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dn

String Quartet No.62 in C Major Op.76-3 (Emperor)
Amadeus Quartet
[Nobert Barinin (violin I)
Siegmund Nissel (violin II)
Peter Schidlof (viola)
Martin Lovett (cello)
녹음 : 1963,09 Stereo Beethoven-Saal, Hannover


신이여 황제를 지켜주소서

모차르트 : 현악 4중주 77번 C장조 '황제'

  · 1797년 에를되디 백작의 의뢰로 작곡한 6곡의 현악4중주 중 세 번째 곡.
  · 2악장의 주제로 가곡 '황제찬가'의 선율을 사용하고 있다.
  · 연주시간 약 23분

Haydn   서양음악사에 등재된 작곡가들 가운데 교향곡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누굴까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다수 독자들이 요제프 하이든을 금세 떠올릴 겁니다. 맞습니다. 좀 싱거운 질문이지요? 바로 위에 있는 칼럼 제목에 이미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어서 두 번째 질문입니다. 현악 4중주곡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은 누굴까요? 이것도 물론 쉽습니다. 그 사람도 역시 하이든입니다. 한마디로 하이든은 다산(多産)의 작곡가였습니다. 그가 쓴 교향곡은 무려 100곡이 넘는 것으로, 또 현악 4중주곡은 70곡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왜 확정이 아니라 추정인고 하니, 베토벤보다 38년 먼저 태어난 하이든의 시대에는 악보 출판이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을 뿐더러, 하이든이 워낙 많은 곡을 썼던 탓에 후대 음악학자들의 서지학적 정리가 용이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하이든은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에 자신의 작품목록을 직접 ‘승인’했던 적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불완전한 수준이었습니다.

  현재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하이든의 작품목록은 네덜란드의 음악 서지학자 호보켄(Anthony van Hoboken)이 만든 것인데, 약자로 Hob.로 표기하고 ‘호보켄 번호’라고 읽습니다. 한데 이 목록도 다른 학자들에 의해 적잖게 오류를 지적당해 왔습니다. 그래서 호보켄은 1957년에 정리했던 애초의 목록을 1971년에 수정하는데, 그것도 역시 ‘완결판’이라는 명예를 얻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저는 ‘OO곡이 넘는’ 혹은 ‘OO곡에 달하는’이라는 절충적 표현을 쓰곤 합니다.


오스트리아 로라우에 위치한 하이든의 생가. 입구 정면에 하이든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자, 그러면 하이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일단 그가 가난한 하층 계급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떠올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이든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동차를 타고 동쪽으로 1시간쯤 달리면 나타나는 ‘로라우’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수레를 만드는 목수였고, 어머니는 영주의 성에서 일하던 요리사였습니다.

   그러나 하이든이 부모의 품에서 살았던 것은 여섯 살 때까지였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이복 여동생의 남편(그러니까 하이든의 고모부)에게 아들을 맡겼던 것이지요. 그 이유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진 않지만, 아마도 어린 아들에게 ‘수레 만드는 목수’라는 가업을 잇게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여동생이 살던 하인부르크는 로라우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애초에 슬로바키아 땅이었다가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영토로 편입된 지역인데, 하이든의 고모부는 그곳에서 교사로 일했고 교회의 성가대장도 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하이든은 ‘음악’이라는 세계로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고모부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우면서 ‘노래 잘하는 아이’로 소문이 났던 하이든은 마침내 빈의 슈테판 대성당 소년합창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유명한 빈 소년합창단의 전신(前身)이지요. 그곳에서 10년간 노래하다가 변성기가 되어 쫓겨납니다. 그 후 모르친 백작 집안의 음악가로 고용되는 20대 후반에 이를 때까지, 하이든은 바이올린과 오르간을 연주하거나 귀족의 딸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한 10년간 고생스러운 세월을 보내며 작곡을 독학으로 습득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이든의 삶을 크게 3등분한다면, 거기까지가 1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막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음악가로 고용된 1761년에 시작됩니다. 마지막 3막은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사망했던 1790년, 그러니까 하이든이 ‘귀족에게 종속된 음악가’라는 사회적 지위를 벗어나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선도하던 대도시 런던에 첫발을 디디던 시절에 개시됩니다. 2막과 3막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를 풀어 가겠습니다. 어쨌든 하이든은 가난한 하층 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귀족의 ‘음악 하인’으로 30년간 일했고, 마침내 자본주의적 음악가로 대성공을 거두는 ‘대하 역사 드라마’를 펼쳐 보입니다. 결국 하이든을 설명하는 코드는 두 가지로 압축되는 셈입니다. 그 하나는 ‘다산의 음악가’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77년의 생애를 통해 봉건에서 근대로의 이행을 고스란히 보여준 음악가라는 점입니다.

