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bert

Die Winterreise


Dietrich Fischer-Dieskau(baritone)
Gerald Moore(piano)

녹음 : Gemeindehaus, Berlin-Zehlendorf
DG 녹음 : 1971 (D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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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와 비애의 겨울여행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이었던 1827년 작곡.
  · 빌헬름 뮐러의 시를 가사로 삼음.
  · 전곡 연주시간 약 1시간 10분

Schubert   《겨울 나그네》는 언제 들어도 좋지만 역시 눈 쌓인 겨울에 들어야 적절하게 가슴을 울립니다. 모두 24곡으로 이뤄진 이 가곡집의 전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그네의 정처 없는 방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매우 슈베르트적인 주제를 담고 힜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방랑자 환상곡》과 일맥상통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1년의 짧은 생을 살았던 슈베르트는 약 600곡의 가곡을 썼는데, 구중에서도 가곡집(歌曲集) 형태로 출판된 것은 모두 세 작품입니다. 작곡연도로 살펴보자면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1823년, 《겨울 나그네》1827년, 《백조의 노래》1828년 순이지요. 그 어느 것이든 가사를 음미하며 듣지 않으면 맛이 떨어집니다. 아울러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은 가급적 혼자 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겨울 나그네》는 더 그렇습니다. 이 곡을 들을 때는 가급적 혼자여야 합니다. 만약 다중이 모인 콘서트홀에서 이 음악을 듣게 될지라도, 자신의 내면에만 고독하게 집중해야 음악이 가슴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가곡을 듣는다는 것은 혼자 떠나는 여행과 비슷합니다. <겨울 나그네>의 제목은 ‘Die Winterreise’인데 우리말로 직역하면 ‘겨울여행’입니다. 물론 그 여행은 허무와 비애, 외로움으로 가득하지요. 4년 앞서 작곡했던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만 하더라도 시적 화자의 여정과 극적인 줄거리를 갖고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찬미와 청춘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도 가끔 등장합니다. 하지만 <겨울 나그네>에서 슈베르트의 꿈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이 가곡집은 훨씬 절망적인 분위기로 겨울의 어둠 속을 헤맵니다.

   Schubert 가사를 쓴 이는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 1794-1827)라는 독일 시인입니다. 독일문학사에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거론되지 않는 시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시풍은 매우 소박하고 민요적입니다. 질풍노도처럼 달려 나가던 낭만의 시대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시인이었던 셈입니다. 말하자면 때를 잘못 타고 났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한데 슈베르트는 그의 시를 무척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와 <겨울 나그네>는 모두 그의 시를 가사로 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슈베르트가 뮐러의 시를 접하게 됐는지는 좀 불분명합니다.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시집을 발견했다는 설도 있고, 작곡가 베버의 권유로 뮐러의 시에 곡을 붙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슈베르트가 뮐러의 시에 완전히 매혹당한 것은 분명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주 당연한 얘기입니다만, 뮐러의 시에서 ‘정처 없는 방랑자’라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겁니다. 게다가 뮐러는 1827년 9월에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고 전해집니다. 1827년은 <겨울 나그네>가 작곡된 바로 그 해였지요. 슈베르트가 가장 존경했던 음악가 베토벤이 그해 봄에 세상을 떠났고, 자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시인 뮐러도 같은 해 9월에 세상을 등졌던 겁니다. 슈베르트는 10월에 <겨울 나그네>를 완성하고 다음해인 1828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인 뮐러보다 오히려 더 젊은 나이인 31세였습니다.

   모두 24곡으로 이뤄져 있어서 전편의 가사를 모두 소개하는 것은 아무래도 좀 무리일 성싶습니다. 오늘은 <겨울 나그네>의 전반부 중에서도 특히 애청되는 1곡 ‘밤인사’(Gute Nacht)와 5곡 ‘보리수’(Der Lindenbaum), 6곡 ‘넘쳐 흐르는 눈물’(Wasserflut)의 가사를 소개합니다. 하지만 전편의 가사를 음미하면서 이 가곡집 전부를 꼭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가급적이면 독일어 원어와 한국어 번역이 나란히 나와 있는 텍스트를 활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뮐러의 시집 『겨울 나그네』(김재혁 옮김)는 국내에서 민음사가 번역해 펴냈습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도 함께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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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곡 ‘밤인사’(Gute Nacht)
“(1절) 낯선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으로 떠나네. 5월은 내게 친절했네. 꽃들은 만발하고 소녀는 사랑을 속삭였네. 그녀의 어머니는 결혼을 약속했네. 그러나 이제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차고 길은 눈에 덮였네.

