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1. Hungarian Dances

1852년 헝가리계 바이올리니스트인 에두아르드 레메니(Eduard Remenyi, 1828-1898)가 함부르크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당시 연주회를 본 19살의 브람스는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853년 봄, 브람스는 레메니와 함께 연주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브람스보다 세 살이 많았던 레메니는 이미 음악가로서 인기를 얻고 있었고, 브람스는 레메니의 명성에 기대어 함부르크, 하노버, 바이마르, 뒤셀도르프 등 독일의 주요 도시에서 연주했다(그 시절의 브람스는 피아니스트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이 순회공연 중에 레메니의 소개로 평생을 함께 할 친구 요제프 요아힘(바이올리니스트)도 알게 되었다. 또한 브람스 인생의 중요한 두 개의 기둥으로 자리할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비크도 소개 받았으니 레메니와의 여행은 브람스의 운명을 결정지은 연주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헝가리 무곡에 얽힌 표절 논쟁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바로 이 순회공연의 결과물이다. 헝가리 무곡의 핵심적인 문구는 집시음악이며, 레메니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브람스를 고소하게 된 것도 집시음악의 특징적인 모습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레메니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사실 레메니와 연주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브람스는 <헝가리 무곡>을 작곡할 생각조차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레메니가 브람스에게 하나의 영감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브람스가 레메니의 작곡을 표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재판 결과는 브람스가 악보를 출판할 때, 작곡이라고 하지 않고 편곡이라고 표기했으므로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레메니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야 했고 브람스는 ‘신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1868년에 1집(1∼5곡)과 2집(6∼10곡), 1880년에 3집(11∼16곡)과 4집(17∼21곡)의 악보가 출판되었다. 레메니의 소송 영향으로 브람스는 11번곡부터는 민속 선율의 사용을 자제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대중적인 인기는 후기 곡들보다 초기 곡들이 많다.

서른여섯 살에 발표한 <헝가리 무곡>의 엄청난 성공은 작곡가로서 브람스의 입지를 강화해주었고 사람들은 집시 풍의 음악에 지속적인 찬사를 보냈다. 사실 브람스가 집시음악을 처음 사용한 것은 1857년에 발표한 <헝가리 노래에 의한 변주곡>(Op.21 No.1)이며 <헝가리 무곡> 이후에도 <집시의 노래>(Op.103)와 피아노 4중주(Op.25) 등의 작품이 그러한 범주 속에 있다.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도 비록 집시음악은 아니지만 브람스 <헝가리 무곡>의 성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헝가리 민속음악에 맞춰 민속춤을 추는 사람들.

집시음악에 대한 대중적인 열광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이나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같은 음악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이러한 대중적 열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그 시대 사람들은 헝가리 음악을 집시음악과 동일시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토속적인 헝가리 사람들이 즐겨 흥얼거리던 음악은 집시들의 음악과 별다른 상관이 없다.

다만 헝가리가 집시들에게 국경을 개방한 몇 안 되는 나라였으므로 자국 안에 집시들이 많이 있었고, 또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헝가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집시음악의 형식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이다. 20세기 초의 작곡가 벨러 버르토크가 강력하게 인식한 것이 바로 집시음악의 영향을 받지 않은 오리지널 헝가리의 민속음악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헝가리 무곡>이 원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연탄곡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19세기 중반을 넘어섰을 때는 이미 웬만한 독일 중산층 가정에는 피아노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두 사람이 한 대의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 함께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 브람스는 1872년 피아노 독주용으로도 초기의 10곡을 편곡해서 출판했지만, 정작 우리가 익히 듣고 즐기고 있는 오케스트라 버전은 1번, 3번, 10번 이렇게 세 곡만을 1874년에 직접 편곡했을 뿐이다.

<헝가리 무곡> 전체 21곡 중 나머지 18곡은 모두 브람스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편곡했다. 2번은 요한 안드레아스 할렌(Johan Andreas Hallen), 4번은 파울 유온(Paul Juon), 5번과 7번은 마르틴 슈멜링(Martin Schmeling), 8번, 9번은 한스 갈(Hans Gal), 11번~16번은 알베르트 팔로(Albert Parlow), 17~21번은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in Dvorak)가 몇 곡씩 나눠서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했다.

브람스에 의한 오케스트라 구성은 피콜로,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4, 트럼펫 2, 팀파니, 트라이앵글, 큰북, 심벌즈, 현 5부이다. 초연은 브람스가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세 곡의 경우 1874년 2월 5일 라이프치히에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브람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네 손을 위한 연탄곡은 1번곡부터 10번곡까지 1868년 11월 1일, 11번곡부터 21번곡까지는 1880년 5월 3일에 각각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에 의해 초연되었다.

