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과 교향곡 제2번
교향곡 제1번을 완성한 후 베토벤은 곧바로 제2번에 착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완성된 것은 1802년,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썼던 해이다. 그가 이처럼 절망에 빠져 있던 시기에 이렇게 희망에 찬 밝은 음악을 쓸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학자들은 그 유서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여하간 1800년 무렵부터 베토벤의 생활은 리히노프스키 후작의 연금을 받기로 한 데다가, 악보 출판을 계약하여 다소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반면에 당시는 궁정에서의 음악이 서서히 시사회로 침투해 들어가는 과도기적인 시대였으므로, 음악가들 사이의 생존경쟁이 점차 심해졌다. 여기에 귓병의 악화로 말미암아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가 쓰여졌지만, 그는 이 비통한 상황을 극복하였던 것이다.
이 작품은 완성된 다음 해인 1803년 빈에서 초연되었으나 연습 부족으로 상당히 평이 나빴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라이프치히의 알게마이네 음악신문 주필인 로홀리츠는 “이 교향곡이야말로 정열적인 작품이며, 온갖 종류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유향 작품이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시대가 되어도 이 작품은 살아남을 것이다. 베토벤은 하나의 훌륭한 예언을 하고 있는 바, 이는 정당한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쓰고 있다. 사실 로홀리츠는 당대에 베토벤을 이해하고 올바르게 평가한 몇 안 되는 비평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이 교향곡은 1번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이 남아있지만, 1번 교향곡에 비해 악상전개에 있어서나 악기의 효율적인 사용 등,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2악장의 경우 서정적이고 아름다워 합창곡으로도 편곡되어 많이 불리워진다.
특기할만한 사항은, 제3악장의 형식으로, 교향곡에서 스케르초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악장이 나타나는 것은 이 곡이 처음이다. 스케르초의 주제는 포르테와 피아노의 급격한 교대를 보이는 것으로 베토벤적 힘과 불로 가득하 있다. 전체 84마디로서 규모도 큰 것이려니와 후반에서 보여주는 반음계적 서법이 동래의 경과적 용법에서 강조적 의미로 바뀌었다는 점 역시 베토벤의 새로운 특징이다.
출처 : Goclas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