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

1.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61

작품의 배경 및 개요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열네 살 차이가 납니다. 당연히 모차르트가 연상이지요. 하지만 모차르트는 베토벤이 스물한 살이던 1791년에 사망합니다. 베토벤은 그 다음해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해 하이든을 사사하면서, 빈의 음악가로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또 그 다음해에는 리히노프스키 공작 등 빈의 유력한 음악후원자들과 친교를 맺기 시작하지요. 이어서 스물다섯 살이 되던 1795년에 마침내 빈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합니다. 그렇습니다. 베토벤은 선배인 모차르트가 그랬듯이,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두 사람이 서양음악사에서 바통을 터치하는 시기가 참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두 피아니스트의 스타일은 여러 모로 달랐습니다. 물론 그 차이는 그들이 남긴 피아노 음악들(소나타와 협주곡 등)에서도 드러나지만, 실제로 연주회장에서 보여주는 스타일도 많이 달랐습니다. 어떻게 달랐을까요? 간단히 말해 모차르트의 연주는 스타카토(staccato)적입니다. 음을 짧게 끊어서 치는 느낌이 강하지요. 반면에 베토벤은 레가토(legato)적입니다. 스타카토와 레가토는 상대적 의미라고 보시면 됩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스타일은 모차르트보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느낌을 한층 강조하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실제로 베토벤은 자신이 피아노를 가르쳤던 제자들에게도 이 ‘레가토’를 수없이 주문했다고 전해집니다.

자, 두 사람은 그렇게 시대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당대의 피아노 명인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런데 피아노뿐이었을까요? 두 사람이 피아노 말고 또 능숙하게 연주했던 악기로는 뭐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바이올린과 비올라였습니다. 피아노만큼 ‘절대적인 악기’는 아니었지만, 베토벤과 모차르트는 바이올린과 그 형제라고 할 수 있는 비올라도 능숙하게 연주할 줄 알았습니다.

베토벤이 피아노뿐 아니라 바이올린도 빼어나게 다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음악이 바로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겠지요. 그 베토벤이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하나밖에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쉬운 지점이기도 합니다. 바로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입니다. 베토벤은 피아노 협주곡을 다섯 곡 썼지만, 바이올린 협주곡으로는 오늘 들을 D장조 협주곡이 유일합니다.

하지만 이 하나뿐인 협주곡은 풍부한 서정미와 우아한 품격을 두루 갖춘, 연주시간 약 45분에 달하는 대곡입니다. 게다가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주고받음이 그야말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 팽팽한 대치야말로 베토벤 중기 협주곡들에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베토벤은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완성하기 직전에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썼고, 그 다음 협주곡으로는 ‘황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작곡했습니다. 특히 우리는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와 피아노 협주곡 ‘황제’에서 독주악기의 ‘영웅성’과 대면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곡에서 독주악기는 마치 작곡가(베토벤)의 분신이기라도 하듯이 ‘거대한 어떤 것’에 저항하고 투쟁합니다. 그것은 체제일 수도 있고 운명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마침내 베토벤 음악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드라마틱한 장관이 펼쳐집니다.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던 때는 베토벤이 서른여섯 살이던 1806년입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점령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베토벤은 그 해 가을, 자신의 후원자인 리히노프스키 공작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었지요. 어느 날 공작이 점령군들을 위한 파티와 연주회를 준비했는데, 그날 연주회에는 당연히 베토벤의 연주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연주할 시간을 얼마 앞두고 사라졌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고 합니다. 그때 베토벤은 리히노프스키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지요. “당신이 공작일 수 있는 것은 가문과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힘으로 이뤄졌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미래에도, 수많은 공작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오직 나 한 명뿐입니다.”

