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이야기
베토벤의 음악적 이상향을 그리고 있는 <합창> 교향곡은 고통을 극복하여 환희로 귀결된다는 소중한 메시지를 온 인류를 향해 감동적으로 외치고 있다.
음악 평론가 리츨러(Walter Riezler, 1878~1965)도 말했다.
“위대한 음악가의 단 하나의 작품에 의해서, 전 인류가 그것도 동시대뿐 아니라 후대에 이르기까지, 이미 100년 이상이나 흥분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하는 음악은 이 9번 교향곡 말고는 없다.”
이런 곡인만큼 녹음 또한 상당히 많은 수를 헤아린다. 역사상 최초의 녹음인 1928년 오스카 프리트(Oskar Fried, 1871~1941, 독일)의 연주 이래로 많은 지휘자들이 이 곡에 도전하고 있지만 아직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를 뛰어넘는 것은 없다.
그는 평생 이 <합창> 교향곡을 100회 이상 연주하였고 음반 수도 1937~54년까지 무려 1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모든 녹음이 실황으로 되어 있다.
1937년 베를린 필 실황, 42년 베를린 필 실황, 43년 스톡홀름 오케스트라 실황, 49년 밀라노 가극장 오케스트라 실황, 51년 1월 빈 필 실황, 51년 7월 바이로이트 축제 실황, 51년 빈 필 8월 짤츠부르크 축제 실황, 52년 빈 필 실황, 53년 빈 필 실황, 54년 바이로이트 축제 실황, 54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루체른 축제 실황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51년 바이로이트 실황 연주는 단연 돋보이는 절대적인 연주로 군림한다.
이 연주는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다시 열린 바이로이트 축제(Bayreuth Festival)중 첫 곡으로 연주된 것이다. 특히 전쟁 중 나치에 협력한 혐의를 받아온 푸르트벵글러여서 그 자신으로서도 감회가 남다른 연주였다. 설령 푸르트벵글러가 나치 협력자라 하더라도 연주만큼은 너무도 감동적인 것이라서 음악 예술이 부질없는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위대함의 실증이라 하겠다.
첫 악장부터 푸르트벵글러 특유의 느리고 장중한 분위기가 전편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다소 처지기도 하고 3악장 관악기 기량이 조금 서툴음은 정규적인 악단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푸르트벵글러만의 심원한 웅대함이 이런 취약점을 보완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 실황에서 오는 생생한 긴장감은 가히 절품이라고 할 수 있다.
4악장 <환희의 송가>가 나오기 직전의 그 숨 막히는 극적 긴장감은 과연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표현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것이 즉흥적이라 생각될지 모르나 그가 연습에 대한 대담을 한 자료에 의하면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임을 알 수 있다. 일례로 합창이 처음 나오는 부분에서 푸르트벵글러 자신은 청중이 앞으로 전개될 고양이 많은 여지가 있음을 연상하도록 목소리를 크게 내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것을 반증이나 하듯이 4악장의 극적 긴장감의 배분은 정말로 뜨거운 감동을 위대하게 전하고 있다.
음반의 발매는 1951년 연주 후 바로 발매되지 못하고 푸르트벵글러가 1954년 11월 30일에 바덴바덴(Baden-baden)에서 서거한 후인 1955년에 비로소 발매되었다. 이것은 푸르트벵글러 자신이 이 연주의 발매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고, 그가 죽은 후에야 월터 레그(Walter Legge, 1906~1979, 영국)가 미망인 엘리자베스, 빌란트와 볼프강 바그너의 동의를 얻어 발매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 녹음의 음반은 전 세계 40여 개 레이블로 발매되고 있다.
참고로 이 연주는 실황 녹음이지만 사실은 몇 군데는 편집된 상태로 음반이 발매되었다. 이것은 당시 이 실황을 직접 중계한 바이레른 방송 녹음을 음반화한 것을 들어보면 차이점을 알 수 있다. 4악장 시작은 3악장에서 아타가(attacca)로 다음 악장과 쉼이 없이 연주되지만 음반의 프로듀서 윌터 레그는 이 부분에 약간의 시간 여유를 두고 편집하였다.
또한 연주자들의 사소한 실수를 편집하기 위해 리허설 녹음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한편 일본 EMI에서 발매된 음반에서는 실황 녹음을 알 수 있게 곡의 시작 전 청중의 박수 소리와 푸르트벵글러가 무대로 들어오는 인상적인 발자국 소리가 들어가 있다. 진위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이것이 극적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고 한참의 간격을 두고 시작되는 연주가 묘한 흥분을 일으키는 절묘한 효과임에는 틀림없다.
이렇듯 사소하게 짜깁기가 된 실황임에도 불구하고 푸르트벵글러의 바이로이트 실황의 <합창> 교향곡 연주는 그야말로 숭고한 감동이 물결치는 환희의 노래 그 자체라 하겠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