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Track 1-4 : Beaux Arts Trio
Track 5 & 7 ~ 10 : Mstislav Rostropovich, Violoncello, Martha Argerich, Piano
Track 6 : Anner Bylsma, violoncello

Total timing 01:20:00


Track 1~4 : Piano Trio in g minor Op.8

작품의 개요 및 배경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평생 피아노 음악 창작에 매달린 사람이다. 200곡에 이르는 피아노 독주곡은 쇼팽이란 이름을 대변하는 주옥같은 음악들이다. 하지만 쇼팽의 작품목록에 피아노 음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것으로 피아노가 들어간 협주곡을 상기해볼 수 있다. 그가 오케스트레이션에 미숙하긴 했지만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노 외의 악기까지 신경 쓰며 작곡했던 음악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높다. 또 첼로 소나타 이중주 형태의 악곡도 쉽게 연상된다.

쇼팽이 워낙 첼로를 좋아했기 때문에 피아노와 첼로가 어우러진 첼로 소나타는 그의 실내악곡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훌륭하다. 실내악곡으로 첼로 소나타 외에 더 떠올려보면, 듣기 쉽고 변주의 흥미까지 더해져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로시니의 신데렐라 주제에 의한 변주곡>, <서주와 화려한 폴로네즈>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언급한 이 정도 레퍼토리가 쇼팽 실내악의 전부로 이해되고 있는 편이다.

쇼팽의 피아노 3중주곡이라고 하면 많은 애호가들이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쇼팽의 피아노 3중주곡은 그의 얼마 되지 않는 실내악 작품 가운데서도 좀처럼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하는 레퍼토리라 하겠다.

아마도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거목들의 걸작들에 대한 인기가 너무 높아서 상대적으로 좀 가려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쇼팽의 음악은 약간의 약점을 지니고 있긴 하다. 이 피아노 3중주 G단조 Op.8은, 쇼팽이 자신의 악기인 피아노 파트는 물론 좋아했던 첼로 파트까지도 훌륭하게 썼지만, 바이올린 작법에서는 고음역 악기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비평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쇼팽의 몇 작품 되지 않는 실내악곡 가운데서도 최초의 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음악적 약점은 충분히 감수하며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어린 나이의 작품치고는 훌륭한 편인데, 쇼팽은 영감을 남발하여 아주 쉽게 작품을 쓰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쇼팽이 모차르트처럼 머릿속에서 이미 완성된 멜로디를 그저 편지 쓰듯이 옮겨놓았으리라 추측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별 준비 없이도 그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쇼팽이었지만,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 그는 때때로 혹독한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그가 작품 창작의 고통을 산고에 비유한 일은 동감의 차원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떠오른 주제가 빈자리를 채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결국 전체가 마치 모자이크처럼 틀이 잡힌다. 이 정도로 다 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내가 마침내 이 작품에서 완전히 손을 떼려면, 엄청난 노력과 고통은 물론 많은 눈물과 잠 못 이루는 밤을 겪어야만 한다. 내가 한 작품을 끝낸 후에 느끼는 기분은 아이를 낳은 후 기진맥진한 여인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피아노 3중주곡에서도 산고의 고통 같은 힘겨운 노력의 흔적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쇼팽이 이 ‘G단조 3중주곡’을 쓴 시기는 1828년과 1829년 사이로 스무 살 전이었다. 아직 바르샤바에 있을 때였다. 그는 1820년대에 빈을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쓰게 된 몇몇 작품들 가운데 하나였다. 비록 초기 실내악곡이지만 만년의 작품 첼로 소나타 G단조 Op.65처럼 규모가 크다.

쇼팽은 피아노 3중주 G단조를 포츠난의 라지빌 대공에게 헌정했는데, 대공은 바르샤바와 포츠난에 쇼팽을 자주 초대했던 사람이다. 대공이 첼로를 잘 연주했고 쇼팽 자신도 이 악기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이 3중주곡에서 첼로 파트는 특히 빛난다. 가장 빛나는 부분은 역시 자신의 악기인 피아노 파트다. 피아노의 눈부신 표현력은 그의 다른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것 그대로다. 하지만 대담한 형식과 화려한 연주효과를 노린 이 작품에서도 세 악기의 균형에 세심한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피아노 3중주에서 세 악기의 균형은 현악 4중주에서의 그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쇼팽은 이미 젊은 시절부터 잘 깨닫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작품의 개요 및 배경

