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이야기
지휘자 중 가장 인간적인 인물을 떠올리라면 우리는 주저 없이 지휘계의 음유시인이라 일컫는 브루노 발터(Bruno Walter)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유려한 따스함 그리고 시적인 표현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적인 정겨움으로 사람들을 음악적 행복감에 젖게 해 주는 위대한 지휘자였다. 이런 그의 연주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것으로는 단연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말하는데, 이 곡 최고의 연주이자 그의 모든 음반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감동적인 역작으로 자리하고 있다.
물론 칼 뵘(Karl Bohm, 1894~1981, 오스트리아)의 연주도 고고한 품격이 드러나 훌륭한 것으로 차분하고 근엄한 자연의 순리를 뛰어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발터가 보여주는 대자연의 생동감과 인간적 정감을 하나로 승화시키는 연주가 좀 더 이상적인 <전원> 교향곡의 모습에 다가서고 있다 할 것이다.
그의 <전원> 교향곡에 대한 애정은 SP 시절인 1936년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녹음으로부터 매우 각별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46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51년 LA 필하모닉과의 녹음을 남겼고, 다시 만년인 58년 컬럼비아 심포니와의 녹음을 남기게 된다.
이 연주는 베토벤이 곡을 썼던 당시의 심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할 만큼 특출한 연주이다.
자연에 대한 가장 인간적이고 정말로 자연스러운 전원의 풍경이 순수하고도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고, 느긋한 템포와 낭만적인 감정이 섬세하고도 따스하게 드러나 있다.
그의 지휘는 과도한 동작의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유연한 흐름과 세부적인 곳의 풍부한 표정으로 듣는 이의 자연에 대한 동경심을 끝없이 자극하고 있다. 특히 발터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운 것’이라 말한 종악장인 5악장 알레그레토(allegretto)의 <양치는 사람의 노래, 폭풍우가 지난 후의 감사> 연주는 자연과 인간의 하나 됨이 보여지는 숭고한 뜻을 되새기게 하며 곡을 감동적으로 끝맺고 있다.
발터의 연주는 베토벤이 말한 ‘전원을 묘사한 음화로서가 아니라 감정의 표현으로써’라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깊게 동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동감은 자연의 모습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표현함으로 음악적 감흥을 생동감 넘치게 전해 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런 단순한 사실을 넘어 인간이 가져야 하는 순수한 본질을 자연에 다시 투영함으로써 다시금 소중한 인간애를 깨닫게 하고 있다. 베토벤이 자연에서 채득한 그리고 발터가 인간적인 내음을 통해 찾아낸 소중한 진리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뵘이 자연에 순응하여 그것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얻었다고 한다면 발터는 인간의 사랑과 평화가 대자연과 더불어 동화되어 더 위대한 혜안을 가질 수 있음을 너무도 절실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베토벤이 진정으로 생각했던 <전원> 교향곡의 이상적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발터의 너무도 인간적인 연주를 통해 무언가를 반드시 느껴야만 할 것이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