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er Philharmoniker 명반이야기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곡은 구성에 있어 거대하고 치밀하지만 매우 자연스런 흐름을 보여주고 있어 실내악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곡인만큼 제르킨과 부다페스트 4중주단의 연주는 이들의 명성이 주는 묵직한 비중에 버금가는 뛰어난 연주를 펼친다.

전설적일 일컫는 부다페스트 현악4중주단(Budapest Quartet)은 베토벤 현악 4중주에서 혁혁한 연주를 보여준 바 있으나, 브람스 실내악 연주에 관심을 기울여 꽤 많은 녹음을 남겨 좋았다.

현악 4중주 제1, 2, 3번, 현악 5중주 제1, 2번, 클라리넷 5중주 그리고 피아노 5중주가 그것이다.

어느 곡이나 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단 특유의 독특한 해석이 돋보이는 수연이지만, 이 중 단연 빛을 발하는 것이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제르킨(Rudolf Serkin)과 함께 한 피아노 5중주의 녹음인 것이다.

한편 제르킨은 브람스 피아노 5중주의 연주를 이 녹음 말고도 젊은 시절 그의 장인이 이끄는 부쉬 현악 4중주단(Busch Quartet)과 1938년 SP 녹음(EMI)을 남긴바 있다. 이 연주는 2악장 안단테의 아련함이 돋보인 그윽한 격조의 호연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단은 1945년 지휘자인 조지 셸(George Szell)의 피아노 연주로 미 의회 도서관 실황과 1950년 커즌(Clifford Curzon)과 녹음도 남긴 바 있다.

여기 소개하는 제르킨과 두 번째의 녹음인 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단과의 연주는 좀 더 완숙한 정열을 보여준 그의 나이 60세 때의 유례없는 열연으로 스케일이 크고 박진감 넘치는 웅장함이 전편을 압도하고 있는 이 곡 최고의 연주로 칭송된다.

제르킨의 피아노는 조심스러운 페달링(pedalling)으로 섬세한 터치를 이루며 음 하나 하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어 다소 딱딱한 느낌이 들기도 하나, 부다페스트 4중주단의 미묘하고 무거움이 서린 포르타멘토(portamento)와 맞닥뜨려 묘한 분위기를 창출한다. 이것은 곡이 가지는 암울한 정열과 브람스의 젊은 날에 깊게 배어 있는 고통과 쓸쓸함을 극명하게 드러나게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피아노의 민첩하고 생동감이 충만한 음감의 추진력이 곡을 극적으로 이끌고 있고, 바이올린 파트와 첼로의 묵직하고 깊은 정감을 깔고 있는 두터운 울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특히 물결치는 듯한 격한 감정의 흐름은 인생의 고독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명암을 엿보게 한다.

연주는 1악장 알레그로부터 어두운 낭만의 세계를 두터운 음색으로 채색하여 정열적으로 시작한ㄷ. 2악장 안단테의 침착하고 내성적인 친근감은 브람스 내면의 고적한 감정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3악장 스케르초에서 탄력적으로 진행하며 분출하는 정념의 폭발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만하여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정열의 연주가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한마디로 브람스 실내악이 주는 잿빛 감흥을 격하게 표출한 불멸의 연주라 할 것이다.

요아힘의 ‘정열적인 연주가 아니면, 곡이 불분명하게 들릴 것이다’란 말처럼 제르킨과 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단은 놀랄 만한 정열과 감정의 격류로 곡이 가지고 있는 찰나적 희열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