쇼팽은 바흐 음악의 균형미를 철저하게 신봉했다. 그는 바흐의 음악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균형을 이룬 기하학적 조형물처럼 생각했다. 그에게 바흐의 음악은 인류가 창조한 음악 가운데 가장 이상적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그는 바흐의 음악을 존경과 경외의 대상으로 숭배했으며, 음악가인 자신에게 항상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일용할 양식’으로 생각했다. 제자들에게도 꾸준히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를 연습시켰다. 심지어 자신의 작품연주회를 앞두고도 자신의 작품을 연습하기보다는 바흐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쇼팽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반드시 숙지해야 할 최고의 교본으로 꼽은 것은 바흐의 ‘평균율’이었는데, 이 사실은 그가 얼마나 균형과 절제의 미덕을 중시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얘기는 그의 실내악곡 군데군데 찾아볼 수 있는 균형 감각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제1악장 알레그로 콘 푸오코
독창적인 조성의 변화가 눈에 띄는 소나타 악곡이다. 막중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리솔루토의 패시지가 나오면 바이올린이 선율을 이끌고 피아노가 그것을 다시 이어 받아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상당히 화려하게 느껴지는 마지막의 코다는 G단조 악곡이다.

제2악장 스케르초
다섯째 마디에서 주제 선율이 바이올린에 의해 등장한다. 주부가 폴리포니 스타일로 전개되고 있고, 트리오 부분은 겸허하면서도 화사한 C장조 선율로 이어진다.

제3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3악장은 벽두의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이 순서대로 날카로운 동기를 이어붙이며 시작하는데 꽤 인상적이다. 그 동기들은 이 아다지오 악곡 전체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중간에 주제가 피아노에 부여될 때는 표정이 약간 바뀌면서 진행되는데 절묘하다. 중반 이후에는 전혀 새로운 멜로디가 출현하지만, 이전에 나왔던 예각적인 동기가 그 진행을 이내 막아선다. 악곡의 마무리는 피아니시모로 사라지는 형태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의 잔잔하고 끈끈한 속도는 내면적 성찰을 깊게 하는 데 크게 일조한다. 느린악장에서는 쇼팽 특유의 우아하고 달콤한 악상이 들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지만, 쇼팽은 음악을 매우 심각하게 끌고 간다. 전체 악장 중에서 가장 깊은 사색이 들어 있는 ‘명상 악곡’이라고 할 수 있다.

제4악장 알레그레토
G단조의 알레그레토 악곡이지만, 민속춤 주제에 의한 경쾌한 론도다. 리드미컬한 주제가 피아노로 사뿐사뿐 제시된 후에는 나머지 두 악기가 함께 어우러진다. 부주제는 첼로의 D단조 패시지로 시작한다. 하지만 역시 악곡의 이미지는 여전히 경쾌하며 세 악기가 격정적으로 경쟁하며 힘차게 절정으로 치닫다가 힘차게 끝맺는다.

글 출처 : 브람스 하우스

Track 5 : Introduction and Polonaise Brillante in C Major, Op.3

쇼팽은 이 곡을 1831년에 출판하였고 오스트리아 첼리스트 Joseph Merk에게 헌정 하였다. 1829년 폴로네이즈가 먼저 출판되고 그 이듬해 1830년에 서주가 출판된다. 처음부터 계속해서 첼로로 연주되는 아름다운 선율과, '서주와 화려한'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극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폴로네이즈 부분이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Polonaise란 프랑스어로 '폴란드의 것'이란 뜻이고, 이 경우에는 폴란드의 민속춤곡을 뜻한다. 4분의 3박자의 이 춤곡에는 항상 반복되는 기본적인 리든이 있는데, 이 리듬이 바로 폴로네이즈를 같은 4분의 3박자의 왈츠와는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하고 독특한 요소이다. 시작 부분인 Introduction에서는 마치 무도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서로를 살펴보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고, 빠르고 경쾌한 부분인 alla Polacca에서는 본격적인 춤을 추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Track 6 : Grand Duo concertant in E major

