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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1. Coriolan Overture in C minor, Op.62

코리올란이란 플루타크 영웅전에 나오는 기원전 5세기경의 로마의 영웅이다. 본명은 케이아스 마샤스인데 그는 단신으로 코리올라이 성(城)을 공략하였다. 하여 코리올라누스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것을 독일어식으로 읽으면 코리올란이 되는 것이다. 그는 무공을 세운 탓으로 정치상으로도 상당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기원전 492년에 로마가 공화제를 쓰자 정치상의 의견 차이로 국외로 추방되었다. 그래서 이웃나라인 보르시아로 가서 장군이 되었으며 2년 후에는 보르시아의 대군을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가 그 성문 앞까지 이르렀으나, 자기의 어머니와 아내의 간청으로 진퇴 유곡에서 방황하다가 결국은 보르시아군에 반기를 들었다. 그 결과 그는 모살(謀殺)된다. 그리고 이 줄거리는 셰익스피어가 1607년에 발표한 희곡[코리올레나스]에도 인용되었다.

베토벤이 이 서곡을 작곡한 것은 그 당시 비인의 궁전 비서관으로 법률가이며 시인이기도 한 하인리히 요제프 콜린(Heinrich Joseph von Collin 1771∼1811)이 1802년 11월, 비인에서 상연한 희곡[코리올란]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이 희곡은 5막이나 되며 최후에는 진퇴양난으로 인해 자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곡은 1807년에 작곡된 것이므로 이 극의 초연에 사용하도록 하기 위하여 작곡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헌정된 것은 코리올란이므로 이 희곡이 작곡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곡은 베토벤 자신이 1807년이라고 적어 넣은 초고가 남아 있을뿐 아니라, 그 해 4월 20일에 클레멘티와 출판 계약을 한 것중에는 4중주곡 3곡, [제 4교향곡],[제 4 피아노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외에 이곡이 들어있는 점으로 보아, 대개 그 해 초에 작곡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베토벤의 작품 중 단기간에 일사 천리로 완성된 몇몇 작품 중의 하나로 하인리히 요제프 콜린(Heinrich Joseph von Collin)에게 헌정되었다.

이 곡은 소나타 형식으로 제1테마는 주인공 코리올란을 상징하는 정열적인 주제이고 제2테마는 어머니의 순정을 그렸다. 알레그로 콘 브리오, 4/4박자인 이 서곡은 제1테마에서는 화음이 화려 한 멜로디가 힘차게 전개된다. 거만하고 정열적이었던 주인공의 성격이 형상화된 듯하다. 그리 고 잠시 극적인 효과를 자아내는 침묵이 있다가 바이올린의 우아한 선율이 대조적으로 흐른다.

이어지는 제2테마는 어머니와 아내가 애원하는 모습인 듯하다. 그리고 종결부는 어딘지 죽음을 연상하면서 점차 희미해지고 약해지며 끝난다.

바그너가 이 곡에 대해 내린 평은 다음과 같다. '베토벤의 위대한 힘은 불굴의 자신감과 열광하는 반항심, 분노, 증오, 복수, 파괴적 정신 속에 서 영웅의 모습을 재현했다.' 그리고 베토벤이 자신도 이 희곡의 주인공 속에서 자신의 성격과 비슷한 면을 찾아내어, 곡 속에서 자기의 표현을 시도했다고도 일컬어지고 있다.

2. Wellington's Victory, Op. 91 "Battle Symphony": Storm March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 일명, 전쟁 교향곡 혹은 비토리아의 전쟁]은 1813년 6월 21일 스페인 비토리아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웰링턴"이 이겼다는 승전보가 빈에 전해지자, "베토벤"의 친구이며 메트로놈의 발명자인 "멜첼: MALZEL"이 "베토벤"에게 의뢰해 썼던 작품이다. 전곡은 2부로 되어 있으며, 북과 신호나팔, 전투 나팔, 그리고 포격 소리까지 동원되는 일종의 전쟁 표제음악이다. 포격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찢을 듯이 사실적으로 녹음되어 있다. 전쟁음악으로 너무도 유명한 "리스트"의 [훈족의 전투]와 [돌격 행진곡]도 텔락이 자랑하는 음질로 담겨있다.

전쟁 교향곡 D장조 작품91 "웰링턴의 승리"

이 곡은 교향곡이라고 불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교향시라고 불리어야 할지, 아직까지 논란이 대상이 되는 곡으로, 어쨌든 이 곡의 원재는 <<웰링턴의 승리>> 또는 <<빅토리아의 전투>>라고 불리는 곡이다. 그렇지만 자필악보에는 "전쟁 교향곡"이라는 타이틀로 출판되었다.

1813년 12월 8일 빈 대학 강당에서 메트로놈을 발명한 멜첼이 주최한 <하나우 전쟁 상이용사들을 위한 자선 음악회>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공개초연되었다. 이날 음악회에서는 소위 "전쟁 교향곡"이라 불리우는 <빅토리아 회전과 웰링턴의 승리> op. 91과 교향곡 8번 op. 93도 같이 초연되었다.

전쟁이라는 주제는 18세기의 활약했던 거의 모든 작곡가들이 다루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반부는 전투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영국군 진영의 북 소리와 나팔 소리, 영국군의 행진, 프랑스군 진영의 북 소리와 나팔 소리, 프랑스군의 행진, 프랑스군의 도전과 영국군의 응전 그리고 전면 전투의 순으로 진행이 되며, 후반부는 단악장 형태의 교향곡이다.

3. Namensfeier (Name-Day Celebration) Overture in C, Op.115

1826년 6월에 출판되었을 때 이 악보의 속표지에는 ‘대관현악을 위해 만든 C장조의 대서곡’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원고에 베토벤이 써 넣은 ‘1814년 10월 1일, 우리 황제 황제 폐하 命名日 밤' 이라 쓰ㅢ어 있는 것이 계기가 되어 명명식(命名式)」이라는 표제가 붙게 되었는데, 1814년 10월 4일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쯔 2세의 명명식(命名式)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곡을 완성하지 못했고, 대신 저녁만찬에는 피델리오 서곡이 연주되었다. 결국 이곡은 1815년 3월에 완성되었다. 초기의 베토벤 서곡들처럼 이곡은 실러의 환희의 송가(Ode to Joy)를 주제로 삼고 있다.

 베토벤의 연주회용 서곡, 명명축일[Namensfeier (Name Day)]은 1815년 12월 25일 비엔나 호프부르크 왕궁의 레두텐잘 자선콘서트에서 초연을 의뢰받았다. 그러나 명명축일은 비엔나 의회에서 베토벤을 만났던 아마추어 작곡가 안톤 라치빌 왕자(Anton Heinrich Radziwill)에게 헌정되면서 1825년 3월에 발표된다. 베토벤은 황제의 탄생일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던 이곡을 통해 한때 시들어가는 인기의 재도약을 꿈꿨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명명축일은 작곡 당시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글 출처 : W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