초연은 같은 해 12월 23일,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열렸습니다. 프란츠 클레멘트(1780~1842)라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회였는데, 베토벤은 연주회 직전에야 독주 파트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클레멘트는 이 곡을 연습 없이 초견 연주했다고 전해집니다. 한데 그날 이후에 베토벤의 이 곡은 거의 연주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유례없이 긴 1악장을 연주자들이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이라는 것. 또 하나는 베토벤 이후 낭만주의가 본격화하면서 파가니니 풍의 화려한 기교적 연주가 유행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곡을 연주하기는 결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청중에게 신들린 듯한 기교를 보여줄 만한 패시지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가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겉으로 드러나는 테크닉의 화려함보다는 내면적인 고상함을 느끼게 하는 곡입니다. 아울러 매우 격조 있는 서정성이 물결치는 곡입니다. 세월이 거의 40년쯤 흐른 뒤에, 브람스의 막역한 친구였던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1831~1907)이 이 곡의 진정한 가치를 음악사에 아로새기게 됩니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1악장 : Allegro ma non troppo
1악장은 팀파니가 둥둥둥둥 D음을 연타하면서 문을 엽니다. 이 4박자의 리듬을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딴딴딴딴 하면서 분절되는 느낌의 리듬입니다. 1악장 곳곳에 등장하는 리듬 형입니다. 이어서 목관악기들이 장중하면서도 느긋하게 첫 번째 주제를 연주합니다. 힘찬 분위기의 경과부를 거치고 두 번째 주제도 역시 목관(플루트는 빠진)이 연주합니다. 첫 주제에 비해 좀 더 여성적인데다 노래하는 듯한 느낌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바이올린과 관현악이 이 두 개의 주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음악이 전개되는데, 그 사이사이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펼쳐내는 아름다운 연주에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펼쳐내는 카덴차(cadenza: 악곡이나 악장이 끝나기 직전에 독주자가 연주하는 기교적이고 화려한 부분)는 1악장에서 매우 인상적인 장면입니다. 이 카덴차는 후대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만든 것입니다. 요아힘 같은 이들이 카덴차를 첨가해 음악을 좀 더 흥미진진한 방향으로 유도했지요. 요아힘 외에 크라이슬러(1875-1962)가 만든 카덴차도 많이 연주됩니다. 제가 지금 듣고 있는 LP음반은 바이올리니스트 이다 헨델(85), 그리고 라파엘 쿠벨리크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협연(RCA)인데, 이 연주에서는 요아힘의 카덴차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2악장 : Largetto.
연주시간 약 24분의 1악장이 끝나고, 라르게토(larghetto)의 느린 2악장이 평화스러운 느낌으로 문을 엽니다. 약음기를 낀 현악기들이 주제를 제시하면 독주 바이올린이 그 주제를 아름답게 장식하면서 따라붙습니다. 1악장은 주제와 세 개의 변주로 이뤄졌습니다.

1변주에서는 클라리넷이, 2변주에서는 파곳이 주제를 연주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변주는 관현악만으로, 앞서의 변주들보다 훨씬 강한 음향으로 연주됩니다. 독주 바이올린은 그 변주들 사이사이에서 어딘지 애틋한 느낌이 담긴 선율들을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마지막에 다다르면 현악기들의 묵직한 음향이 갑작스럽게 한차례 울려 퍼진 다음, 다시 바이올린이 카덴차 풍의 독주를 선보이면서 다음 악장으로 연결되지요.

제3악장 : Rondo , Allegro
쉼표 없이 아타카(attacca)로 이어지는 3악장은 알레그로(allegro)로 템포가 빨라집니다. 독주 바이올린이 1악장에서도 들었던 주제를 생동감 있게 연주하고 관현악이 곧바로 이어받습니다. 3악장은 이른바 론도 악장이지요. 주제(A)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그 사이사이에 부차적인 주제(B, C)가 자리하는 형식입니다. 말하자면 A-B-A-C-A-B-A의 형식입니다. 그러니까 메인 주제에서 시작해 메인 주제로 끝나는데, 그 중간에 부차적 성격을 갖는 다른 주제들이 끼어듭니다. 그래서 풍성한 음악적 효과를 얻습니다. 3악장의 첫 번째 부주제(B)는 가볍고 산뜻한 느낌, 두 번째 부주제(C)는 노래의 느낌이 강한, 아름답고 매혹적인 선율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주 바이올린의 화려한 카덴차가 펼쳐진 후, 관현악이 짧고 육중하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2. Sibelius :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47

작품의 배경 및 개요

음악은 때때로 선동적입니다. 어느 순간 가슴으로 확 밀려들어와서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온통 뒤흔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악용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유럽의 현대사에서 이미 그 장면을 목도했거니와, 바로 히틀러와 나치가 바그너의 음악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한 것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시무시한 장면이지요. 유태인들이 죽음의 가스실로 끌려가는 그 순간에, 수용소의 스피커에서는 바그너의 음악 ‘순례자의 노래’가 울려 퍼졌으니 말입니다. 물론 세밀히 들여다보자면 꼭 바그너의 음악만은 아니었지요.

히틀러와 나치는 이른바 독일풍의 웅혼한 낭만음악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춘 ‘독일정신의 정화’로 포장해 악용했습니다. 베토벤과 브람스의 음악도 이 정치적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나치 이후의 독일 음악은 ‘감정의 배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감성적 음악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뼈저리게 겪은, 아울러 그 시대의 과오를 철저히 반성했던 독일인들은 스스로의 전통을 부정하고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이른바 음렬주의, 조성에서의 탈피 등 쇤베르크(1874~1951)에서 발원하는 음악이 바로 그렇습니다.

또 샛길로 빠져 말이 길어졌습니다. 다시 시벨리우스로 돌아오겠습니다. 자, 시벨리우스의 음악 중에서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을 또 한 곡 꼽아본다면 뭐가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극음악 <쿠올레마>에 삽입된 ‘슬픈 왈츠’라는 곡입니다. 연주시간 5분이 조금 넘는, 아주 짧은 곡이지요.

