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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DUCTION

   1960년대를 ‘비틀스의 시대’라 함축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 그러나 비틀스가 시대를 온전히 점유하는 데 장애 요소가 된 상대가 있다. 그 첫 번째 대항마로 평론가들과 팬들은 롤링 스톤스를 기꺼이 천거한다. 비틀스가 명반 페스티벌을 연이으며 팝 지형도를 다시 그릴 때, 오직 롤링 스톤스만이 끊이지 않는 흐름에 맞서 유일하게 승부수를 띄울 수 있었다.

   1960년대 그룹의 대표작, 「Aftermath」, 「Between The Buttons」, 「Beggars Banquet」, 「Let It Bleed」를 분석하면, 롤링 스톤스의 영토 역시 비틀스 제국에 비교하여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롤링 스톤스는 무시할 수 없는 시대의 정복자였고, 또 하나의 맹주였다. 블루스를 토대로 한 로큰롤에 사이키델릭을 버무린 독창적인 소리샘은 비틀스의 그것보다 입자는 거칠었지만 ‘록 커뮤니티’의 일원들 사이에서는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적어도 펑크가 도래할 때까지 아무도 그들처럼 몰아(沒我)의 에너지로 철저히 록을 토해낸 밴드는 없었다.”라고 술회한 비평가 로버트 크리스트고(Robert Christgau)의 정의가 이를 대표한다.

   더구나 1970년대가 시작되고 비틀스가 사라지고 난 이상, 더 이상 이들을 위협할 경쟁자는 없었다. 이제 지구상 넘버원 로큰롤 밴드는 비틀스가 아닌 롤링 스톤스였다 그들은 상처로 얼룩진 1969년 알타몬트의 유혈 사태를 극복하려는 취지에서 자신들의 독자 레이블인 롤링 스톤스 레코드(Rolling Stones Records)를 설립, 일찍부터 새 출발을 암시했다. 이에 걸맞게 음반은 발매와 동시에 영미 모두에서 단번에 1위로 등극하며 그룹을 위한 70년대의 개막 축포를 화려하게 터뜨려주었다.

   이 앨범은 앞으로 도래할 롤링 스톤스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예광탄이자, 1960년 후반부터 이어진 ‘약물과 환락의 시기’를 표상하는 작품이었다. 우선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고안하고 디자이너 존 파치가 작업한 유명한 앨범 재킷부터 남달랐다. 그룹은 청바지 입은 남자의 하반신을 재킷 디자인으로 내걸었는데, 지퍼는 실제로 올리고 내릴 수 있게끔 디자인되어 나이 많은 어르신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이 버전은 현재 엄청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가시적인 부분부터 데카당(decadent, 퇴폐파)의 본성이 흘러넘쳤던 것이다. 이 재킷은 2003년 미국 뉴욕의 케이블방송사 VH1이 실시한 ‘역사와 가장 위대한 앨범 커버’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 그룹의 과감한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명증하기도 했다.

   상당수의 곡 제목이 퇴폐성과 직결된 것도 논란거리였다. 갈색 헤로인을 암시했던 「Brown Sugar」부터 공공연히 ‘마약 송’임을 간판에 내건 「Sister Morphine」 등이 그러했다. 한마디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향락의 논리 안에서 구동하는 작품이라 해도 무방했다. 「Bitch」에서 드러나는 저돌적 남근 주의는 이들의 또 다른 분신이었다.

   또한 1969년 숨을 거둔 브라이언 존스를 대신하여 기타리스트 믹 테일러의 연주가 빛을 발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그룹의 최고 작품 혹은 그중 하나라는 데 문제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있다고 해도 극소수다). 그만큼 싱글들의 퀄리티와 앨범으로써의 조직력에 있어 베스트임을 역설하는 마스터피스임에 분명하다.

글 : 배순탁
이 앨범은 커버 디자인에서부터 우선 충격으로 다가왔다.
앨범 재킷에 진짜 지퍼가 달려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속옷 색깔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 시대의 밴드 중 가장 블루스적인 색채가 강하다. 
비 오는 날 「I Got The Blues」를 들으면 이 팀에게 빠져들지도 모름.
참, 이 기회에 「Satisfaction」을 음악캠프 타이틀곡으로 사용해온 것에 대해
부 분(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에게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글 : 배철수
글 출처 : Legend(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그리고 100장의 음반, 배철수. 배순탁)