(2절) 여행을 떠날 날을 정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네. 달빛을 벗 삼고 짐승의 발자국을 따라, 하얀 풀밭을 지나가네. (3절) 사람들이 나를 쫓아낼 때까지, 나는 왜 서성이며 기다리는 것일까. 주인의 문 밖에서 짖는 개야, 짖을 테면 얼마든지 짖으려무나. 사랑은 방랑을 좋아한다네. 신이 그렇게 이곳저곳을 떠돌도록 정해 놓았네. 그러니 내 사랑이여, 이제는 안녕! (4절) 너의 단꿈을 방해하지 않고, 너의 휴식을 훼방치도 않으리. 발걸음도 들리지 않게 살그머니 문을 닫으리. 떠나면서 그 문에 ‘안녕’이라고 적으리. 너는 그것을 보고, 너를 사랑했던 내 마음을 기억할까.”

   ▶ 5곡 ‘보리수’(Der Lindenbaum)
“(1절) 성문 앞 우물곁에 보리수가 서 있네. 나는 그 그늘 아래서 많은 꿈을 꾸었지. 그토록 많은 사랑의 말을 가지에 새겼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그 나무 밑을 찾았네.

(2절) 오늘도 나는 어두운 밤에 그곳을 지나가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나는 눈을 감지.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이리 오게 친구여, 여기서 안식을 찾게나’라고 속삭이네.
(3절) 차가운 바람이 얼굴 위로 매섭게 불고 모자가 어딘가로 날라 갔네. 그래도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다네. (4절) 그곳을 떠나고 많은 시간이 흘렀지. 그래도 나는 여전히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는 속삭임을 듣고 있다네.”

   ▶ 6곡 ‘넘쳐 흐르는 눈물’(Wasserflut)
“(1절) 눈물이 쉼 없이 눈 위로 떨어져, 내 뜨거운 슬픔을 차디찬 눈이 삼켜버리네. 풀들이 파릇하게 돋아나면 따뜻한 바람이 불고 얼음이 깨지고 눈도 녹겠지. (2절) 눈아, 너는 내 그리움을 알고 있겠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말해보렴. 내 눈물을 쫓아가면 어느덧 시냇물에 가닿을 텐데. 눈물이 도시로 흘러들어 번화한 거리를 지나서 뜨겁게 반짝이면, 그곳이 바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집이란다.”

구분선

추천음반

1.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 제럴드 무어(piano) | 1971, DG.
2012년 5월, 87세를 일기로 타계한 바리톤 피셔-디스카우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여러 번 녹음했다. 반주자로는 제럴드 무어, 외르크 데무스, 알프레트 브렌델, 머레이 페라이어 등 당대의 피아니스트들이 동행했다. 그중에서도 제럴드 무어와 함께한 1971년 녹음이 가장 빼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물론 디스카우와 무어는 1950년대에도 같은 곡을 녹음한 바 있다. 그에 비해 1971년 녹음은 한층 성숙한 연륜을 느끼게 한다. 표현은 더욱 부드러워졌으며, 가창과 반주의 앙상블에서도 우정 어린 신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디스카우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가사의 의미를 충분히 곱씹는 가창일 터.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미성(美聲)의 바리톤은 아니지만, 곡의 내면을 충실히 드러내고 있는 거장의 명연이다.
2. 페터 슈라이어(Peter Schreier),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piano) | 1985, Philps.
디스카우의 중후하고 두툼한 가창과는 맛이 많이 다르다. 미성의 테너 슈라이어(1935~ )는 독일 낭만 가곡의 감각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멋을 내는 것 같아서 약간 거부감이 들 때도 있지만, 그의 목소리가 지닌 청명함과 정밀한 표현력은 누구보다도 탁월하다. 아울러 디스카우가 가사의 정확하고 깨끗한 발음보다는 내면적 의미를 중시했던 것과 달리, 슈라이어는 정확한 가사의 전달에도 정성을 기울이는 연주를 들려준다. 미성의 테너다운 청아한 음색, 불분명하게 뭉개지는 딕션이 없다는 점이 이 녹음의 매력이다. 슈라이어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와 1991년에도 드레스덴에서 실황으로 <겨울 나그네>를 녹음한 바 있지만, 오늘은 리히테르와 함께한 1985년 녹음을 추천한다.
3. 이안 보스트리지(Ian Bostridge),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piano) | 2004, EMI.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슈라이어의 뒤를 잇고 있는 우리 시대의 테너는 역시 이안 보스트리지다. 보스트리지는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에서 역사와 철학을 전공했고, 1990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문학자다. 그래서 그에게는 ‘지적인 테너’라는 수식어가 종종 따라붙지만, 사실 슈베르트의 가곡을 노래하면서 지성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감성이다. 보스트리지는 바로 그 슈베르트적 감성의 구사에서 최근의 그 어떤 테너보다 돋보인다. 특히 <겨울 나그네>는 그의 창백한 외모, 아울러 약간의 여성성마저 느끼게 하는 독특한 음색과 더없이 어울린다. 곡 하나하나의 극적 표현력도 빼어나다. 어떤 때는 허무하고 쓸쓸하게, 또 어떤 때는 뜨거운 갈망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음반에서 아쉬운 것은 딱 한 가지. 피아니스트가 안스네스가 아니라 율리우스 드레이크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