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와 교향곡 제2번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전 7곡의 교향곡 중 제1번, 2번, 7번이 인기가 있지만 단연 빛나는 것은 바로 여기의 2번 교향곡이다.

  이 곡은 20세기에 창작된 교향곡 중에 가장 널리 연주되면서 높은 평가를 받는 시벨리우스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히 영국의 음악 평론가 세실 그레이(Cecil Gray, 1895~1951)는 “시벨리우스는 베토벤 이후 최대의 교향곡 작곡가다”라고 하였을 만큼 최고의 교향곡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1900년 시벨리우스는 새로운 세기를 기념하기 위해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헬싱키 필하모닉을 이끌고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는 북유럽과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를 여행하였고 돌아오는 길에는 프라하에 들러 드보르작을 만나게 된다.

   이런 여행은 창작에 많은 영감을 주게 된다. 이런 여행 중 1901년 3월 시벨리우스는 이탈리아의 라팔로에 가게 되는데 이때 교향곡 1번 초연 직후 준비해 둔 교향곡 2번의 작곡에 집중적으로 임하게 되는 것이다. 시벨리우스 눈에 마법과 같은 곳으로 비친 해변도시 라팔로의 풍광은 2월이지만 남국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고 겨울에 갇힌 그로서는 너무도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이 되었다. 그래서 돈 후안(Don Juan)의 전설과 단테의 『신곡(La Divina commedia)』을 떠올렸고 ‘돈 후안과 돌의 손님’을 상징하는 테마가 교향곡 2악장에 쓰이게 된다. 또한 그는 피렌체와 로마도 여행하게 되고 팔레스트리나의 교회 음악도 접하게 되어 이런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작곡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기에는 시벨리우스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갈페란(Axel Carpelan)의 도움이 컸는데 그는 모금을 총해 경제적인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곡의 완성은 11월 핀란드로 돌ㄹ아와 하게 되는데, 연말에 많은 수정을 거쳐 다음 해인 1902년 3월 작곡가 자신이 지휘하는 헬싱키 필하모닉에 의해 초연 되었다. 헌정은 칼페란 남작에게 이루어졌다.

   대부분 교향곡이 순음악적인 요소가 두드러졌던 반면 이 작품은 비교적 강한 민족주의의 색채가 느껴짐과 동시에 황량하면서도 투명한 리리시즘(lyricism)의 아름다움과 빛나는 북구의 자연에 대한 깊은 공감과 애정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 곡은 핀란드의 아름다운 산천과 역사를 완벽한 관현악의 색채와 형식 속에 담아낸 걸작 중의 걸작으로, 형식상으로 고전파와낭만파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조국에 대한 향수와 국민적 정서를 가득 담아 감격에 찬 그 독자적인 아름다운 악풍을 선명하게 드러낸 마력적인 것이다. 또한 북유럽의 민요적인 색채가 강하고 민요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아닌 그의 음악적 취향에 맞게 새로운 창조를 붙여 나아간 것이다. 혹자는 이런 것이 연애 가요나 무도 가요의 모방이라고도 하나 민요에 대한 애착적인 기법으로 후기 낭만파에 속하는 시벨리우스 자신의 수준 높은 에토스(ethos)로 봐야 마땅할 것이다.

   곡은 1악장의 인상적인 현의 울림에서부터 듣는 이를 사로잡는 매력을 갖춘 곡상이며, 2악장은 북구의 짙은 안개 속의 호수가 손에 잡힐 듯하다. 3악장에서 끊이지 않고 4악장으로 넘어가며 관악기군이 힘차게 울리는 피날레의 감정의 고양은 그야말로 서정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웅장함이 일품이다. 특히 이 피날레에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는 극적인 표현이 긴 감동의 여운을 남기는 서정 교향악의 명품으로 ‘전원 교향곡’으로도 불린다. 또한 지휘자인 카야누스(Roert Kajanus, 핀란드)는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의 영웅적인 격정을 당시 러시아의 압정 속에서 있는 핀란드인의 저항이라고 해석했는데 그래서 한때는 ‘해방 교향곡’으로 불리기도 했다.

   교향곡 1번이 국민악파나 독일 낭만파 특히 그중에서도 차이코프스키의 영향이 강하지만 2번 교향곡은 이런 것을 완전히 벗어난 그만의 독특한 작품을 구사한 것이다. 물론 민족적인 색채나 리리스즘에 정서가 짙은 것이기는 하나 곡의 위대함은 이런 것보다는 음악적인 추상성일 것이다. 맥박 치는 듯한 음악적 움직임, 자연의 힘과 같은 잠재력, 에너지를 절제하는 내포된 힘은 일견 베토벤 교향곡 9번에 대한 가장 심오하고 추상적인 응답이라 하겠다.

출처 : 불후의 클래식(허재, 책과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