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와 교향곡 제4번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은 1899년 34세에 작곡되었고, 2번은 그보다 2년 뒤인 1901년 36세에 작곡되었다. 이 두 작품의 간격은 불과 2년이었고 그래서 초기 낭만주의 성향이 나타난다.

  하지만 3번은 2번을 작곡한 지 5년 뒤에 완성되어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고 다시 4년 뒤 1910년에 작곡된 4번은 전작들과는 그 양식이 현저하게 다른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또한 1904년부터는 에르벤퍼(Järvenpää)에 아내 예르네펠트(Aino Jämefelt, 1871~1969)의 이름을 딴 ‘아이노라(Ainola)라는 별장을 짓고 은거에 들어갔는데 그래서 3번에서부터는 내성적인 면이 강하게 느껴진다.

   종래의 교향곡들은 낭만적인 긴 선율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것이지만 4번에서는 선율보다는 짧은 동기 처리에 의해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형태도 특이하고 관현악법에 있어서도 극히 단순화된 새롭고 대담한 수법을 취하고 있다.

   이런 만큼 곡은 아담하지만 정교하고 치밀한 내용으로 특유의 낭만적인 어두운 환상과 정열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일ㄴ 개성이 보편성을 얻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것을 두고 어떤 이는 말러(Gustav Mahler)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당시 곡이 발표되었을 때는 ‘미래적인 것’이라 하여 호응을 얻지 못하였고 심지어는 이 곡을 프로그램에 넣은 것은 이것 말고 다른 좋은 작품들을 만든 작곡가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까지 하였다.

   하지만 평론가 그레이(Cecil Gray)가 “이 작품에는 관능적으로 호소하는 것이 전혀 없어 통속적인 것은 되지 않겠지만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시벨리우스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될 것이다. …이 곡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필요 없는 음표는 단 하나도 없다. 모르기는 해도 시벨리우스는 이 이상 더 위대한 작품을 쓰지 않았다”라고 극찬을 하고 있듯이 최대 걸작으로 자리한다.

   곡은 그의 생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시절에 만들어졌는데 그래서 전편에는 죽음의 상징들이 드러나는 등 삶의 우수가 짙게 배어 있다. 이것은 그가 작곡 당시인 1908년 43세에 후두종양 수술을 받은 것과 관련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의 결과는 좋았으나 평소 그가 즐기던 권련과 술을 멀리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종양 못지않은 큰 고통이었다. 하지만 병은 재발하지 않아 92세까지 장수하였고 90회 생일 때는 처칠(Winston Shurchill)로부터 궐련을 선물로 받기도 하였다.

   이런 죽음과 그림자가 수년간 감도는 시기에 작곡된 작품으로는 교향시 <야행과 일출>(1909년), 현악 4중주 <친근한 목소리>(1909년)였는데 이런 것의 정점에서 있는 작품이 바로 교향곡 4번이었던 것이다.

   한편 곡의 작곡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으로는 1909년 9월 처남인 화가 예르네펠트와 같이 불카렐리아의 코리의 산지를 여행한 것을 들 수 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코리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시벨리우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고 ‘내 생애 가장 멋진 경험 중 하나’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결국 종양이라는 죽음에 대한 공포의 심경이 코리에서 받은 강한 인상과 맞물려 자연의 신비와 삶의 깊은 그림자가 곡에 가득한 것이다. 또한 그 스스로가 ‘심리적 교향곡’이라고 말했듯이 간결하고 응축된 표현으로 복잡하고도 무거운 심경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 본성의 심연을 표현하기라도 하듯이.

   초연은 1911년 4월에 작곡가 자신이 지휘하는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이루어졌고 헌정은 처남 예르네펠트에게 하였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