스트(Franckist)이다. 프랑키스트에는 댕디와 뒤파르크를 비롯하여 쇼송, 피에르네, 위도르, 볼드, 샤퓌가 있다.

이 교향곡의 특징으로는 먼저 역시 순환형식(cyclic form, forme cyclique)을 들 수 있다.
모두 3개의 순환주제가 사용되어 내면에서 유기적인 결합을 취한다.

또 다른 특징은 전조(轉調 - 악곡의 진행 중 곡조를 다른 조로 바꿈)인데 프랑크 자신이 전조의 천재인 만큼 그 수법이 교묘한데 마치 세속적인 정열을 회피하는 듯 한 내면의 영혼의 진동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특징은 오르간적 울림이다. 1866년 프랑크의 연주를 들은 리스트는 ‘마치 바흐가 재림한 것 같다’라고 할 만큼 오르간의 명수였는데 이 교향곡에서도 이런 울림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프랑크는 매일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고 하는데, 이 교향곡에는 종교적 감동이나 철학적 사색을 표현하려고 했다. 말하자면 음악으로 사색을 하였던 것이다. 이런 교향곡은 여타 프랑스 작곡가들이 주목할 만한 교향곡을 남기지 못한 것을 생각한다면 그 의의가 깊은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댕디는 “가장 순수한 기쁨과 생명의 빛을 향하여 끊임없이 올라가는 인물”이라 극찬하였고, “프랑스에서 참된 교향악 음악의 예술은 프랑크와 그 일파에 의해서 탄생되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베토벤의 영향을 받은 진지한 구성미와 바그너를 연상케 하는 색채감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프랑스적인 선율미가 일품인 프랑스 음사의 한 정점을 이룬 명교향악이라 하겠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 음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