이 작품은 파리의 출판업자 슐레장죄의 의뢰에 의해 작곡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곡이다. 1831년 가을 파리로 간 쇼팽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파리의 다양한 음악을 접했다. 특히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악마 로베르>의 웅장함에 압도된 그는 12월 21일에 친구인 티투스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는 슐레장죄가 <악마 로베르>의 주제를 사용하여 작품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다는 사실도 적혀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이듬해인 1832년에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대2중주곡이라는 형태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작곡할 당시, 리스트의 소개로 알게 된 명 첼리스트 프랑숌이 첼로 파트 부분을 도와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쇼팽과 프랑숌의 공동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후 프랑숌은 쇼팽이 죽을 때까지 도움을 아끼지 않았으며, 쇼팽은 만년에 그를 위해 첼로 소나타를 작곡했다.

Track 7 ~ 10 : Cello Sonata in g minor Op.65

작품의 개요 및 배경

낭만파 피아노 음악의 불멸의 거장 쇼팽이 남긴 몇 안 되는 실내악곡 중 하나이다. 모두 4곡이며 그 중 3곡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다. 쇼팽이 이들을 작곡하게 된 것은 그의 주변에 프랑숌이나 메르크 등 뛰어난 첼리스트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전에 파아노 작품으로만 일관하던 쇼팽의 마지막 작품번호 Op 65로 명명된 작품은 피아노가 아니라 첼로 소나타이다.

1846년과 47년 사이, 조르주 상드와 헤어져 노앙에 머물며 건강이 악화 일로로 치닫던 시기에 작곡되어 친구인 첼리스트 프랑숌에 헌정된 이 곡은 1849년 그와 함께 이 작품을 초연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청중 앞에 선 마지막 연주회였다. 또한 같은해 마주르카, 바르카롤, 그리고 2 개의 야상곡과 함께 이 작품을 출판했는데 이것이 그의 생애 마지막 출판이 되었다.

작곡 당시 건강의 악화, 상드와의 갈등이 얽혀 고뇌에 찬 어두운 분위기를 느끼지만, 애수에 찬 1악장, 론도풍의 화려한 4악장. 특히, 녹턴풍의 3악장 라르고는 매혹적인 선율을 담고 있어 첼로 곡 중에서도 많이 알려진 아름다운 곡이다.

쇼팽은 거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만을 작곡한 초기 낭만주의 음악의 선구자였다. 그는 피아노 이외의 악기를 위한 작품, 즉, 첼로를 위한 작품을 몇 곡 작곡했는데 그의 초기에 집중 되어 있으며, 중기 이후에는 오직 피아노 독주곡을 표현의 장으로 삼아 자신의 음악성을 추구해 나갔다. 그러다가 만년인 1845년 가을에 쇼팽은 그의 마지막 주요작품인 첼로 소나타의 작곡에 착수하게 된다. 그 배경에는 당시의 프랑스의 뛰어난 첼리스트였던 그의 오랜 친구,프랑숌(Auguste Joseph Franchomme)이 있었다.

쇼팽은 이미 젊은 시절에 첼로가 들어간 작품을 몇 개 썼는데, 그중 1832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대2중주곡 Grand Duo for Cello and Piano" 에서는 그 무렵 갓 알게 된 프랑숌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프랑숌은 파리 시절의 쇼팽을 여러 면에서 뒷받침해 주었는데 쇼팽은 이 소나타를 프랑숌의 첼로와 자신의 피아노 표현능력이 최고로 발휘될 수 있도록 작곡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첼로와 피아노의 표현력을 깊이 탐구하면서 그는 1년 넘게 이 작품을 다듬어 이듬해인 1846년에 완성했다. 그리고 이 소나타는 프랑숌에게 헌정되었다.

시기적으로는 조르주 상드와의 사이가 점점 악화되고 체력적으로도 쇠약해졌던 무렵에 해당되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추구되었던 만년의 양식이 이 첼로 소나타에서도 확실히 드러 난다. 음악가 사이의 우정과 그런 만년의 작품의 심화가 결부됨으로써 그가 도달한 최후의 경지를 보여주는 대작이 탄생한 것이다. 실제로 이 소나타는 쇼팽이 생존해 있는 동안 출판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1847년 3월 23일 쇼팽의 자택에서 프랑숌의 첼로와 쇼팽의 피아노로 연주되었으며, 공식적으로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848년 2월 16일 플레엘(Pleyel) 홀에서 초연되었는데, 쇼팽에게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연주회였다. 프랑숌과 함께 한 이 연주회에서는 전곡 약 30분의 반에 해당 하는 제1악장이 생략되었다.

