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er Philharmoniker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18세기의 음악은 전적으로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새롭게 대두한 중산층의 예술로 확산되면서 그 예술적 수준은 예전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유지되었다. 폭 넓은 시민문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베토벤은 열정적인 민주주의자이며 공화주의자였다. 정치적 문제에 커다란 관심을 나타냈고, 흔들리지 않는 정치적 이상과 열망을 지니는 서양음악 사상 최초의 음악가였다. 그 이전의 음악가들은 정치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상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3개의 이상은 베토벤 자신의 미학적인 입장, 즉 그의 도덕적 이상이기도 했다. 즉 도덕적인 이상과 미학적 신조의 밀접한 연관은 베토벤의 예술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베토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고대의 호메로스, 페트라르카를 비롯해서 문호 셰익스피어, 쉴러, 괴테였다. 이들은 베토벤의 정신세계를 비추어준 등불이었다. 따라서 베토벤 예술의 도덕적 기초는 이들과 프랑스 혁명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베토벤의 작품이 지니는 가장 뛰어난 특질의 하나는 '숭고한 감동력'인데, 이것은 그 이전 시대의 어떤 작곡가의 작품보다도 우월한 것이다. 특히, 소나타, 4중주곡, 교향곡들 가운데 많은 작품들은 참으로 힘있는 도덕률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도덕률은 본질적으로는 종교적인 것이라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특정한 교회나 신조의 성격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특질의 일부는 괴테의 범신론적인 이상주의에서 유래한다고 여겨진다. 괴테의 위대한 정신과 풍부한 인격, 세계 시민적 이상이 베토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에게 칸트의 엄격한 도덕설을 알게 한 쉴러의 고매한 철학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베토벤의 느린 아다지오 멜로디가 숭고한 찬가를 노래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는 사실이 자주 지적되어 있지만, 수많은 소나타나 교향곡이나 4중주곡의 알레그로도 역시 마찬가지로 엄숙함과 깊은 감명에 가득차 있다. 이와 같은 기분을 적절히 정확하고도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의 고결한 인격성 때문이다. 베토벤의 멜로디를 다른 모든 작곡가들의 멜로디와 뚜렷하게 구별 지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성질인 것이다.

베토벤의 작품은 거의 예외 없이 독특한 액센트와 색채와 감명의 심도를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그 자신의 감정의 세계 - 꿈, 초조, 정열, 야망, 감정과 인격의 高揚, 좌절, 저항, 슬픈 경험, 삶의 기쁨-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는 그릇인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다양한 감정을 나타내기에는 그 당시 존재하고 있었던 음악으로서는 충분하지 못했기에 보다 새롭고 넓은 것을 개척하고, 자기 자신의 예술적 목적에 알맞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전 생애의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자기의 감정을 완전하고도 충분하게 담을 수 있는 표현을 찾아서 그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고, 또한 그러한 세계를 뒤따르는 그의 후배 음악가들에게 넘겨주었다. 따라서 그의 음악은 19세기의 모든 음악적 수법을 의미하는 不動의 기초인 것이다. 슈베르트를 비롯해서 로맨티시즘의 대가들, 베버, 슈만, 멘델스존,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 브람스, 브루크너 등은 모두 이런 의미에서 베토벤의 제자이다.

베토벤은 음악가운데서 유머, 그것도 셰익스피어적 의미의 유머를 사용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셰익스피어적인 유머라는 것은 다만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영혼에 맞닿아서 상냥하게 웃음 짓게 하는 고급스러운 유머인 것이다. 이런 종류의 유머는 인간 노력의 대부분이 허무한 것임을 깨닫고 동정 어린 웃음으로써 인생의 허무함을 이겨내는 결과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런 성격의 유머는 베토벤 이전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베토벤의 유머는 선배 음악가들의 폭 좁은 그것과 차별된다. 그의 유머는 인간 감정의 진실성에까지 미치고 있다.

베토벤은 선배로부터 이어받은 소나타 형식에 새롭고도 독자적인 해석을 담았다.
소나타 형식을 통해서 베토벤은 새로운 결론을 찾아내고 커다란 목표를 실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전형적인 빈(Wien) 소나타의 명확하고 엄격한 틀 안에 그러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던 음악가는 오직 베토벤 한 사람 뿐이었다. 즉석에서 새로운 멜로디를 생각해내는 힘이나 요령 있게 음악을 다듬어내는 솜씨 따위를 그는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이전에는 아무도 성실하게 다루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음악상의 문제에 대결하는 정신이었다. 하나의 문제를 풀면 그는 곧 다음의 새로운 문제에 착수했다. 이와 같은 휴식 없는 활동, 차례차례로 새로운 문제와 맞부딪치는 태도가 그의 창작방법인 것이다. 그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작업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나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작품을 척척 쉽게 만들어내지 못했다.

수많은 스케치북은 그가 하나 하나의 새로운 작업에 얼마나 정열적인 노력을 기울였던가를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근면 성실한 노고의 단 하나의 목적은 樂想에 대해서 가장 명확하고 완전한 표현을 부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찾아낼 때까지는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이상과 같은 베토벤 음악의 여러 가지 특질들을 비교적 고르게 지니고 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 5번 '봄'이다. 말할 나위 없이 이 작품은 베토벤이 쓴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운데 '크로이처 소나타'와 더불어서 가장 유명하다. 물론 이 표제는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다. 대체로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이 지니고 있는 성격이 다소 어둡고 우울한 데 비해서 이 작품만이 유독 밝고 명랑한 기분을 지니고 있는 것에 착안한 누군가가 지은 이름인 것이다. 썩 어울리는 작명인 셈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모방하는데서 출발했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이지만 이 작품에서 비로소 선배들의 영향을 말끔히 지우고 있다. "베토벤답다"고 말할 수 있는 독특한 개성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작품인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자유롭고도 로맨틱한 기분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흔히 '베토벤의 제2기'라고 일컬어지는 시대적 특질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구성에서는 제 3악장과 4악장의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 전개부를 쓰는 기술이 현저하게 진보되어서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느낌을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소나타가 지니는 으뜸가는 매력은 누구에게나 아주 친밀하고도 개방적으로 다가서는 아름답고도 명랑한 로맨티시즘이다. 제 1악장 주제의 그 밝고 투명하면서도 톡톡 튀는 듯한 건강함, 제 2악장 주제의 서정적이면서도 전혀 낯설지 않은 친화력, 제 3악장의 약동하는 리듬 감각, 제 4악장 피날레의 화사함 등등 그 어떤 악장도 어눌한 구석이 없다. 속내를 활활 들어내 보이는 티없고 아름다운 젊은이의 모습을 보는 듯한 그런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일 게다.

이런 의미에서 그 어떤 바이올린 소나타도 이 작품과 같은 친화력을 지니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게다.

악보는 1801년에 출판되었고, 모리츠 백작(Moritz von Fries)에게 헌정 되었다.

글 : 곽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