‘슬픈 왈츠’에 대해 설명하려면 시벨리우스의 아내인 아이노 예르네펠트(1871~1969)를 잠시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벨리우스는 26세 때(1892년) 아름다운 외모의 아이노와 결혼하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핀란드의 유명한 장군이고 위로 세 명의 오빠가 있었습니다. 한데 그 세 오빠들이 하나같이 핀란드의 유명한 예술가들입니다. 첫째 아르비드는 극작가, 둘째 에로는 화가, 셋째 아르미스는 작곡가였지요. <쿠올레마>는 ‘죽음’이라는 뜻인데 바로 아르비드가 극본을 섰던 연극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시벨리우스는 처남이 쓴 연극의 음악을 맡았던 것이지요. ‘슬픈 왈츠’는 그렇게 만들어진 짧고 아름다운 곡입니다. 왈츠는 왈츠인데, 왠지 스산한 북유럽의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한국에도 몇 차례 내한했던 빡빡머리 지휘자 파보 예르비(1962~)가 이 짧은 곡을 앵콜로 자주 연주하는 편입니다. 아마 인터넷 동영상으로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중적 인기와는 별도로, 시벨리우스의 음악적 생애를 대표하는 곡들은 7개의 교향곡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중에서도 2번이 가장 많이 연주됩니다. 그리고 시벨리우스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걸작이 바로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입니다. 이 곡은 청중도 좋아하지만 사실은 바이올리니스트들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음악입니다. 제가 몇 해 전 만났던 사라장도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더불어 이 곡을 손꼽았습니다. 또 최근에(사실은 며칠 전에) 만났던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신현수)도 자신이 애호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의 작곡가로 “브람스와 시벨리우스, 프로코피예프”를 꼽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시벨리우스 협주곡에 많은 애착을 보이는 걸까요? 신지아의 말 속에 그 단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예를 들어서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 2악장은 선율이 굉장히 아름다워요, 하지만 그걸로 그냥 끝이죠. 반면에 시벨리우스의 2악장에는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가슴이 아릿한 정서 같은 것이 있어요. 말로 설명하긴 좀 어렵지만요.”

신경숙의 소설 제목을 잠시 빌려온다면 그것을 ‘깊은 슬픔’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한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 곡을 애호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3악장이지요. 바이올린의 기교가 매우 화려하고 리드미컬한, 이른바 비르투오소 풍의 악장입니다. 연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짜릿한 쾌감을 느낄 만한 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지닌 기량을 마음껏 펼쳐내면서 알레그로 템포로 달려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아마도 그런 이유들 때문에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그것은 청중이 이 곡을 좋아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핀란드의 국민음악가’로 규정되는 시벨리우스는 20세기 초반에 주로 활약했지만 음악적으로는 전통적 어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온음계적 선율과 조성적 화성을 즐겨 사용했지요. 비슷한 시기의 유럽 작곡가들이 혁신적인 음악 어법을 찾느라 골몰했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그래서 그를 종종 보수적인 작곡가로 설명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의 음악에는 독일?오스트리아, 혹은 프랑스의 음악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핀란드의 하늘과 바람과 바다에서 영감을 얻는 듯한 개성, 또 내용적으로 보자면 그 땅의 설화에서 건져 올린 듯한 회화성과 신화성 같은 요소들을 느끼게 합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는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슬픈 왈츠’와 같은 해에 작곡됐지요. 38세였던 1903년이었습니다. 이듬해 2월에 작곡가 본인의 지휘로 헬싱키에서 초연하지요. 하지만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시벨리우스 본인도 뭔가 미진했던지 퇴고를 거듭해 1905년에 개정판을 내놓지요. 일설에는 1905년 베를린에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창작의 자극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날 주로 연주되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는 바로 1905년의 개정판입니다.

작품의 구성 및 특징

제1악장 : Allegro moderato
음악적으로 가장 빼어나다는 평을 듣는 것은 1악장이지요.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듯한, 북유럽의 신화적 분위기를 풍기는 악구들로 문을 여는데 시작부터 바이올린의 활약이 두드러집니다. 이어서 독주 바이올린이 애상적인 선율의 첫번째 주제를, 또 파곳이 두번째 주제를 연주합니다. 협주곡의 일반적 작곡 방식과 달리, 악장의 중간에 카덴차(cadenza, 독주악기가 무반주로 기교적 연주를 펼쳐내는 부분)가 있는 것도 1악장의 특징입니다.

제2악장 :Adagio di molto
아다지오 템포로 느릿하게 막을 여는 2악장에는 북유럽 특유의 서정이 확연하지요. 독주 바이올린이 어떤 표정을 띤 채 노래하는 느낌의 악구들을 연주하다가 관현악이 합세하면서 음악이 규모가 점점 확장됩니다. 그러다가 다시 바이올린이 애조 띤 노래를, 앞에서보다 조금 빠른 템포로 부릅니다. 마지막에는 다시 원래의 템포로 느려지지요.

제3악장 : Allegro
3악장은 팀파니와 저음 현악기들이 둥둥거리는 느낌으로 시작해서 곧바로 독주 바이올린이 첫번째 주제를 연주합니다. 그 주제 선율 밑에서 독특한 리듬패턴이 계속해 반복됩니다. ‘빰바밤빰 밤밤밤’하면서 반복되는 그 패턴을 몸으로 기억하면서 음악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3악장의 바이올린 테크닉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짜릿합니다.
글 출처 : 내 인생의 클래식 101(문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