쇼팽은 파리 근교의 노앙에 있던 조르주 상드의 별장에서 이 곡을 쓰기 시작했지만 건강상태의 악화나 상드와의 사랑의 갈등 등이 얽혀 완성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다. 그러나 그 고뇌의 경과가 이 곡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애수에 젖은 제1악장부터 론도풍의 화려한 제4악장에 이르기까지 쇼팽다운 피아노의 활약이 인상에 남는데 녹턴풍의 제3악장 라르고에서는 첼로의 매혹적인 칸타빌레를 흡족히 맛볼 수 있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첼로 소나타〉는 쇼팽이 열정적으로 사랑하던 연인 조르주 상드와 파국에 치닫고 마침내 이별에 이르는 가장 힘든 시기에 작곡되었다. 이 시기에 쇼팽의 몸은 점점 나빠지고 이후 폐결핵을 앓아 회복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다. 힘든 말년을 보내던 쇼팽에게 〈첼로 소나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피아노곡을 주로 작곡하던 그에게 첼로 작품을 작곡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다가 피아노 소나타 외에 처음으로 다른 악기를 위한 소나타곡을 작곡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었다.

쇼팽은 작곡할 때 스케치 악보를 별로 그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첼로 소나타〉의 경우 유독 많은 수의 스케치 악보를 남겼다.

쇼팽은 여동생에게 “작곡한 양이 별로 안 되는데도 거의 지워버렸어. 작곡할 때 가끔은 즐겁지만 가끔은 괴로워. 악보를 구석에 던져버렸다가 종종 다시 잡아들곤 하지”라며 〈첼로 소나타〉 작곡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탄생한 〈첼로 소나타〉는 쇼팽의 절친한 친구인 첼리스트 오귀스트 프랑숌(Auguste Joseph Franchomme)에게 헌정되었고, 18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쇼팽의 마지막 공개 연주회에서 친구와 함께 직접 연주하였다.

1악장은 연주하지 마시오?
1848년 열린 쇼팽의 마지막 공개 연주회에서 〈첼로 소나타〉는 1악장을 제외한 나머지 3악장만 연주되었다. 쇼팽은 이 연주회에 앞서 친구들 앞에 〈첼로 소나타〉를 먼저 선보였는데, 이 때 대다수 친구들이 1악장에 대해 “쇼팽스럽지 않다, 너무 많고 부담스러우며 명확하지 않다”는 평을 남겼다고 한다. 친구들의 평에 영향을 받아 초연 무대에서 1악장을 연주하지 않았을 정도로 1악장은 쇼팽의 음악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첼로 소나타〉는 새로운 쇼팽의 음악적 면모를 볼 수 있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1악장은 g단조의 어둡고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피아노가 먼저 주제를 연주하는데, 첼로와 피아노가 계속 주제를 주고받으며 끊임없는 대화를 나눈다.

스케르초는 원래 경쾌하고 발랄한 분위기를 가진 양식이지만 여기서 2악장 스케르초는 우울한 d단조로 시작한다. 곧 경쾌하고 발랄한 D장조로 이어지는데 혼돈 속에 꿈을 꾸는 것 같은 따사로운 분위기는 3악장의 느린 라르고까지 이어진다.

3악장 라르고에서는 피아노의 반주 위에 첼로가 유려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그린다.

4악장 알레그로는 론도 형식으로 주제가 계속 반복되다가 G장조로 밝고 힘차게 마무리한다.

첼로, 피아노 두 악기의 끊임없는 대화가 대위법적으로 겹쳐지고 1악장에서 등장한 반음계를 오르내리는 주제 모티브가 다른 악장에서도 지속적으로 등장하여 작품의 일관성을 부여한다. 아름다운 선율과 풍부한 화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쇼팽의 모습 보다는 두 악기 간의 치밀하고 끈질긴 대화를 통해 곡을 관통하는 쇼팽의 노력은 말년의 쇼팽이 가졌던 고뇌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글 출처 : 오작교의 테마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