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Sir Neville Marriner(Conductor)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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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alimathias Musicum for Piano & Orchestra ('Quodlibet') K. 32

Galimathias 라는 말은 사전에서 찾아보면 '수다' 또는 '허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Galimathias Musicum은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모짜르트는 오늘날 우리가 소위 '가벼운 음악'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많이 작곡했다. 춤곡, 세레나데, 디베르티멘토를 비롯하여 1766년 10살 때 작곡한 통속적 테마에 익살극의 효과들을 가미한 K.32 이 '갈리마티아스 무지쿰'이다. 이 곡의 주제 선율은 오스트리아의 구전 민요인데 1년 전 하이든도 같은 선율로 Capriccio 'Acht Sauschneider mussen seyn' in G. Hob XVII: (카프리치오 '돼지 거세에 8명이 달라들어') 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쿼들리벳(Quodlibet)은 16세기와 17세기에 유행한 음악 형식이다. 쿼들리벳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좋을대로,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이든지’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쿼들리벳은 두루 잘 알려진 멜로디를 둘 이상 결합시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작곡가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선율이나 악구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결합시켜서 쿼들리벳을 만든다. 그런데 이 쿼들리벳이라는 음악 형식은 익살스러운 면이 있다. 그 이유는 쿼들리벳이 선율을 결합하는 데 있어서 연관성이나 통일성과는 무관한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쿼들리벳은 서로 다른 성격의 선율과 악구를 의도적으로 결합시켜서 해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성악곡을 위한 쿼들리벳은 그 음악적 흐름이 더욱 산만한데, 성부마다 서로 아무 관련도 없는 다른 내용의 가사로 다른 선율의 노래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쿼들리벳 중에서는 심지어 서른아홉 개의 샹송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짜깁기한 곡도 있다고 한다. 16세기 프랑스에서는 ‘프리카세’라는 이름이 붙은 쿼들리벳이 상당수 작곡되었다. 프리카세는 원래 고기와 채소를 넣어 푹 끓인 프랑스 요리를 가리키는 말로, 여러 가지 재료가 섞인 요리처럼 여러 가지 음악적 재료와 선율이 섞인 쿼들리벳을 당시 프랑스에서는 프리카세라고 불렀다.

쿼들리벳은 16세기에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런 수법을 사용한 음악 형식은 13세기 모테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17세기 초 미하일 프레토리우스는 자신이 쓴 음악 백과 사전인 ‘신타그마 무지쿰’에서 쿼들리벳에 대해 언급하며, 괼덴이라는 이름의 작곡가가 쓴 5개의 코랄 선율이 동시에 연주되는 곡을 예로 든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쿼들리벳은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것이다. 바흐가 건반 악기를 위해 쓴 ‘골트베르크 변주곡’ 중에서 마지막 변주곡인 서른 번째 변주곡이 바로 쿼들리벳 형식으로 되어 있다. 바흐는 이 서른 번째 변주곡에서 주제 선율과 함께 이탈리아 민속 음악에서 유래하는 ‘양배추와 무청’과, 독일 민요인 ‘긴 세월 동안 만나지 못했네’를 결합시켰다. 바흐는 이 세 개의 선율을 대위법적으로 연결시켰다.

2. Divertimento in D Major, K131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는 18세기 중⋅후반에 유행한 기악 모음곡의 일종이다. ‘희유곡(嬉遊曲)’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이 악곡은 교향곡이나 현악 4중주곡에 비해 한결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악장의 개수도 4개에서 10개까지로 다양했고 악기 편성의 형태도 각양각색이었다. 이와 비슷한 유형의 다른 악곡으로 세레나데(serenade)와 카사치오네(cassaszione)가 있었지만, 디베르티멘토는 대개 작은 규모의 실내 앙상블을 위한 모음곡을 가리키는 용어로 통용되었다.

아울러 디베르티멘토는 ‘여흥음악’ 내지 ‘오락음악’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즉 디베르티멘토는 궁정 또는 귀족이나 재력가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행사나 식탁에서 분위기를 돋우거나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연주되는 음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디베르티멘토는 소나타, 춤곡, 변주곡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작곡된 여러 개의 악장이 템포의 완급에 따라 탄력적으로 배치되었고, 음악적 성향도 너무 강렬하거나 음울하거나 심각해지지 않도록 조절되었다.

