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 그는 누구인가?
에리히는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1930~2004, 독일)의 아버지로 발터, 클렘페러, 오스카니니,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소위 ‘BIG 5’에 들어가는 명장이다.
그는 주로 오페라에 전념하였고 R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연주가 알려져 있다.
또한 베토벤의 <영웅>(1950년 · 1955년 2종), <전원> 교향곡(1953년)의 역사적 연주를 남긴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거장들에 비해 과소평가되며 아들의 화려한 명성에 가려서 거장임에도 빛을 보지 못하는 일은 애석하기 그지없다.
특히 그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는 크립스(Josef Krips, 1902~1974)와 더불어 뷜로(Hans von Bulow, 1830~1894, 독일)에서 바인가르트너(Felix Weingartner, 1863~1942, 오스트리아)로 이어지는 베토벤 해석의 전통을 이어받는 동시에 토스카니니의
신즉물주의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해석적 업적을 남기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의 베토벤 5번 교향곡 연주가 아들 클라이버의 명연 창출에 모체가 되고 있어 5번 연주사의 선구적 위치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카를로스가 연주에 사용한 악보가 바로 아버지 에리히가 사용하던 손을 본 악보였던 것이다. 또한 베버의 <마탄의 사수>(1955년)의 경우 역시 아들 카를로스 명연의 모체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에리히의 운명 교향곡 연주는 신즉물주의에 입각한 담백하고 순음악적인 최고의 연로도 결코 손색이 없다.
전편을 휘감는 힘 있는 박력의 에너지는 듣는 이를 압도하는 장엄함이 있다. 전곡을 흐르는 일정한 템포와 균형미의 진솔한 표현은 또 다른 미적 접근 방법을 당당하게 제시한다.
특히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는 숨 막히는 박력의 폭발적 힘은 전대미문의 압권이다. 빈틈없는 완벽한 음악적 구성력과 일사불란한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Royal Concertgebouw Orchestra)의 뜨거운 열기로 베토벤이 갈망한 불굴의 의지와 투혼이 우리 눈앞에 찬연히 빛을 발한다. 그야말로 완벽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아들 카를로스의 운명 연주를 들어봐서 알겠지만, 뛰어난 연주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금 무엇인가가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섬세한 애호가라면 에리히의 연주에서 그 해답을 찾게 될 것이다.
에리히의 운명 교향곡 연주 기록은 여기 소개된 것 말고도, 1948년 NBC 교향악단의 연주와 1955년 3회의 연주 기록이 남아 있다.
참고로 에리히는 처음으로 나티에 반대한 음악가(말러가 투사로 지칭한)로 1934년에 일어난 힌데미트(Paul Hhindemith, 1895~1963)사건을 계기로 베를린 국립 가극장 총감독직을 버리고 남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망명하였고 이 때문에 아들 이름이 카를로스가 된 것이다.
끝으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아들 카를로스가 1978년 빈에서 <카르멘(Carman)>을 공연할 때 이것을 지켜본 한 사람으로부터 에리히가 88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힘 있고 훌륭하게 지휘하는 것을 칭찬하는 내용을 접하게 되었다. 카를로스는 말한다. “분명히 사람들은 가끔씩 나를 나의 아버지인 에리히 클라이버로 착각을 하곤 한답니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