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이야기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전7곡은 여러 지휘자들이 앞 다투어 전집 녹음을 남길 만큼, 하나이 도전적 대상이 되었던 묘한 매력을 간직한 교향곡이었다.
전곡 녹음을 살펴보면 역사상 최초 녹음은 식스텐 에를링(Sixteen Ehrling, 스웨덴)의 연주이다. 그러나 원래 핀란드 정부로부터 최초 전곡 녹음을 의뢰받았던 시벨리우스는 지휘자 로베르트 카야누스(Robert Kajanus, 핀란드)를 전곡 녹음 지휘자로 추천하였다. 하지만 카야누스가 1933년 세상을 떠나 교향곡 4, 6, 7번을 남긴 채 미완으로 남겨 두게 된 것이었다.
한편 시벨리우스 연구가이기도 한 베르글룬드(Paavo Berglund, 핀란드)는 시벨리우스 교향곡의 완전한 형태의 전집을 완성한 인물이다. 이외에도 번스타인, 마젤, 바비롤리, 콜린 데이비스, 예르비, 깁슨, 래틀, 잔데를링, 아쉬케나지, 사라스테 등 많은 이들이 전곡 녹음을 완성하였다.
그러면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 오스트리아)은 어떠한가? 그는 이미 1951년부터 교향곡 1, 3번을 제외한 2, 4, 5, 6, 7번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녹음(EMI)하였다. 그 후 1965, 67년 베를린 필하모닉과 일련의 4, 5, 6, 7번 녹음(DG)을 남긴다. 또다시 1976년부터는 5번을 시작으로 1, 2, 4, 6번을 베를린 필과 재녹음한다. 그러나 이 재녹음에는 3, 7번을 제외한다. 특히 5번 교향곡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위의 3종 이외에 1952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실황과 1949년 3악장만의 연주를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IS)와 남기고 있다.
결국 카라얀은 30여 년간에 걸쳐 여러 차례의 녹음을 남겼으나, 유독 3번 교향곡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녹음을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곡이 가지는 그 어떤 진부함과 내성적인 면이 자신의 세련된 연주 스타일과 잘 부합되지 않음을 인식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도한 일관된 전곡 녹음이 아닌 다소 복잡한 일련의 녹음 작업에서도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카라얀의 연주는 시벨리우스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자신만의 어법을 강조한 카라얀적인 음악일 것이다. 전곡 연주 모두 일정 수준을 상회하는 오연으로, 특히 1965년부터 DG에서 녹음된 4~7번 연주가 가장 인상 깊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의 연주는 악단의 세련된 울림을 통해 서늘하고 지극히 탐미적인 경향을 선보인다. 이것이 북구의 정서와 묘하게 일치되어 강한 설득력의 연주를 만들고 있다. 특히 4번 연주가 단연 돋보이는 절품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곡의 성격인 추상적인 어법과 준엄하고 타협을 배척한 신비적 자연미가 뛰어나게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능수능란한 카라얀만의 멋들어진 세련미가 전편을 지배하며 특히 악단의 완벽한 앙상블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런 속에서 드러나는 북유럽의 촉촉한 감흥이 더없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것이 바로 시벨리우스다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 도취적인 음악적 감흥만큼은 달리 비길 데 없는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중후하고 명상적인 울림을 통해 외향적인 면과 내향적인 면을 절묘하게 일치시켜 가장 정교하고 매끄러운 극도의 아름다움을 펼치고 있다. 1악장의 묵직한 무게감의 꿈틀거리는 환상미가 일품이며, 3악장 라르고(largo)의 가련한 감정 표현의 강렬한 호소력이 깊은 감명을 일궈 낸다. 한마디로 카라얀의 많은 시벨리우스 교향곡 연주 중 가장 빛나는 것이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