   특히 현악 4중주는 하이든을 대표하는 장르였습니다. 현악 4중주는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로 이루어진 근대 실내악의 전형이지요.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에 대해 “네 명의 현자(賢者)들이 나누는 대화”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장르에서 하이든이 세워 놓은 업적은 지대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물론 하이든에게는 ‘고전주의 교향곡의 완성’이라는 음악사적 평가가 내려져 있지만, 그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평가가 ‘현악 4중주를 근대 실내악의 형태로 완성해낸 작곡가’라는 것입니다. 음악학자 알프레트 아인슈타인(1880-1952,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6촌 동생)은 하이든의 현악 4중주에 대해 “그의 생애의 뛰어난 업적일 뿐 아니라 음악사 전체를 통틀어도 으뜸가는 업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요. 물론 이 음악학자는 과장법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하이든의 현악 4중주에 대한 평가는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 온 곡은 ‘17번 F장조 Op.3-5’일 겁니다. 흔히 ‘하이든의 세레나데’라고 불리지요. 클래식을 별로 듣지 않는 사람들도 이 곡의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를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데 유감스럽게도 이 곡은 하이든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요. 오스트리아의 수도사 호프슈테터가 실제 작곡자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정리할 수밖에 없겠군요. 현재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중에서 가장 많이 애청되는 곡은 무엇일까요? 아마 두 개의 답변이 나올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67번 D장조 Op.64-5’를, 또 어떤 분은 ‘77번 C장조 Op.76-3’을 떠올릴 겁니다. 전자에는 ‘종달새’라는 이름이, 후자에는 ‘황제’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요.

Haydn   한데 호보켄 번호 77번의 현악 4중주에는 왜 ‘황제’라는 명칭이 붙었을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이든은 1797년에 <황제 찬가>라는 곡을 씁니다. 당시 오스트리아가 나폴레옹의 공격을 받고 있던 참이라, 이런 ‘애국적인 가곡’을 쓰게 됐던 것이지요.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2세.

   “신이여 프란츠 황제를 지켜주소서. 우리의 훌륭한 황제 프란츠를! 행복이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서 영원히 있게 해주소서. 빛나는 명예의 관을 씌워 주소서.” 이런 가사로 돼 있습니다.

   이 곡은 같은 해 2월 12일, 프란츠 황제의 생일을 기념해 오스트리아 국가로 공식 선포됩니다. 지금은 가사가 바뀌어 독일 국가로 사용되고 있지요. 이 곡의 선율이 바로 ‘77번 황제’의 2악장에서 주제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황제’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아마도 하이든은 2악장 포코 아다지오 칸타빌레(Poco adagio: cantabile, 조금 느리게 노래하듯이)를 이 곡의 중심으로 삼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선지 밝고 산뜻한 분위기의 1악장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에는 음악적으로 그다지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어깨에 힘을 빼고 있는 악장입니다.

   2악장은 앞서도 말했듯이 이 곡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황제의 선율’을 네 차례에 걸쳐 변주합니다. 아마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에게는 매우 친숙할 겁니다. 찬송가책에도 등장하는 선율입니다.