오락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다

18세기 중⋅후반에 활약한 고전파 작곡가라면 대개 디베르티멘토를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인물은 역시 하이든과 모차르트이다. 이들은 ‘오락음악’의 테두리 안에서 최선의 완성도를 구현해 보였는데, 특히 모차르트가 남긴 20여 곡의 디베르티멘토들 중에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은, 빛나는 가치를 지닌 곡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1775년 3월, 모차르트는 뮌헨에서 오페라 부파 <가짜 여정원사>의 공연을 성공리에 마치고 금의환향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무려 30개월 동안이나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음악가로서 고향에 머물게 된다. 겉보기에는 안정되고 평온한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그의 속내를 알고 보면 그처럼 답답하고 가혹한 일도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넓은 세상을 여행하며 삶과 예술의 활력과 영감을 충전해 왔던 그에게 그토록 오랜 기간 좁은 잘츠부르크에 얽매여 있어야 한다는 것은 유형 생활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1776년에는 대주교가 궁정극장을 폐쇄시키는 바람에 창작 활동의 폭마저 좁아졌다.

디베르티멘토는 행사의 흥을 돋워주는 오락용 음악이었다.


아돌프 폰 멘첼(Adolf von Menzel)의 작품 무도회의 만찬(Ballsouper). 1878년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 떠드느라 바쁜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떤 음악인들 제대로 귀에 들어올까?

잘츠부르크에 머무는 동안 모차르트는 궁정악단의 수석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하는 한편, 귀족이나 교회를 위한 음악들을 주로 썼다. 그렇게 해서 각종 미사곡, 세레나데, 카사치오네, 디베르티멘토 등 음악적 비중이 떨어지는 작품들이 양산되었고, 천재의 귀중한 재능과 시간은 그렇게 하릴없이 허비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모차르트의 창작에 대한 열의와 의지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1775년에는 ‘터키 풍 협주곡’을 위시한 일련의 바이올린 협주곡들을 내놓으며 작곡가로서 한 걸음 더 전진했고, 1776년에는 ‘세레나타 노투르나’와 ‘하프너 세레나데’, 그리고 디베르티멘토들에서 오락성과 예술성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세인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여흥음악에서조차 남다른 완성도와 풍미를 추구했던 것이다. 이처럼 그가 잘츠부르크에 머물며 수준 높은 세레나데와 디베르티멘토를 줄줄이 배출했던 1775년 봄부터 1777년 여름까지의 기간을 하우스발트는 ‘성숙과 충실의 시대’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
모차르트가 디베르티멘토를 처음 선보인 시기는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 중이었던 1771년 11월로 추정된다. 당시 밀라노에서 작곡된 디베르티멘토 E플랫장조 K.113은 모차르트가 클라리넷을 최초로 사용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후에도 모차르트는 밀라노의 후원자를 위해서 디베르티멘토를 쓴 적이 있다. 하지만 그의 디베르티멘토는 대부분 잘츠부르크에서 그곳의 인사들을 위해서 쓰였다. 특히 그의 주군이었던 콜로레도 대주교는 가장 중요한 소비자였다. 1775년에서 1776년 사이에 작곡된 다섯 곡의 관악 디베르티멘토들은 대주교의 ‘식탁음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로드론 백작부인의 의뢰로 작곡된 두 곡의 ‘로드론 세레나데’ K.247과 K.287을 비롯하여 다수의 디베르티멘토들이 그가 만하임-파리 여행을 떠나기 직전인 1777년 여름까지 작곡되었다. 그리고 만하임-파리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작곡된 디베르티멘토 D장조 K.334는 그의 가장 훌륭한 디베르티멘토로 꼽히며, 빈 시대에 작곡된 ‘음악적 익살’ K.522는 그의 마지막 디베르티멘토이다.

3. Cassation in B Flat Major, K99-63a

18세기에 유행했던 짤막한 기악 모음곡을 일컫는 말이다.
이 음악은 실외에서 연주되었고 첫곡은 행진곡을 배치하는 특징이 있다. 악장의 수효는 적어도 7개 이상이다. 하이든, 모차르트, 디터스돌프(Dittersdorf)가 이 음악을 썼다. 음악의 실용적인 목적은 세레나데, 디베르티멘토와 같이 귀족들의 여흥을 위해 작곡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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