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반이야기
시벨리우스 교향곡 연주는 역사적으로 볼 때 에를링(Sixteen Ehrling, 1918~ , 스웨덴)이나 카야누스의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민족주의 색채를 잘 표현한 그 지방 핀란드 출신의 지휘자인 베르를룬드나 사라스테, 밴스케를 떠올리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영국 출신 지휘자들의 연주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시벨리우스 생전부터 영국이라는 나라가 이 작곡가의 음악에 대해 깊은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격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30년대 영국에서는 시벨리우스의 전기를 쓴 작가 그레이를 비롯하여 램버트 그리고 지휘자인 비첨이 주도한 시벨리우스 작품 축제가 열려 시벨리우스의 가치를 높게 인식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영국인들은 시벨리우스 음악에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즐겨 애청하였고 많은 영국 출신의 지휘자 역시 시벨리우스 연주에서 뛰어난 실력과 두각을 나타냈다. 바비롤리를 비롯하여 서전트, 콜린스, 깁슨, 데이비스 드이 그 예인데 데이비스는 두 번에 걸쳐 교향곡 전곡 녹음을 남길 만큼 시벨리우스 전문 연주가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이들 중 시벨리우스 교향곡에 전통한 지휘자 바비롤리 연주는 예전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저명한 것이다. 그는 영국 태생의 지휘자이지만 조부와 부친은 이탈리아, 어머니는 프랑스 출신이었다. 이런 만큼 그의 음악에는 영국적인 인품과 이탈리아의 정열 그리고 프랑스 와인의 멋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그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연주는 영국적인 품위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황량하면서도 비애와 우수에 가득한 표현이 정말로 각별한 향취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바비롤리는 원래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7곡을 그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할레 교향악단(Hallé Orchestra)을 지휘하여 1960년대 내놓아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 중 제2번 교향곡 연주도 1966년 녹음(EMI)으로 남기고 있으나, 여기 소개하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녹음이 연주 내용으로나 음질에서 모두 앞서는 출중한 것이다. 또한 모노 시절인 1940년 이미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실황 녹음도 남기고 있어 이 곡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음반은 미국의 체스키라는 오디오 파일용 레이블에서 나온 것으로 녹음 연도가 다소 부정확한 1960년대 경으로 추정되는데 어느 자료에서는 1962년이라 명시하고 있어 할레교향악단과의 연주보다 앞서는 구녹음으로 생각된다.
첫 악장 알레그레토(allegretto)의 인상적인 연주 시작부터 품격이 넘쳐나는 시정과 곡에 대한 깊은 공감의 애정이 배어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완급의 템포 조절이 뛰어나고, 유려한 선율미와 내적 울림이 큰 호쾌한 박진감을 보여준다. 이렇듯 서정적이고 극적인 곡상의 분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여 풍부한 리리시즘과 북구의 우수에 찬 정감이 구구절절이 이어지고 있다.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현악 파트의 시원한 질감도 곡상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고, 은근하게 묻어나는 적막한 쓸쓸함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3악장과 4악장의 음율적인 시원함이 넉넉한 시정의 극치를 보여주어, 이 곡이 가진 아름다움을 가슴 깊이 전해 준다. 무릇 해가지지 않은 백야의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한편의 고즈넉한 시상을 떠올리게 된다. 이 연주를 듣노라면 북구의 차디찬 시정이 가슴 시리도록 아련하게 녹아든다.
자료출처 : 불후의 명곡(허재, 책과 음악)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