   3악장 미뉴에트는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 템포입니다. 미뉴에트는 애초에 프랑스의 궁정 무곡이지만 하이든은 훨씬 더 소박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매우 감칠 맛 나는 선율이 상큼하게 펼쳐지다가 중반부에 조바꿈이 이뤄지면서 템포가 확연하게 늦어집니다. 그러다가 다시 원래의 산뜻한 분위기로 돌아와 마무리되지요.

   마지막 4악장 프레스토(Presto, 매우 빠르게)는 무겁고 단호하게 출발합니다. 앞의 악장들과 달리, 하이든은 마지막 악장에서 보다 엄숙하고 격정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종결부에 다다르면서 C장조의 에너지 넘치는 표정으로 돌아와 곡을 마무리하지요. 전체 연주시간은 약 24분입니다. 시간이 없는 분들은 귀에 익숙한 2악장부터 듣는 것도 좋겠습니다.

구분선

추천음반

1. 호칸 하르덴베리에르(Håkan Hardenberger), 네빌 마리너ㆍ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스 | 1986년 | Phillips
스웨덴 태생의 트럼펫 연주자 호칸 하르덴베리에르(1961~)는 2007년 한국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앞 시대가 모리스 앙드레의 독주로 흘러온 것과 달리,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트럼펫 분야에서는 다양한 연주자들의 등장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하르덴베리에르는 북유럽적인 차가움을 겸비한 독특한 서정성으로 주목받는다. 모리스 앙드레의 연주가 어딘지 과시적인 느낌을 풍긴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음반을 추천한다. 하르덴베리에르는 주로 현대음악에서 강점을 보여 왔지만, 하이든과 훔멜의 협주곡을 녹음한 이 음반에도 호평이 쏟아졌다. 「그라모폰」과 「스테레오 리뷰」 등의 음반 비평자들이 별 다섯 개를 아낌없이 던졌다.
2. 모리스 앙드레(Maurice Andre), 리카르도 무티ㆍ필하모니아 관현악단 | 1985년 | EMI
모리스 앙드레(1933~)와 구슐바우어가 지휘하는 밤베르크 심포니의 협연(1971년/Erato)은 아쉽게도 국내에서 품절 상태다. 대신 오늘 추천목록에는 1985년 리카르도 무티와의 협연을 올려놓는다. 이 역시 앞의 녹음에 별로 뒤지지 않는 수연이다. 프랑스 태생의 앙드레는 그 이전의 누구에게서도 보기 힘들었던 현란한 기교, 커다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블로윙으로 트럼펫 연주의 역사를 새로 썼다. 특히 바로크 시대의 트럼펫 레퍼토리를 부활시킨 공적은 지대하다고 할 만하다. 이 녹음도 특유의 기교와 박력을 맛보기에 부족하지 않다. 헨델, 텔레만, 훔멜 등의 곡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3.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Sergel Naksriakov), 로페즈 코보스ㆍ로잔 실내 관현악단 | 1993년 | Warner Music
1977년 러시아 고리키에서 태어난 세르게이 나카리아코프는 천재적인 트럼펫 연주자다. '신동'이 좀체 출현하기 어려운 악기인 프럼펫 분야에서 열 살 무렵부터 괄목할 연주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트럼펫의 파가니니', '트럼펫의 카루소'라는 별칭이 따라다닌다. 그가 열다설 살에 녹음한 하이든의 프럼펫 협주곡 음반은 한마디로 놀라운 연주라고 할 만하다. 힘과 테크닉을 겸비한, 리드미컬한 블로윙이 자연습럽게 펼쳐진다. 나카리아코프는 21세기에 접어들어 가장 각광받는 프럼펫 연주자라고 할 수 있다. 1992년부터 텔덱(Teldec)레이블에서 진행했던 여러 녹음들이 CD 6장의 전집으로 묶여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