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과 교향곡 제6번
베토벤은 31세 때인 1801년 6월 1일 친구 아멘다(Karl Amenda, 1771~1836)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고 있다.
“나의 청력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네. 자네와 함께 있을 때에도 그것을 느꼈지만 나는 잠자코 있었다네. 최근에 와서 점점 더 악화되는 것을 느끼지만, 치료가 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네. 이러한 상태로 연주를 하거나 작곡하는 것은 그리 불편하지 않지만······.”
이것은 바로 베토벤의 귓병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30대 초반의 나이에 음악가에게 생명과도 같은 청력의 이상 즉 난청은 치명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에 1802년 베토벤은 치료를 위해 빈 근교에 위치한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로 요양을 떠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자살을 생각했고 그
유명한 유서를 쓰게 된다. 하지만 죽지 않았고 여러 가지 명작들을 탄생시키며 자신의 부활을 알리게 된다.
이런 시기에 자연이라는 것은 베토벤에게 친밀한 마음속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친구로서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테레제 브룬스빅(Therese Brunsvik, 1775~1849)도 ‘자연은 그의 벗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베토벤 스스로도 ‘사람은 속일 때가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나는 한 사람의 인간보다도 한 그루의 초목을 사랑한다. 아무도 나만큼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숲 안에 있으면 기쁘고 행복하다’라고 하였다.
프랑스의 작곡가 댕디(Vincent d'Indy, 1851~1931)도 ‘대자연은 베토벤에게 있어서 그 슬픔과 실망을 어루만져 주는 상대였다. 그가 즐겨 이야기를 나눈 친구였다. 이 교분만은 그가 귀머거리였다는 것에 구애됨이 없었다.’라고 하고 있고, 베토벤을 만난 영국의 피아니스트 니테(Charler Neate, 1784~1877)는 ‘베토벤처럼 꽃이며 구름이며 자연의 만상을 완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을 본 일이 없었다.’라고 회고하였다.
베토벤은 빈의 숲에서 산책을 하며 자연을 접하였고 그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큰 위안과 음악적 영감을 얻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배경으로 탄생한 곡이 교향곡 6번 <전원>인데 작곡은 1806년 시작하여 1808년 6월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완성하게 된다. 자실을 생각할 만큼 큰 고뇌에 빠져 자연 속에서 산택을 하던 베토벤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의 힘을 얻었던 것이다. 자연이 주는 힘은 실로 위대했고 결코 죽음을 선택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작곡 시기가 베토벤이 요제피네(Josephine Brunsvik, 1779~1821)와의 사랑이 끝났을 때인 1806년경이었고 그래서 이런 실연의 상처를 달래고자 자연을 찾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더불어 당시 자연을 묘사하는 음악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특히 크네히트(Justin Heinrich Knecht, 1752~1817, 독일)가 1784년 작곡한 5악장 구성의 <자연의 음악 묘사(Le portrait musical de la nature)>같은 작품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곡은 전5악장으로 각 악장마다 표제가 붙어 있어
표제음악이라고 할 수 있으나 정작 베토벤은 ‘<전원> 교향곡은 회화적 묘사가 아니다. 전원에서의 즐거움이 사람의 마음을 환기시키는 여러 가지 감정의 표현이며, 더불어 전원생활의 몇 가지 기분을 그린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전원이 인간에게 주는 느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감사의 그리고 인간적 감동을 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표제음악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낭만주의 시대의 표제음악의 선구가 되고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1869)의 <환상 교향곡>의 경우가 그러하다.
<전원> 교향곡은 인생의 큰 괴로움에 직면할 때 숲 속을 산책하라. 그러면 자연이 주는 위대함 앞에 자신을 되돌아보며 큰 위안을 얻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