2. Brahms - Symphony No.2 in D Major

작품의 배경 및 개요

브람스의 <교향곡 제2번>은 알프스山이 둘러싸인 남오스트리아의 ‘페르차하’에서 1877년 완성되었다. 제1번 교향곡이 웅혼 장대한데 비해, 이 곡은 밝은 분위기로 전원적인 느낌을 가진 곡이다. 그리고 이 곡은 그로서는 드물게 단숨에 쓴 곡인데, 이 곡을 작곡하던 페르차하가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곡의 분위기도 시종 밝고 온화하다. 그래서인지 이 곡을 일러 브람스의 <전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곡의 작곡과정을 보면, 1877년 10월 3일 1악장과 4악장을 완성하여 클라라에게 피아노로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에 2,3악장을 마저 작곡하여 전곡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그 해 11월, 4손용 피아노 편곡판을 완성하여 친구인 외과의사 ‘빌로트’와 함께 ‘프리드리히 에르바르’ 피아노 살롱에서 시연하였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교향곡의 초연은 출판되기 전, 브람스의 육필 악보로 그해 12월 30일 빈의 ‘뮤직페라인’에서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있었다.

곡은 밝고 사랑스러워 빈 시민들과 기질적인 면에서 잘 맞았다. 초연은 대성공이었으며, 3악장은 앵콜로 더 연주되었고, 열광적인 관중들은 브람스를 무대로 불러내기 위해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슬릭’은 이때를 회상하는 글에서 “신작은 정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새로운 음시에 대한 청중의 기쁨은 솔직했고, 따듯함으로 표현되었다.”고 말했다. 이후 이 곡은 1878년 브람스 자신의 지휘로 라이프지히, 암스텔담, 드레스텐, 뒤셀도르프에서 연주되었는데, 그때까지 악보 인쇄가 안됐으며, 8월에서야 총보와 파트보, 그리고 4손용 피아노 편곡판이 ‘짐로크’社에서 출판되었다.

곡의 성격은 극적인 것보다 서정적인 이상을 더 강조했다. 자연에 대한 관조도 작품의 한 주제로 나타나는데, 자연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목관악기들의 풍성한 화음 사이에 숨어 있다. 활달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1악장은 왈츠와 비슷하지만, 목관을 중복시켜 음폭을 두텁게 만들어낸 점은 브람스다운 중량감이 느껴진다.

금관도 약음을 달고 연주하여 부드럽고 전원적인 느낌을 만들어내고, 현악 파트도 비올라와 첼로의 중음주법을 강조한 것 등이 안정적이다. 아울러 파트 분할이 많아진 관현악의 울림은 매우 충실하게 빛을 발하게 된다. 2악장에서는 가볍고 우아한 멜로디와 자극적이고 빠른 춤곡이 번갈아 나오는 인테르메조도 눈길을 끈다. 피날레는 축제의 환희를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로 곡을 마감한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1악장 Allegro non troppo D major 3/4박자 소나타 형식.
곡의 첫머리에 제1테마가 은은하게 나타난다. 혼과 목관악기 등이 전원적인 부드럽고 따뜻한 기분을 살려 준다. 으 후 바이올린에 의해 낡고 명랑한 새로운 선율이 나타난다. 다음에 비올라와 첼로가 제2주제를 연주한다.

제시부가 끝나면 발전부로 들어가는데 그 전에 혼의 제1테마가 나타나서 여러 갈래로 전개된다. 재현부에서는 오보에가 제1테마를 연주하면 이것이 여러 가지 악기에 옮겨져 연주된다. 얼마 후 제2주제가 비올라와 첼로에의해 나타난다. 코다는 제1테마로 시작되어 여러 갈래의 발전을 보이다가 사라지듯이 조용히 끝난다.

마치 서산에 지는 태양이 숭고하고도 진지한 빛을 비쳐 주는 풍경을 느끼게 하는 악장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장엄하면서도 그러나 비극적인 감정이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데 이런 감정이 로맨틱한 서정미 속에 나타나 있다.

제2악장 Adagio non troppo B major 2/4박자 변형된 소나타 형식.
제1악장의 유쾌했던 기분과는 대조적으로 적적하고 외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먼저 제1테마가 나타나 여러 가지 변화를 보인다. 그 후 목관에 의해 밝고 귀여운 새 선율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제2테마이다. 이 테마가 현악기와 관악기에 의해서 응답하는 식으로 반복되고 나서 제1바이올린이 제3테마라 할 만한 새로운 선율로 연주한다.

재현부를 지나 팀파니이ㅡ 조용한 울림이 있은 후 고요히 끝난다. 전체적으로 느린 템포의 노래하는 듯한 멜로디가 중심이다. 3개의 주요 멜로디가 제각기 특징을 보이며 조용하고 우수에 잠기면서 그러나 애정에 찬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제3악장 Allegro grazioso G major 3/4박자 론도 형식.
빠르고 아름다운 이 악장은 론도 형식을 따르면서도 스케르초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제2악장에서 볼 수 있었던 침울한 기분은 사라지고 극히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소박하고 매혹적인 선율은 경쾌하고도 비할 바 없이 아름답다. 먼저 오보에가 소박한 무곡풍의 선율을 연주한다. 희롱하는 듯한 현악기의 가벼운 선율이 감정을 고조시키면 이에 이어 고요한 목관 악기의 연주가 나타나 주제를 명상적으로 음송하는 듯 이끌어 간다.

제4악장 Allegro con spirito D major 2/2박자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
한슬릭의 말과 같이 이 악장에서는 모차르트 악파의 혈통을 받은 듯한 기쁨과 경쾌한 맛이 흐른다.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서 무한한 기쁨과 행복감에 찬 악장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